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미쓰백’에서 성폭행의 위기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백상아 역을 맡은 한지민./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영화 ‘미쓰백’에서 성폭행의 위기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백상아 역을 맡은 한지민./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노란 단발머리에 빨간 립스틱, 눈가의 다크서클, 얼굴의 잡티가 선명하다. 가무잡잡한 피부가 한지민이 맞나 싶다. 그뿐만이 아니다. 딱 붙는 가죽 치마를 입고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워댄다. 아동을 학대한 부모에게 거침없이 욕을 날리고, 머리채를 잡고 뒹굴며 싸운다. 15년 동안 청순발랄한 이미지로 사랑받아온 배우 한지민이 영화 ‘미쓰백’을 통해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감행했다. 최근 종영한 tvN ‘아는 와이프’에서는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영화 ‘미쓰백’에서는 폭력에 거칠게 대항하는 인물로 변신한 한지민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보니 어떤가?
한지민: 시사회 전날 긴장돼서 잠이 안 왔다. 새벽 1시에 잤는데 3시 30분에 일어났다. 그 전까지는 솔직히 말해서 큰 걱정을 안 했는데 개봉 날이 다가오니 뒤늦게 걱정이 몰려왔다. 사회적인 이슈가 담긴 주제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데뷔 이후 처음 선보이는 이미지나 장면들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 주실지 걱정이 됐다.

10.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한지민: 외국에 다녀온 날이었다. 시차가 맞지 않아 새벽 4시쯤 시나리오를 읽었다. 감성적인 시간대이긴 했지만 지은(김시아)에게 아동학대를 일삼는 부모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밀었다. 특히 백상아라는 인물이 가엾고 불쌍했다. 변신하겠다는 생각보다 백상아와 지은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정했다.

10. ‘미쓰백’에서의 변신은 파격적이다. 출연 자체가 도전이었을 텐데 고민도 있었겠다.
한지민: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해왔다. 작품을 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드라마에서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니 영화에선 조금 더 다른 느낌을 찾고 싶었다. 여자 배우들이 다양한 연기를 보여 줄 수 있을 만한 시나리오가 많지 않다.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새롭다’ 싶으면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터에 ‘미쓰백’을 만나게 됐다. 어렸을 때 만났으면 버거웠을지 모른다. 서른이 넘어서 성격이 바뀌고, 사람에 관한 관심과 궁금증이 생기면서 이런 역할이 어렵다는 걱정보다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 성격이 바뀔 만한 계기가 있었나?
한지민: 원래 집순이였다.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편하지 않았다. 첫 만남, 의외의 만남 같은 것들이 어려웠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니 세상은 참 넓고,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나랑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나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해 온 것에 비해서 사람 관계의 중요성도 늦게 배웠다. 젊은 시절엔 뭘 했나 싶었다. 서른 살이 지나면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고 ‘밀정’을 촬영하면서 많이 변했다. ‘밀정’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님이 있는 자리에는 진짜 많은 분이 찾아왔다.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현장에 오신 분들과 대화를 하는데 그분들이 주는 느낌이 새로웠다. 다른 사람들도 ‘한지민이 이런 사람이었군요’라며 그 전까지는 드라마 속 캐릭터로만 생각했다고 하더라. 그런 부분이 재미있었다.

10. ‘미쓰백’에서 욕도 하고 담배도 피운다. 특히 흡연 장면이 리얼하다. 진짜로 피웠나?
한지민: 작품에 들어가기 전 감독님과 영화에 드러나지 않은 상아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욕이나 담배는 상아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사람답지 않은 부모를 두고 어떻게 욕을 안 할 수 있겠나. 욕이 애드리브로 나왔다. 폭력적인 영화에서 거침없이 나오는 욕이 아니고 상아의 감정에서 터진 합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담배는 ‘밀정’을 찍을 때 배웠다. 모든 종류의 담배를 피워 내게 맞는 걸 찾아냈다. 영화 시작 5분 만에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이 어색하면 백상아 연기를 하는 나를 어색하게 보실 것 같았다. 관객들이 불편해 보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10. 마사지도 하고 세차도 한다. 전문가 못지않던데 따로 배웠나?
한지민: 극 중 상아는 뭔가 닦는 일을 많이 한다. 세차, 마사지, 청소를 열심히 한다. 세차장, 마사지샵 아르바이트는 상아의 상황을 담아낸 직업이다. 나는 실제로 마사지해주는 걸 좋아한다. 손이 작지만 악력이 세서 엄마나 언니가 늘 만족해 한다. 마사지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웃음) 이번 작품을 위해 전문가에게 배웠는데 빨리 배운다며 칭찬해주셨다. 세차도 배웠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수압도 세고, 무거운 줄을 차 주변으로 돌려서 가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키가 작기 때문에 차량의 윗부분을 닦는 것도 어려웠다.

‘미쓰백’에서 백상아 역을 맡은 한지민은 “사람답지 않은 부모를 두고 어떻게 욕을 안 할 수 있겠나. 욕이 애드리브로 나왔다”고 말했다./ 사진=BH엔터테인먼트
‘미쓰백’에서 백상아 역을 맡은 한지민은 “사람답지 않은 부모를 두고 어떻게 욕을 안 할 수 있겠나. 욕이 애드리브로 나왔다”고 말했다./ 사진=BH엔터테인먼트
10. 하이힐을 신고 뛰어다니는 장면도 쉽지 않았겠다. 다치진 않았나?
한지민: 원래 힐을 잘 못 신는다. 풀샷일 때 열심히 뛰고 아닐 때는 운동화를 신었다.(웃음) 걸그룹들을 보면 항상 신기하다. 힐을 신고 어떻게 춤까지 출까?

10. 하이라이트는 공사장 싸움장면이다. 이를 악물고 싸우던데 에피소드가 있나?
한지민: 시나리오를 보고 유튜브에서 여자들의 싸움 동영상을 찾아봤다.(웃음) 사전에 동작을 맞추지 않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상대 배우인 권소현 씨가 주는 에너지가 있었다. 진짜 상아의 마음을 생각하며 ‘컷’ 할 때까지 이를 악물고 싸웠다. 나중엔 저절로 악에 받친 느낌이 들 정도였다.

10. 거친 피부와 잡티도 인상적이다. 예쁜 모습을 포기해야 했는데 걱정은 없었나?
한지민: 전혀 없었다. 상아는 자신의 당당함을 보이기 위해 노랑머리와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지만 거칠고 힘든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얼굴에 담겨야 했다. 샤방샤방하게 보이면 안 됐기 때문에 반사판은 최대한 배제했다. 상아답게 하려고 애쓴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여러 방면으로 시도하면서 노력했다.

10. 외형적인 변신뿐 아니라 내면 연기에도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다. 어떤 부분이 제일 어려웠나?
한지민: 사실 영화를 찍는 내내 어렵고 힘들었다. 실제로 처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상아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원래 빨리 친해지는 편인데 이번에는 3회차 남겨놓고 회식을 했을 정도로 온전히 상아에만 몰입했다. 촬영 내내 상아가 된 채로 살았다.

10. 아동학대 장면이 너무나 적나라하다. 극 중 지은을 연기한 아역 배우 김시아 양이 걱정될 정도다. 어떻게 도움을 줬나?
한지민: 가뜩이나 연기도 처음인 친구다. 분위기를 많이 타지 않을까 걱정했다. 촬영하는 동안 병원이나 기관에서 상담사 선생님들이 나와 주셨다. 심리 상담하는 분들이 반드시 시아의 본명을 불러 주라고 하셨다. 극 중 이름을 부르면 어리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힘들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부분에서도 노력했고, 애정을 주기 위해 많이 놀아줬다. 시아의 동생도 아역 배우다. 촬영이 없을 때 다 같이 키즈카페에 가서 놀아줬다. 원래 이모가 내 직업이다. 많은 아이들이 이모라고 부른다.

10. 이모 말고 엄마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나?
한지민: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다. 이모로 살고 있는 지금이 좋다.(웃음) 지금도 아이랑 놀다가 조금만 힘들어지면 언니를 찾는다. 드라마 ‘아는 와이프’도 해봤지만, 엄마의 힘은 위대하다. 모성애를 아직 느껴보지 못해서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면 막막하다.

배우 한지민이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사진=BH엔터테인먼트
배우 한지민이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사진=BH엔터테인먼트
10. ‘아는 와이프’에서는 극 초반에 억척스러운 주부를 연기했다. 생각보다 잘 어울렸는데 어땠나?
한지민: 내가 연기하고도 무서워 보였다.(웃음)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모든 가정이 그렇진 않겠지만 남자 입장에서도 여자 입장에서도 이해가 됐다. 언니 옆에서 모든 것들을 보고, 조카를 봐 왔기 때문에 잘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 2부 대본을 재미있게 읽고 의욕이 생겼는데 회사에서는 주부 캐릭터를 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16회 내내 주부로 나왔으면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도 주부로 나왔을 때 애드립도 많고 생활연기를 하는 기분이 들어서 재미있었다. 16회에서도 뽀글머리를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 하하.

10. ‘아는 와이프’를 봐서인지 ‘미쓰백’에서의 센 연기가 덜 낯설어 보인다.
한지민: 맞다. ‘아는 와이프’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해주지 않았나 싶다. ‘아는 와이프’에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신기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았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이 ‘미쓰백’을 보면 좀 덜 놀랄 것 같다.

10. 지금도 목소리가 많이 쉬었다. ‘아는 와이프’에서 소리를 많이 질러서 그런가?
한지민: 원래 허스키한데 그 영향도 있다. 초반에 소리 지르는 장면이 많았는데 촬영을 여러 번 하다 보니 목이 확 가더라. 게다가 지난 여름이 엄청 더웠지 않나. 찬 걸 많이 먹고 에어컨 바람도 많이 쐤다. 마지막엔 목소리가 거의 안 나왔다. 병원에 갔더니 성대를 다쳤다고 했다. 엄마가 수세미를 달여주셔서 들고 다니면서 마시고 있다.

10. ‘아는 와이프’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춘 지성이 응원을 해줬나?
한지민: 지성 선배가 출연한 ‘명당’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미쓰백’ 파이팅!”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명당’ 무대 인사를 갔다가 ‘미쓰백’ 포스터만 찾고 있다며 문자도 왔다.

10. 드라마를 하면서 지성에게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한지민: 내가 천사라는 설이 있지만 지성 선배가 진짜 천사다. 그분에게 천사 배턴을 넘겨드렸다. 드라마를 할 때 버팀목이 됐다. 대본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이야기하면 ‘지민아, 우리 이렇게 해보자’라며 세상 다정하게 알려준다. 사람의 모습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다. 극 중 차주혁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남편이다. 선배는 늘 ‘보영이 덕분이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바뀐 거다”라고 말했다. 그런 모습이 내게도 좋은 에너지로 다가왔다. 단 선배 때문에 좋은 남자를 만나는 데 있어 기준이 더 높아졌다.

10. ‘아는 와이프’와 ‘미쓰백’을 통해 거듭 새로운 연기를 보여줬다. 내친 김에 또 새롭게 맡아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
한지민: 캐릭터의 변화가 있으면 좋겠지만 역할보다 스릴러 같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 여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장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사실 작품을 선택할 때마다 계기가 달랐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선 특별 출연이었지만 이병헌 선배랑 일대일로 연기해보고 싶은 생각에 결정했고, ‘장수상회’ 때는 강제규 감독님이 궁금해서 출연했다. 이 다음 작품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할 것 같은데 어떤 이유일지는 모르겠다.

10. ‘미쓰백’을 볼 예비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지민: 이전과 다른 이미지로 변신한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제가 풀어야 할 숙제였다. 어렸을 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작품 안에 녹아들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어렵지만 훌륭한 일이다. 한지민이 자연스럽게 백상아에 이입됐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이전과 다르게 보이는 게 많다. 관객들이 최대한 빨리 백상아에 빠져드셨으면 좋겠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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