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SBS 드라마 ‘녹두꽃’에서 녹두장군 전봉준 역으로 열연한 배우 최무성. /사진제공=이매진아시아
SBS 드라마 ‘녹두꽃’에서 녹두장군 전봉준 역으로 열연한 배우 최무성. /사진제공=이매진아시아
“저한테 이런 배역이 오다니… 뿌듯하다가 곧 두려워졌죠. 연기를 잘 해내야겠다고 생각해왔지만 공포심을 느낄 정도의 역할은 지금까지 없었죠. 모든 작품의 캐릭터가 소중한데, 역사적 의미가 남다른 역할이라 제 인생 캐릭터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 최무성은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녹두꽃’에서 녹두장군 전봉준을 연기했다. 드라마가 끝난 후 만난 최무성은 전봉준이라는 역할에 어울리는 덥수룩한 흰 수염을 아직 정돈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는 “전봉준과 너무 달라보이면 어색할까 싶어 머리와 수염은 오늘까지만 유지하려고 한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면서도 “고통스러운 장면이 많았으니 ‘좋았다’기보다 ‘단결’됐다”며 “보조 출연자 분들도 몸을 사리지 않을 만큼 모두 합심해서 연기하고 작품을 위해 투신했다”고 촬영 현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녹두꽃’은 동학농민운동과 전봉준을 심도 있게 다뤘다. 그러면서도 민중들의 시선에서 역사적 사건들을 바라봤다. 그런 측면에서 전봉준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강하고 곧은 면모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도 그려냈다.

“민중 봉기의 선봉에 섰던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굉장히 인간적인 면모에 감동 받았어요. ‘관군들은 몰라도 억지로 끌려온 사람은 죽이지 말라’든지 불필요한 살생은 줄이려 했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혁명가, 이상주의자라는 걸 떠나 인간적 이면이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됐죠. 어떻게 하면 같이 잘 살 수 있을지를 첨예하게 고민했던 사람인 것 같아요.”

전봉준의 압송 당시를 재구성한 ‘녹두꽃’. /사진=SBS 방송 캡처
전봉준의 압송 당시를 재구성한 ‘녹두꽃’. /사진=SBS 방송 캡처
부상을 입어 걷기 어려워진 전봉준을 작은 가마에 태워 압송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유명하다. 드라마에서는 극 중 전봉준을 돕던 상인 송자인(한예리)이 일본인 사진가에게 부탁해 찍는 모습으로 재구성했다.

“자인이 사진기에 대해 잘 모르는 전봉준에게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된다’고 얘기하잖아요. 한예리 씨가 그 장면을 리허설 때 눈물을 글썽였어요. 나중에 방송으로 봤을 때 사진기 옆에 서 있는 자인의 눈에서 눈물이 쭉 떨어지더라고요. 저도 마치 역사 속에 들어간 듯 울컥했는데, 한예리 씨도 많이 슬펐구나 싶었죠. 감독님도 이 장면에 대해 정성들여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실제 사진과 비슷하게 나와야한다고 신경 쓰면서도 기분이 묘했어요.”

고부농민봉기로 시작해 황토현 전투, 황룡강 전투, 전주성 점령, 교정청 설치 등을 통해 민중들은 희망을 봤지만 우금치 전투에서 대패하고 결국 동학농민운동은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다. 하지만 동학농민운동의 정신은 3·1운동까지 이어지게 된다.

“일시적으로 뭔가를 정복하는 게 아니라 사회구조를 체계적으로 바꾸려고 했던 것 같아요. 화력 차이가 너무 나는 일본군과의 싸움을 밀어붙이는 모습에 ‘무모한 게 아니었나’라는 댓글도 봤어요. 제가 전봉준 장군은 아니기에 그 분의 뜻을 전부 헤아릴 수는 없겠죠. 비록 우금치 전투에서 실패했지만 민중 봉기 자체가 세상을 바꾸는 개혁의 씨앗이 된 것 같아요.”

최무성은 “이현(윤시윤 분)에게 ‘내가 죽어야 너희 형(조정석 분) 같은 의병이 투지가 생긴다’고 한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며 “전봉준은 죽기를 각오한 정신력으로 자신을 다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이매진아시아
최무성은 “이현(윤시윤 분)에게 ‘내가 죽어야 너희 형(조정석 분) 같은 의병이 투지가 생긴다’고 한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며 “전봉준은 죽기를 각오한 정신력으로 자신을 다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이매진아시아
공교롭게도 그는 전작인 ‘미스터 션샤인’에 이어 이번 드라마에서도 의병 역할을 하게 됐다. 전작에서는 조국을 구하겠다고 나선 주인공 애신(김태리 분)의 든든한 스승이자 생사를 나누는 동지가 됐다. ‘허허허’ 소리 내 웃는 수더분한 그에게서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무뚝뚝하지만 정 많은 택이 아빠가 떠올랐다. 때론 강하고, 때론 푸근하게 느껴지는 그에게 또 어떤 역할을 하고 싶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굳이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백수 역을 하고 싶어요. 되게 게으르고 찌질한 사람이요. 그런 사람을 통해 사회와 가정이 보이면 더 좋겠죠. 탄탄하게 세상을 그려가는 작품 안에서 그런 사람을 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전봉준은 세상 안에서 명분을 가지고 주도하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이잖아요. 그와 달리 뒤떨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 역도 재밌을 것 같네요. 세상을 그리는 데는 여러 인물이 필요하니까요.”

최무성에게 ‘공포감’까지 줬던 전봉준 같은 역할이 또 들어온다면 하고 싶냐고 묻자 “똑같이 고민하겠지만 덥석 물 것”이라며 웃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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