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웹툰 작가 겸 방송인 기안84/ 사진=방송화면
웹툰 작가 겸 방송인 기안84/ 사진=방송화면
예능 프로그램은 연예인들만의 무대가 아니다. 방송 채널이 확대되고 예능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요리사, 변호사, 의사, 소설가, 사진작가, 디자이너, 정치인 등 각계 인사들이 TV에 출연해 재미를 선사한다. SNS, 유튜브 등 소통 창구가 많아지면서 연예인 뿐 아니라 트렌드를 선도하는 인물들이 방송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관찰예능 프로그램의 인기는 이런 이런 경향을 더욱 가속화했다. 연예인들의 일상사는 물론 비연예인 전문가들의 일상을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국내는 물론 해외로까지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웹툰 열풍의 주역들도 예외가 아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잇달아 제작되고 인기를 끌면서 윤태호, 이말년, 김풍, 주호민 등 웹툰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들의 방송 출연도 잦아졌다.

그 중에서도 기안84는 요즘 가장 ‘핫’한 웹툰 작가다. 기안84는 ‘나 혼자 산다’ ‘무한도전’ ‘해피투게더’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주목 받았고, 2017년 MBC 연예대상에서 박나래와 함께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웬만한 남자 연예인도 따내기 힘들다는 화장품 광고 모델까지 됐다.

기안84의 대표작은 ‘패션왕’과 ‘복학왕’이다. 두 작품 모두 참신한 소재와 이른바 ‘병맛’ 코드로 10~20대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30대 이상 독자들에게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공감을 선사했다. 기안84는 ‘패션왕’으로 2012년 열린 ‘Mnet 20’s Choice’에서 20’s Click 부문을 수상했다. ‘패션왕’은 2014년 영화로도 제작됐다. ‘왕’ 시리즈로 5년 넘게 우려먹는다는 비판과 함께 연재 시간을 종종 맞추지 못해 쓴소리도 들었지만···. ‘예능인’ 기안84의 매력은 뭘까.

기안84는 2016년 2월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면서 예능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마감일을 못 맞춰서 구박 받고, 반바지에 슬리퍼 등 편안한 복장으로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등 털털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팬들이 궁금해했던 ‘패션왕’ ‘복학왕’ 작가의 이런 일상은 신선한 재미를 안겼다.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존재감이 뚜렷해진 그는 그해 6월 방송된 MBC ‘무한도전’ 릴레이툰 편에 등장했다. 하하와 짝을 이뤄 그린 웹툰 ‘2046’은 비교적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마감일에 쫓겨 조급한 상황에서도 여유있는 손놀림으로 쓱쓱 그림을 그려내며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2016년 6월 24일 ‘나 혼자 산다’에 고정 출연자로 합류하며 본격적인 예능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그만의 이런 매력 덕분이다. ‘나 혼자 산다’와 ‘무한도전’을 통해 인기를 얻은 그는 그해 10월에는 KBS2 ‘해피투게더’ 2부 코너에도 고정으로 출연하는 등 보폭을 넓혔다.

특히 ‘나 혼자 산다’에서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는 영화 ‘아저씨’의 원빈처럼 셀프로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라내 훌훌 털거나, 폭염 가운데 선풍기도 없는 집에서 웹툰 작업을 하거나, 여름 휴가를 만화방이나 오락실에서 해결하는 등 독특한 모습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tvn ‘택시’에 출연한 기안84는 해 “‘패션왕’ 연재 당시 월급 700만~800만원, 인센티브로 1000만원을 가져갔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늘 입는 옷을 또 입고 대부분의 끼니를 라면으로 떼우는 등 소탈한 모습이 호감을 샀다. 2016년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는 슈트나 턱시도 대신 겨울 내내 입던 패딩점퍼를 입고 참석해 깨알 웃음을 선사했다.

기안84가 그린 한혜진과 전현무/ 사진=’나 혼자 산다’ 방송화면
기안84가 그린 한혜진과 전현무/ 사진=’나 혼자 산다’ 방송화면
지난해 ‘나 혼자 산다’는 전현무, 한혜진, 박나래, 헨리, 이시언, 기안84의 조합으로 환상의 팀워크를 보이면서 최고 인기를 누렸다. 연말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포함해 8개 부분을 휩쓸었다. 이들 중 유일하게 비연예인 쪽에 속하는 기안84의 활약을 빼 놓을 수 없다.

특히 ‘여름나래학교’ 편에서는 진짜 늦잠을 자서 홀로 기차를 타는 리얼한 상황으로 눈길을 끌었다. 또 아무렇지 않게 양말로 코를 풀고 다시 잠을 자는 등 특유의 털털함으로 재미를 더했다 . 계곡에서 게임을 할 땐 몸개그까지 선보이며 그야말로 예능인다운 활약을 선보였다.

‘여름나래학교’ 편 외에도 기안84는 진지하지만 어설픈 노래 실력과 댄스에다 이시언, 헨리와 ‘3얼'(세얼간이) 라인까지 구축하며 또 다른 웃음을 안겼다. 자신의 지인인 ‘미대오빠’ 김충재와 박나래를 엮어주다가 급기야 삼각관계를 형성, 연말 시상식에서 ‘결혼’까지 언급하며 ‘이마뽀뽀’를 해 화제를 모았다. 박나래와의 ‘썸’은 방송용인지 진짜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시청자들이 혼란에 빠질 정도였다. 이 같은 썸 타기는 그가 지금까지 예능에서 보였던 모습 때문에 더욱 관심을 증폭시켰다. 꾸밈없는 그대로의 일상을 노출해온 그여서 제작진에 의해 적당히 의도된 연출도 혹시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기안84는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관찰예능에 최적화된 인물이다. 지난 26일 방송된 ‘나 혼자 산다’에서 그는 자신이 전에 살았던 동네와 ‘패션왕’의 배경이 된 장소를 배회했다. 웹툰 ‘복학왕’의 순위가 하락해 초심을 찾기 위해서였다. 매주 마감을 위해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기안84는 정신 무장을 위해 수원 팔달산에 올랐다. 먹던 치킨과 무를 가방에 넣고 팔달산을 힘차게 뛰어 오르는 기안84의 엉덩이 부분 얼룩에 시선이 쏠렸다. 스튜디오에서 영상을 보던 이시언이 “뭐냐? 지린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자 기안84는 “무 국물이 샜다”고 대꾸했다. 얼룩은 계속 커졌다. 역시나 의도하지 않은 개그로 시청자들의 폭소를 유발했다. 팔달산 정상에 올라서는 박나래와의 썸을 언급하며 “사실 시상식 때 대상 못 받아서 다행이야”라며 “결혼은 조금 더 늙어서 하자”고 소리쳤다. 이제는 예능을 좀 아는 기안84의 재치가 돋보였다.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은 기안84가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박나래에게 ‘이마뽀뽀’를 한 것처럼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들어 내는 데 대해 불안해 하면서도 “진정성을 봐달라”고 했다. 현실과 연출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작한 예능 초짜 기안84가 ‘진정성’을 무기로 보여줄 진짜 예능이 기대된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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