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배우 김남희. / 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김남희. / 이승현 기자 lsh87@
‘일본인 아니었어?’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극본 김은숙, 연출 이응복)에서 배우 김남희를 본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랬다. 일본어 실력은 흠잡을 데 없었고, 일본인 특유의 우리말 억양까지 살려 열이면 열 ‘일본인 배우’이거나 ‘일본에서 오랫동안 살다 온 연기자’로 예상했다. 하지만 2013년 영화 ‘청춘예찬’으로 데뷔한 김남희는 일본어는 배워본 적 없고, ‘미스터 션샤인’ 출연을 위해 일본도 처음 가봤다. 지난해 종영한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의사로 잠깐 등장하며 김은숙 작가와 연을 맺은 그는 ‘미스터 션샤인’에서 이병헌(유진초이 역)과 팽팽하게 대립하는 일본군 대좌 모리 타카시 역을 맡아 극에 긴장과 재미를 불어넣었다. 악랄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제대로 사로잡았다. ‘미스터 션샤인’ 촬영을 마치고 만난 김남희는 “잠을 못 잘 정도로 쉽지 않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올해로 데뷔 5주년을 맞은 김남희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10. ‘미스터 션샤인’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김남희 : 지난해 여름에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이응복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보는 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유연기를 했는데, 연극 ‘햄릿’에서 햄릿의 대사를 했거든요. 좋게 보셨는지 “일본인 역할”이라면서 우리말로 된 대사를 아는 일본어를 써서 해보라는 거죠. 일어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아는 단어를 다 써서 느낌만 살렸어요.(웃음) 일어를 했을 때 목소리 톤이 듣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모리 타카시 역을 맡게 됐습니다.

10. 아무렇게나 한 일본어가 감독의 마음을 울렸나 보군요.
김남희 : 오디션을 마치고 나서 다른 제작진이 “이응복 감독이 촬영 전 무명 배우를 이렇게 길게 만나 이야기 나눈 적이 없다”면서 “타카시 역을 맡을 수도 있겠다”고 귀띔해줬어요. 저도 의아했죠.

10. 일본인 역을 맡을 줄은 몰랐죠?
김남희 : 전혀 몰랐죠. ‘왜 날 뽑았지?’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어요. 타카시 역을 맡겨 주시면서, 유진초이의 친구였다가 다시 적으로 만날 거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때 대본은 전혀 나와있지 않은 상태였고요.

10. 드라마 전에 일어를 배운 적은 있었습니까?
김남희 : 전혀요.(웃음) 제작진이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어요. 일부러 부담을 주려고 하신 건 아니겠지만, 상대 배우는 이병헌 선배님이라면서 “잘할 수 있겠냐?”라고 말이죠. 그땐 오기 같은 것도 생기더라고요. “그럼요, 재미있겠는데요? 잘 할 수 있죠”라고 했는데…하하. 첫 촬영 때 이병헌 선배님께 압도 당했습니다.(웃음) 일어를 못하는 데다 역할의 중요성도 들으니까 특별해진 느낌은 들었는데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막막했죠.

10. 오디션 합격 이후부터 일어를 공부했나요?
김남희 : 지난해 8월 즈음 결정나고, 좋고 벅찬 감정보다 걱정이 앞서서 연습도 할 겸 일본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갔어요. 그때 갖고 있던 정보는 타카시는 ‘일본 제국주의 보수의 핵심이며, 엘리트 가문 출신’ 정도였어요. 도쿄에서 한 달을 머무르면서 일본의 분위기를 익혔죠. 그때 일본에 처음 가봤어요.(웃음)

10. 한 달이면 꽤 긴 시간이군요.
김남희 : 일본에 가는 게 처음이었고, 야심차게 출발해서 한 달 동안 여러 곳을 둘러보면서 관찰하려고 했죠. 누군가는 “일어학원에 다녀”라고 했는데, 같은 기간에 효과적으로 연기를 해야 하니까 일어를 처음 단계부터 배우는 건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대사는 그냥 통으로 외우고, 대신 특유의 억양이나 행동, 말투를 연습하는 거죠.

10. 돌아온 뒤에는 어떻게 공부했나요?
김남희 : 극중 사사키 소좌 역을 맡은 공대유 배우에게 배웠어요. 드라마 안에서 일본어 선생님을 맡아 모든 배우의 일본어를 가르쳤죠. 본격 언어 수업이었어요. 일본을 배경으로 한 우리 영화 ‘박열’ ‘동주’ 등에 나온 일어 대사를 똑같이 해보고 연기 훈련을 했고요. 우선 외운 다음 단어의 뜻을 살피는 방식이었어요.

10. 첫 촬영은 어땠습니까?
김남희 : 첫 촬영은 여름 오기 전에 시작했고, 대본에는 영어로 쓰여 있었어요. 일본 사람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발음이 있다고 생각해서 어눌하게 해야 할 것 같았죠. 일본 친구 중에 영어 잘하는 사람이 녹음을 해주면 그걸 듣고 한글로 다 써서 계속 외웠어요.

10. 첫 등장 이후 한참 있다가 다시 나왔습니다. 그 기간은 어떻게 보냈나요?
김남희 : 두 번째 촬영은 여름이 시작되면서였어요. 불안하더군요. 그래도 놓을 수는 없어서 NHK나 일본 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틀어놓고 계속 봤습니다. 대사는 말로 먼저 외우고 감정을 다음에 붙이는 방식으로 했어요. 일어든, 한국어든 몸에 완전히 습득한 상태에서 감정을 더했죠.

배우 김남희. / 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김남희. / 이승현 기자 lsh87@
10. 재등장했을 때는 마치 처음 촬영하는 기분이었겠습니다.
김남희 : 첫 촬영 같더군요.(웃음) 타카시가 다시 나왔을 때 이병헌 선배님부터 여러 배우들이 “다시 나오는지 몰랐다”면서 “너는 알고 있었냐?”고 물었죠.(웃음) 이병헌 선배님은 “그래서 그때(첫 장면) 묘하게 풍겼구나?”라고 하셨어요. 저는 다시 나올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첫 등장 때 약간 분위기를 흘리려고 했어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말이죠.

10. 타카시가 다시 등장하면서 극도 2막을 열었습니다. 중심을 이끈 만큼 부담도 컸죠?
김남희 : 다시 등장하는 장면을 찍기 전날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열도 오르고 장염으로 고생 했습니다. 응급실 가서 주사 맞고 촬영장에 갔죠. 말을 태우더라고요.(웃음) 등장하는 장면만 반나절이 걸렸어요. 찍기 전 리허설을 하면서 감독님과 이병헌, 김태리 등 배우들과 대사를 맞추는데 마냥 신기했습니다.

10. 연기를 할 땐 예민한 편입니까?
김남희 : 연기할 때는 스스로를 가혹하게 하는 것 같아요. 특히 ‘미스터 션샤인’은 더 어려웠습니다. 일어를 아무리 외워도 다음날이면 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이틀째 중얼중얼하는데도 말이죠. 3일 정도 지나면 머릿속에 조금 남더군요. 강제로 전혀 모르는 말을 주입시키는 과정에서 받는 압박과 스트레스가 컸어요. 어릴 때 구구단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외우는 것처럼 말입니다.(웃음)

10.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일본인 아니냐’는 반응이었어요.
김남희 : 대본이 나올 때마다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 같았어요. 점점 대사 양은 늘어나고. 일어 선생님도 “이렇게 빡빡하게 촬영 날짜를 잡으면 배우가 할 수 없다”고 했는데, 받아들여지진 않았죠.(웃음) 한국어를 매끄럽게 잘하는 것도 어색할 것 같아서, 우리말도 어눌하게 해야 하니까 모든 대사가 어려웠어요. 감정을 싣는 건 그 다음 문제고, 우선 대사 외우기에 급급했죠.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하는 상태였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 장면도 많습니다.

10. 아주 힘들게 타카시를 보여줬고,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면서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김남희 : 워낙 타카시가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반응이라고 생각했어요. 댓글을 읽으면서 ‘진짜 일본인 같았다’ ‘한국말 충격이다’ 등 의견을 보고 노력해서 한국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구나, 싶었어요.

10. 오디션 당시 들었던 ‘타카시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꼈죠?
김남희 : 다 찍어놓은 상태에서 방송됐기 때문에 방송되는 날은 뭐든 손에 잡히지 않고 집중도 안 됐어요. 어눌한 한국어가 통할까, 바보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했죠. 17회 방송이 끝나고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됐다, 잘 속였다’라면서 캐릭터로서 임무는 완수했다고 생각했죠.

배우 김남희. / 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김남희. / 이승현 기자 lsh87@
10. 기억에 남거나 아쉬운 장면이 있습니까?
김남희 : 스트레스로 인한 체력 저하가 가장 아쉬워요. 촬영장을 가려고만 하면 아픈 거예요.(웃음) 습관적으로 잠을 못자고, 커피를 계속 마시니까 몸이 더 안 좋아졌죠. 불굴의 의지로 연기를 하려고 하는데 눈이 풀리더라고요. 찍은 걸 확인하면서 힘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한국어로 연기했다면 연기를 더 자유롭게, 강약 조절부터 에너지도 끓어올랐을 텐데…. 연기로서는 완벽하지 않았어요. “다시 찍어도 될까요?”라고 한 적도 있고요.

10. 이병헌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김남희 : 선배님이 저에게 많이 맞춰줬겠지만, 저는 다 잘 맞았어요. ‘저 정도 연기 경력이면 굳이 잘 보이려고 하지 않고, 후배들의 연기를 천천히 받아줘도 빛이 나는구나’라고요. 제가 훗날 선배가 된다면 꼭 닮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10. ‘미스터 션샤인’을 두고 ‘연기 교본’이라고 할 정도로 연기력이 빼어난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습니다. 현장에서 자극도 받았을 것 같은데요?
김남희 : 모두가 치열했을 거예요. 캐스팅이 화려했잖아요. 저 역시 연기 못한다는 소리는 듣기 싫으니까 더 열심히 했죠.(웃음)

10. 전작을 살펴보면, 역할에 따라 얼굴이 달라 보여요.
김남희 : 요즘 얼굴이 달라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데요, 연기를 할 때 외모부터 역할에 어울리도록 가꾸는 건 아니에요. 어떤 외모를 갖추고 있어도 내면이 먼저 완성돼야 한다고 생각하죠. 맡은 역할로서의 삶이나 의식, 목표를 만들어 놔야 외모를 가꿔도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만약 외모부터 시작한다면 비겁한 방법 아닐까요?

10. 앞으로 연기자로서의 목표나 방향이 궁금합니다.
김남희 : 당장 다음 작품은 악역인지, 아닌지가 기준이 될 것 같고요. 다음에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보다 한국어를 쓰는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웃음) 이런 목표를 말할 줄은, 우리말이 이렇게 간절할 줄은 몰랐어요. 하하. 타카시를 본 시청자들은 각인이 됐겠죠. 다음 작품에서 타카시를 잊을 만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타카시에 갇혀 있을 거 같아요. 연기를 잘하는 스타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시간이 흘러도 좋은 작품으로 남는, 명작을 만드는 연기자가 꿈입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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