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슬기 기자]거대한 제작비 투입, 이름만으로도 기대감을 모으는 톱스타들의 출연만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별★영화]는 작지만 다양한 별의별 영화를 소개한다. 마음 속 별이 될 작품을 지금 여기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편집자주]

/사진=영화 ‘덕구’ 포스터
/사진=영화 ‘덕구’ 포스터
“덕 덕(德)자에 구할 구(求), 덕을 구하는 사람이 되라고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습니다!”

주인공 덕구(정지훈)가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크게 외친다. 할배(이순재)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서 “네 할 말은 당당히 하고 살아야 된다”고 강조한다.

영화는 어린 손자 덕구, 덕희(박지윤)와 살고 있는 할배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이별을 준비하는 이야기다. 큰 줄거리는 그동안 흔히 봐왔던 가족의 이야기지만 이순재가 표현하는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은 보기만 해도 눈물짓게 만든다.

할배는 일찍이 아들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다. 인도네시아인 며느리는 아들의 사망보험금을 가로챘고 이를 계기로 집에서 쫓아냈다. 하지만 흔들리거나 슬퍼할 겨를이 없다. 어린 손주들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할배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에게 따뜻한 흰쌀밥을 먹이고, 단정히 옷을 입혀 등교시킨다. 투박한 손길이지만 아이들을 향한 애정이 곳곳에 드러난다. 덕구가 원하는 장난감 로봇을 사주기 위해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고, 덕희에게 알사탕을 주기 위해 일 하는 식당에서 몰래 챙긴다. 부족한 형편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할배의 모습은 뭉클하다.

어린 덕구에겐 할아버지가 만족스러울 리 없다. 원하는 장남감은커녕 매일 밤, 조상들의 이름을 나열하라는 할아버지가 싫다. 양말에 구멍이 난 줄도 모르고 다니는 모습은 부끄럽기만 하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크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돈까스를 혼자만 먹게 된 덕구는 비닐봉지에 몰래 챙겨 병실에 누워있는 할아버지의 입에 넣어준다. 덕구의 순수하고도 속 깊은 마음이 잘 느껴지는 장면이다.

/사진=영화 ‘덕구’ 스틸컷
/사진=영화 ‘덕구’ 스틸컷
영화는 자칫 흔하고 지루해보일 수도 있는 평범한 이야기 구조인데도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준다. 할아버지의 투박하지만 서툰 내리사랑과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 잘 어우러져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다. 특히 이순재와 아역배우 정지훈, 박지윤의 실감 나는 연기는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를 연출한 방수인 감독은 할아버지와 손주의 이야기를 넘어 아이, 노인, 외국인 이주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계층에 대한 문제들을 다뤘다. 우리 주변에 보이는 것들이지만 모르고 지나치거나 외면하는 것들을 짚어낸다. 이런 것들을 ‘눈물을 끌어내는 장치’로 많이 쓰는 여느 영화와 달리 방 감독은 과장하지 않고 담백하게 표현했다.

방 감독은 이 작품을 위해 8년간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회적 약자들을 취재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접한 끝에 촘촘하게 대본을 완성했다. 여기에 연기 경력 62년의 이순재가 힘을 보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덕구’는 오는 5일 개봉한다. 12세 관람가. 상영시간 91분.

박슬기 기자 ps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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