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사진=JTBC ‘미스 함무라비’ 방송화면 캡처
사진=JTBC ‘미스 함무라비’ 방송화면 캡처
사진=JTBC ‘미스 함무라비’ 방송화면 캡처

현실의 벽에 부딪힌 고아라의 좌절이 뼈아픈 현실을 짚어냈다. 지난 25일 방송된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극본 문유석, 연출 곽정환)의 이야기다.

이날 방송에서는 법과 판사의 한계를 체감한 박차오름(고아라)과 임바른(김명수)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여운을 남겼다.

감성우(전진기) 부장의 재판 청탁을 고발하며 내부고발자가 된 박차오름은 참고인 진술을 위해 검찰에 불려갔다. 박차오름의 정의와 현실은 달랐다. 사건을 키우려는 야심만만한 검사는 박차오름의 진술을 의도적으로 곡해했고, 박차오름의 용기는 법원 내부의 비난거리일 뿐이었다. 정의로 시작한 일이 정의로운 결과로 맺어지지 않았다. 법원장(김홍파)의 전화 한 통으로 담당 검사가 바뀌었고, 법원을 향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엘리트 코스와 무관해 보였던 성공충(차순배)이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영전해 씁쓸함을 더했다.

재판도 정의를 이루기엔 한계가 있었다. 가슴 털 부장 성희롱 재판 당시 결정적 진술을 했던 증인 김다인이 내부고발자로 찍혀 회사로부터 억울한 해고를 당한 것. 회사는 여론을 의식해 광고1팀을 해체하고 실질적인 자회사를 설립했다. 김다인과 인턴 직원을 제외한 전 직원을 재취직시키고 광고1팀의 물량을 자회사로 돌렸다. 심지어 가슴 털 부장 임광규까지 취직을 시켰다. 피해자와 용기를 낸 내부고발자만 피해를 본 상황이었지만 회사 측은 오히려 김다인의 사생활을 비난하며 인사 규정의 요건은 물론 노조 협의까지 갖춘 정당한 해고라고 맞섰다. ‘민사 44부’는 김다인을 구제하려 노력했지만, 절차적으로 완벽했고 자회사와의 연관성을 입증할 수 없도록 철저히 분리했기에 결국 김다인은 패소했다.

법마저도 무력해지는 냉철한 현실 앞에 박차오름의 고민은 깊어졌다. 김다인 사건을 언론에 알려 복수하겠다는 박차오름과 “추악한 인간이 있다고 똑같은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나 자신을 지키고 싶다”는 임바른의 대립은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딜레마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판사 되지 말 걸 그랬다. 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없는 줄 알았다면 죽도록 공부할 필요 없었다”는 박차오름의 후회는 뼈아픈 현실의 무력함을 그려냈기에 절절하게 와 닿았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괴로워했지만, 박차오름의 고뇌는 성장을 향한 한 걸음이었다. 한세상은 “기죽지 말라”며 박차오름을 응원했고, 판사 자격이 없다고 좌절하는 박차오름에게 오정인(박현정) 부장판사는 “타인의 상처를 예민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 더 좋은 판사가 될 수 있다. 그저 마음을 쉬게 해줘라. 상처에 새살이 돋아날 시간만 허락하라”고 조언했다. 김다인은 “절대 자책도 후회도 하지 않는 인간들 때문에 왜 우리가 자책해야 하나”며 박차오름을 북돋웠다. 임바른 역시 “나는 이미 있는 정답만 잘 찾는 사람이지만 박판사는 새로운 답을 찾다가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박판사가 실수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응원했다. 박차오름은 조언과 응원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신념을 다지며 일어섰다.

박차오름의 생생한 분노는 ‘미스 함무라비’가 그린 차가운 현실과 맞닿으며 시청자들의 씁쓸한 공감을 자아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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