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부장(앞)이 추사 김정희의 8폭 병풍과 우성 김종영의 모란 그림을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부장(앞)이 추사 김정희의 8폭 병풍과 우성 김종영의 모란 그림을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다.
조선 최고의 예술가로 손꼽히는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서예와 금석학·시문학·경학·불교에 두루 능했던 19세기 동아시아의 대표 지식인이었다. 독특한 추사체뿐 아니라 문인화에서도 새로운 경지를 이뤘다. 불세출의 작품은 조선은 물론 청나라에서도 높이 평가돼 추사를 흠모하는 이가 많았다. 그는 시(詩)·서(書)·화(畵)에 통달한 근세 제일의 명필이자 학자였다.

우성 김종영 자화상
우성 김종영 자화상
젊은 시절부터 추사를 존경했던 우성 김종영(1915~1982)은 ‘한국 현대 조각의 선구자’로 불린다. 경남 창원 출신으로 어린 시절 한학과 서예를 익힌 그는 추사체의 기하학적이고 변화무쌍한 구조 원리를 3차원의 조각 언어로 풀어냈다. 그의 예술관은 조각 재료의 특성을 살려 극도의 절제미를 표현한 ‘불각(不刻)의 미(美)’로 알려져 있다.

평생 먹과 붓, 끌과 정으로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운 두 거장이 마침내 한자리에서 만났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화랑이 오는 11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펼치는 ‘추사 김정희, 우성 김종영-불계공졸(不計工拙)과 불각(不刻)의 시공’전에서다. 학고재화랑이 2010년에 연 ‘춘추’전에 이어 두 번째 기획전으로 마련한 이번 전시에는 추사의 글씨, 그림 20여점과 우성의 조각, 드로잉 등 35점을 내놓았다.

전시장은 ‘자아’ ‘절대추상과 구축미’ ‘불균형과 조화’ ‘서화일체’ 등 4개의 주제로 나눠 두 거장의 명작과 대표작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꾸몄다. 150년의 시간을 초월해 두 거장의 작품들은 서로의 미적 향기를 뿜어내며 관람객들을 반길 예정이다.

추사 김정희 자화상
추사 김정희 자화상
전시장에 들어서면 추사의 자화상과 추사가 한때 교유했던 해붕선사의 진영(眞影)을 찬양한 영찬첩, 우성의 자화상과 자각상이 진솔하고 장엄한 대가들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벽에 걸린 추사의 자화상은 수염을 흔들며 껄껄 웃으면서 우성의 자각상에 자신의 예술관을 들려주는 듯하다.

추사가 제주 유배 시절 철선 스님에게 보낸 족자 ‘자신불(自身佛)’은 서체의 입체적이고 중후한 구조력으로 우성의 돌 조각에 조곤조곤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우성이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보고 그린 북한산 그림은 추사가 말년에 행서로 쓴 8폭 병풍 글씨와 어우러진다. 특히 추사의 병풍 글씨는 행서 중에서도 음양 대비가 극단적 조화를 이룬다. 칼로 새긴 것처럼 금석의 기운이 가득하다. 또 추사체의 진면목을 보여준 ‘우향각(芋香閣)’, 다산 정약용에게 선물한 현판 ‘노규황량사(露葵黃粱社)’ 같은 작품들은 우성의 절대추상 조각 ‘78-31’ ‘76-19’ ‘78-4’와 각각 마주하며 큐비즘을 연상케 하는 구축미와 구조미를 한껏 발산한다. 이 밖에 우성의 작품 가운데 곡선미가 두드러진 ‘77-1’ ‘71-6’은 추사의 ‘합병신천지(合丙申天地)’ ‘천기청묘 매화동심(天機淸妙 梅花同心)’ ‘서증만랑(書贈曼郞)’과 나란히 걸려 다름과 같음의 미학을 연출한다.

전시를 기획한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대표는 “추사와 우성은 우리나라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인데도 이들의 예술이 왜 그토록 높이 평가되는지 모르는 이들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두 거장의 명작과 대표작을 통해 참모습을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02)720-152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