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사진=tvN ‘나의 아저씨’ 방송화면 캡처
사진=tvN ‘나의 아저씨’ 방송화면 캡처
무표정에 생기 없는 입술, 주위를 힐끗 살피고 회사 탕비실 커피믹스를 한 움큼 집고 손님이 먹고 남긴 음식도 주워 담는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는 시선을 내리깔고, 길을 걸으면서도 표정은 늘 똑같다. 차갑고 처연하다. 지난 21일 오후 베일을 벗은 tvN 새 월화드라마 ‘나의 아저씨'(극본 박해영, 연출 김원석)에 출연한 아이유(이지은)다.

‘나의 아저씨’는 각기 성격이 다른 삼형제와 여섯 살에 병든 할머니와 남겨져 힘들게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방영 전부터 가수 아이유의 출연으로 기대를 모았다. 2016년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이후 약 2년 만의 드라마다. 이선균·고두심·박호산·송새벽·이지아·손숙 등 쟁쟁한 선배들까지 가세했다. 방영 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오달수의 하차로 흔들렸지만, 그 자리를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박호산이 메웠다.

사진=tvN ‘나의 아저씨’ 방송화면 캡처
사진=tvN ‘나의 아저씨’ 방송화면 캡처
◆ 아이유, 대사 없이도 강렬하다

‘나의 아저씨’의 첫 회는 지안(아이유)의 일상에 집중했다. 방안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살아가는 그의 삶처럼 극도 전체적으로 어둡고 서늘했다.

지안은 박동훈(이선균)이 다니는 건축회사에서 영수증 정리와 우편물 분배 업무를 하는 파견사원으로 일했다. 퇴근 후에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돈을 벌었다. 머리카락은 질끈 묶고, 표정은 항상 시든 꽃처럼 생기가 없었다.

그는 사채 빚을 갚으며 살았다. 사무실에 큰 벌레가 들어와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다른 여직원들이 소리 지르며 도망갈 때, 오히려 자신의 팔에 붙은 벌레를 대수롭지 않게 죽였다. 방에 불은 켜지 않고, 끼니는 회사에서 훔친 커피믹스와 식당에서 몰래 가져온 남은 음식으로 해결했다. 지안의 성격과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렇다고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악착 같이 돈을 벌었고, 요양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할머니 봉애(손숙)를 혼자서 집으로 옮겼다. 사채업자 이광일(장기용)에게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약한 소리를 내지 않았고, 멍 자국을 숨기기 위해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쓰고도 당당했다. 주위의 수군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유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지안의 삶을 표현했다. 첫 회 내내 무서울 정도로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며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나의 아저씨’ 첫 회는 90분으로 특별 편성됐지만 아이유의 대사는 열 마디 정도였다. 대사 없이 표정과 눈빛만으로도 지안의 감정을 제대로 살렸다. 드라마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첫 회에서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사진=tvN ‘나의 아저씨’ 방송화면 캡처
사진=tvN ‘나의 아저씨’ 방송화면 캡처
◆ 사건의 시작, 감시와 관심 사이

‘나의 아저씨’의 첫 회는 감시로 시작해 감시로 끝났다. 서막을 올리며 동훈과 지안의 사무실에 날아든 무당벌레. 마치 벌레의 시선처럼 카메라는 사무실의 곳곳을 누볐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동훈과 지안이 일하는 건설회사의 CCTV가 클로즈업됐다. 욕망보다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동훈은 항상 CCTV를 신경 썼다. 회사 커피를 훔치는 지안을 본 뒤에도 그는 CCTV를 먼저 살폈다.

회사에 설치된 CCTV처럼 동훈은 지안을, 지안은 동훈을 관찰했다. 회사에서 지안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동훈이 유일했다. 그는 또 마트에서 지안이 홍시를 구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대신 구매했다. 성격이 세심한 그의 관찰은 관심이었다.

반면 지안은 동훈이 뇌물을 받고 서랍에 숨기는 모습을 목격했다. 모르는 척하며 그에게 다가가 “밥 좀 사 달라”고 했고, 헤어지면서는 “오늘은 그냥 집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이라며 뒤돌아섰다. 하지만 동훈은 돈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로 향했다. 그는 점검 중인 엘리베이터와 사내 직원들의 시선 때문에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돈을 손에 쥔 건 그 누구의 눈도 신경 쓰지 않는 지안이었다. 그는 사내 청소부 할아버지 춘대(이영석)의 도움을 받아 사무실에 들어가 동훈 서랍 안에 있던 5000만 원을 품에 안았다. 그가 발 빠르게 움직이는 동안, 춘대가 회사 전기를 내려 CCTV는 작동하지 않았다.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감사실 직원에게 끌려가는 동훈과 그런 그를 모른체 지나가는 지안의 모습에서 첫 회가 마무리됐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관찰하고 궁금해하며 극은 출발했다.

‘나의 아저씨’는 여느 드라마의 첫 회처럼 인물 소개와 이들의 관계가 빠르게 흘러가는 식이 아니라, 주인공의 일상을 느리지만 촘촘하게 보여줬다. 인물의 표정 하나, 작은 숨소리도 놓치지 않은 연출이 돋보였다. 드라마 ‘미생’ ‘시그널’ 등 심금을 울리는 김원석 PD의 힘이 또 한번 빛을 발했다. 복선처럼 깔아놓은 무당벌레와 CCTV, 할머니의 침대를 끌고 가는 지안 옆에 떠오른 둥근 달은 마치 동화의 한 장면같았다. 드라마 ‘또 오해영’을 통해 생동감 넘치는 필력으로 사랑받은 박해영 작가의 세심함도 도드라졌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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