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월트 디즈니 컴퍼니 회장 부임
'픽사' '마블' '루카스 필름' '폭스TV' 인수
인수합병의 '신', 전 CEO와 차별환 된 경영
로버트 앨런 아이거 월트 디즈니 컴퍼니 회장, 디즈니 영화들./ 사진제공=월트 디즈니 컴퍼니 공식 홈페이지
로버트 앨런 아이거 월트 디즈니 컴퍼니 회장, 디즈니 영화들./ 사진제공=월트 디즈니 컴퍼니 공식 홈페이지
≪노규민의 영화人싸≫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수요일 오전 영화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배우, 감독, 작가, 번역가, 제작사 등 영화 생태계 구성원들 가운데 오늘뿐 아니라 미래의 '인싸'들을 집중 탐구합니다.

"디즈니는 당장 망할 수 있다"


새로 부임한 경영자는 회사의 위기를 강조하기 마련이다. 전임자의 실책이 커질수록 본인의 권한은 커진다. 로버트 앨런 아이거(밥 아이거)가 디즈니 수장에 오른 2005년. 아이거가 한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100년이 넘는 역사의 미키마우스의 제국이 붕괴 직전에 몰렸던 것.

원화에 기반한 디즈니 애니매이션은 2000년대 들어 속절없이 무너졌다. 1995년 픽사가 내놓은 토이스토리는 애니계의 판을 뒤집어놨다. 3차원(3D) 애니의 시대가 열린 것. 원화를 고집하던 디즈니의 만화는 더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훔치지 못했다. 아이거의 전임 CEO 마이클 아이스너는 마지막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2005년 회사에서 짐을 뺐다.

아이거 등장 16년 뒤 상황은 완전히 변해있다. 경쟁사던 픽사는 물론 마블 등을 합병한 아이거 덕분에 디즈니는 세계적인 콘텐츠 기업으로 거듭났다. 코로나 19에도 올 초 개봉한 디즈니·픽사 영화 '소울'과 지난달 26일 개봉한 디즈니 실사 영화 '크루엘라'는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이거는 수렁에 빠진 회사를 구한 디즈니의 '해결사'로 불린다. 그의 별명은 '인수합병'의 신. 아이거가 '어벤져스'에서 인피니티 스톤을 전부 모은 타노스와 비교되기되는 이유다.

아이거는 본래 영화업계 사람이 아니다. 그의 꿈은 뉴스앵커. 1974년 ABC에 입사한 그는 1989년 ABC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CEO계에 이름을 알린다. 1996년 디즈니가 ABC를 사들이면서 ABC의 회장이 됐고, 2000년 1월에는 디즈니 사장 자리에 올랐다.

취임하자마자 "디즈니는 큰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한 아이거는 꽤나 공격적이었다. 전 CEO 마이클 아이스너가 ABC, ESPN, 미라맥스 등 수많은 회사를 먹어 치웠는데 실적이 나지 않았다. 영화라는 디즈니의 본원적 경쟁력과 동떨어진 문어발식 확장은 되려 회사에 독이됐다.

아이거가 주목한 부분은 콘텐츠다. 콘텐츠 회사라는 기본으로 돌아간 것. 시대도 아이거의 편이었다. 애플의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하면서 그가 이끌던 픽사(2006년)를 손에 넣었다. 이후 마블 엔터테인먼트(2009년), 루카스필름(2012년) 등 굴지의 기업을 연이어 인수했다. 2019년에는 영화·방송 매체의 끝판왕인 21세기 폭스까지 라인업을 확장했다.

아이거는 넷플릭스를 인수하기 위해 직접 협상한 적이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 CEO 리드 레이스팅스가 이를 거절했고, 아이거는 자사의 OTT인 디즈니 플러스로 넷플릭스와 경쟁하기 위해 21세기 폭스 인수를 결정했다.

아이거는 '인수합병' 이외에도 상하이 디즈니 리조트, 홍콩 디즈니 랜드 등을 개장, 테마파크를 확장하면서 디즈니의 부활을 이끌기 위해 전력질주 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만든 콘텐츠가 오프라인 공간에서 구현되고 소비로 이어지는 '옵니채널' 구축에 공을 들인 것.

아이거의 혁신은 결과로 이어졌다. 디즈니는 2019년 역사상 최초로 연간 글로벌 박스오피스 수익 100억 달러를 기록한 영화사가 됐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공식 인스타그램./
월트 디즈니 컴퍼니 공식 인스타그램./
아이거는 2011년 11월 잡스가 사망 직 후 애플의 이사진으로 합류했다. 픽사를 매각하면서 아이거에게 반등의 기회를 줬던 잡스와 그의 인연이 결정적 역하을 했다. 아이거는 자서전에서 마블을 인수할 때 잡스가 직접 가서 마블의 CEO 아이작 펄머터를 설득해준 덕분에 거래가 성사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잡스가 살아 있었다면 애플과 디즈니의 합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지난해 2월 25일 로버트 앨런 아이거는 "디즈니의 CEO 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고, 후임은 디느니 파크, 익스피리언스 앤 플덕트의 총 책임자였던 밥 차펙이 맡게 됐다. 로버트 앨런 아이거는 원할한 인수인계를 위해 2021년까지 회장직을 유지하기로 했다.

임기 동안 디즈니의 주가는 7배 이상 올랐다. 디즈니는 성명을 내고 "이 주식의 가치는 로버트 앨런 아이거 회장의 리더십 하에서 그가 만들어온 가치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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