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창궐’ 포스터/사진제공=NEW, 리양필름, 영화사 이창
영화 ‘창궐’ 포스터/사진제공=NEW, 리양필름, 영화사 이창
병자호란 후 청나라로 간 조선의 둘째 왕자 강림대군 이청(현빈 분)은 형인 세자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조선으로 돌아온다. 제물포항에 내린 그가 마주한 것은 폐허가 된 마을. 이청과 그를 보필하는 학수(정만식 분)는 어지러운 정세의 조선을 안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밤이 되자 기괴한 모습의 ‘야귀(夜鬼)’가 출현해 그들을 공격한다. 그들에게 칼을 들이미는 이들은 또 있다. 야귀가 창궐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조선을 장악하려는 김자준(장동건 분)의 일당. 이청은 세자를 모시던 충직한 신하 박 종사관(조우진)과 야귀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는 덕희(이선빈 분), 대길(조달환 분) 덕분에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청은 제물포 주민들이 야귀의 습격을 당했다는 사실과, 김자준이 왕좌를 탐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야귀는 김성훈 감독이 ‘창궐’에 걸맞게 만든 ‘조선 맞춤형’ 좀비다. 그는 “좀비나 흡혈귀와는 또 다르다”며 “조선시대에 어울릴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해서 새로운 크리쳐를 만들었다”고 설명했지만 영화 속 야귀는 실상 좀비나 흡혈귀와 다를 바 없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괴수로 변해가고, 햇볕 아래에서는 피부가 타 들어간다.

야귀 역의 수많은 조연 배우의 열연은 빛난다. 온몸의 관절이 뒤틀리듯 몸부림치고 눈은 희번득 뒤집는다. 괴이한 소리를 내고 떼를 지어 무차별적으로 달려든다. 한복을 입은 좀비의 모습이 신선하다.

영화 ‘창궐’ 스틸/사진제공=NEW, 리양필름, 영화사 이창
영화 ‘창궐’ 스틸/사진제공=NEW, 리양필름, 영화사 이창
독보적이어야 할 악인 김자준의 캐릭터 설정은 궁을 가득 메운 야귀떼에 묻혀 흐릿해진다. 김자준이 사욕을 위해 왕좌를 탐하는 것인지, 조선을 제손으로 구해내고자 하는 대의가 있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이청과 김자준의 쫓고 쫓기는 맞대결을 기대했다면, 마지막 인정전 혈투에 이르기까지 꽤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 인정전 혈투신은 거대한 스케일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자랑한다. 장검은 묵직하지만 현빈의 몸놀림은 가볍고 경쾌하다. 장동건과 불타오르는 인정전에서 아찔한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도 시선을 끈다.

이청이 조선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가지기까지, 바탕이 돼야 할 이야기는 촘촘하지 못하다. 그의 애민정신이 갑자기 어디서 생겨나 캐릭터가 바뀌어가는지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덕희를 어여삐 여기는 이청의 행동도 조금 뜬금없다.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만 덕희를 아끼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면 나을 뻔했다.

영화 ‘창궐’ 스틸/사진제공=NEW, 리양필름, 영화사 이창
영화 ‘창궐’ 스틸/사진제공=NEW, 리양필름, 영화사 이창
‘이게 나라냐’ ‘내가 이러려고 왕이 됐냐’ ‘스스로 나라를 세우고 구해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등 대사는 촛불정국을 떠올리게 한다. 민초들의 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은 좋았으나 영화의 흐름이 흐트러지고 메시지가 모호해진다.

의외의 활약을 보여주는 이는 박 종사관 역의 조우진이다. 충직한 신하로서, 정의로운 무관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모습으로 백성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투한다. 조우진은 그런 박 종사관의 비장함과 희생 정신을 깊은 감정 선과 힘 있는 액션으로 표현해냈다.

‘창궐’은 즐겁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의 본분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 ‘물괴’에 ‘부산행’을 끼얹은 듯한 기시감을 지울 수 없다. 조선시대라는 배경과 좀비라는 신선한 조합을 더 촘촘한 이야기로 풀어내지 못해 아쉽다. 오는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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