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렸을 때부터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습니다. 영화 공부를 할 때 책에서 본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얘기였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1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이같이 말했다. 함께 후보에 오른 ‘아이리시맨’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했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봉 감독의 이런 수상 소감은 스코세이지 감독을 동경하던 영화 학도가 오스카를 제패하며 세계적인 거장이 된 비결과 원동력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2000년 선보인 장편영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부터 2019년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봉 감독의 영화는 철저히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를 파고들며 시작된다. 그는 여기에 강박적일 만큼 정교한 연출, 허를 찌르는 반전, 익살스러운 위트를 더했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고, 나아가 전 세계를 뒤흔드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이 뛰어난 ‘확장성’은 새로운 ‘봉준호 장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

봉준호 감독은 어디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독특한 영화적 문법을 내세워 아카데미 최고 권위의 작품상부터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까지 휩쓸며 92년 아카데미 역사를 새롭게 썼다.

봉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그저 열두 살의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고 회상한다.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예술가적 소양이 남달랐던 집안에서 자랐다. 단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박태원 작가의 외손자다. 아버지는 봉상균 영남대 미대 교수다. 봉 감독은 이런 환경 속에서 어릴 때부터 AFKN 채널을 즐겨 보며 거장들의 영화를 접했다. 자막 없이 영어 대사가 흘러나와도 꿋꿋이 영화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고 한다.

사회를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시선은 대학 시절부터 다듬어졌다. 그는 영화감독을 꿈꾸면서도 연세대 사회학과에 들어갔다. 대학신문 ‘연세춘추’에 4컷짜리 만평도 그려 연재했다. 봉 감독의 재능은 대학 졸업 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제작한 단편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만든 ‘백색인’과 ‘지리멸렬’은 여러 해외 영화제에 초청됐다.

12세에 영화감독을 꿈꿨던 소년은 정확히 20년 후인 32세에 어엿한 영화감독이 돼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했다. 봉 감독은 이 작품에서부터 한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를 사회 계급의 문제로 확장시키며 오늘날 ‘기생충’의 탄생을 예고했다.

데뷔작은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는 실험적인 시도를 허용하는 충무로의 문화를 자양분 삼아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살인의 추억’(2003)을 시작으로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까지 예외없이 모두 흥행시켰다. ‘살인의 추억’과 ‘마더’에선 개별적인 살인 사건을 다루면서도 이 안에 자리한 인간의 서늘한 이기심 등을 조명했다. ‘괴물’부터 ‘설국열차’ ‘옥자’까지 거액의 제작비를 들이고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사용한 대작에서도 그는 그 규모를 내세우기보다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집중했다.

‘봉테일’에 ‘삑사리의 예술’ 더해졌다

봉 감독은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 불릴 만큼 정교하고 섬세한 연출로도 유명하다. 최근에 공개된 ‘기생충’의 스토리보드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문광이 남편에게 가기 위해 온몸을 사용해 지하실 문을 여는 그림이 화제가 됐다. 봉 감독이 직접 그린 것으로 실제 영화 속 장면과 거의 동일하게 표현돼 있다.

그의 유머와 재치도 해외에서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 영화매체 ‘카이에 뒤 시네마’는 봉 감독의 영화를 ‘삑사리의 예술(L’art du Piksari)’이라고 표현했다. ‘삑사리’라는 한국의 통속적 표현을 써서 “인물의 엉뚱하고 어이없는 실수 등이 극의 전개와 패턴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고 그의 작품을 소개했다. 영화 밖 각종 시상식에서의 어록도 화제가 되고 있다. 감독상을 받은 직후에도 그는 “오늘 밤은 술 마실 준비가 돼 있다. 내일 아침까지 말이다”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봉 감독은 스스로 “내 모든 작품이 장르가 모호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세계 영화인들과 관객은 이를 ‘봉준호 장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미국 영화매체 인디와이어는 “봉준호 감독은 늘 특정 장르의 좁은 틀에 갇히길 거부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봉준호 감독 자체가 장르”라고 극찬했다. 예술성을 높게 평가하는 칸 국제영화제의 ‘황금종려상’에 이어 대중성을 고려하는 아카데미의 작품상까지 차지한 기적은 봉준호 장르만의 폭발적인 위력을 증명하고 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