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한혜리 기자]
영화 ‘탐정 홍길동’ 조성희 감독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영화 ‘탐정 홍길동’ 조성희 감독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은 늘 ‘다른 것’을 갈구한다. 익숙한 것보다 새로운 것. 감독 조성희가 그렇다. 영화 ‘남매의 집’, ‘짐승의 끝’으로 보여준 그의 ‘다른 것’이 담긴 영화는 색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남들 모두 세련된 CG를 뽐낼 때, 그는 옛 시골의 모습을 담았고 남들이 리얼리즘에 기반해 현실을 담을 때, 그는 이 세상에 없는 판타지를 담았다. 송중기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늑대소년’이 그랬고 얼마 전 개봉한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이 그렇다. 다만, ‘탐정 홍길동’은 조금 다르다. 세련된 CG도 있고, 홍길동이란 익숙한 인물도 있다. 그러나 역시 조성희 감독만의 ‘다른 것’이 담겨 있다. 조성희 감독은 ‘새로운 것’을 찾는 걸 넘어서서 익숙한 것으로 ‘다른 것’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 ‘탐정 홍길동’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0. 영화의 완성본을 처음 본 기분은 어땠는가.
조성희 : 하도 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고, 편집하면서 수백번 봤더니 완성된 걸 봤을 땐 오히려 별 생각이 들지 않더라. 그 감정이 계속될 줄 알았는데, 개봉 전에 초조한 건 어쩔 수 없더라. 하하.

10. 먼저 ‘탐정 홍길동’이란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부터 듣고 싶다.
조성희 : 캐릭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개성 있는 캐릭터가 영화 전면에 나오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다. 또, 무(無)에서 창조하기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 중에 되살리고 싶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홍길동이었다.

10. 왜 홍길동이었나.
조성희 : 홍길동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비록 일부에게 비난받을 지라도, 옳지 못한 방법일지라도 정의를 구현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고자하는 의적의 느낌이 매력적이었다. 홍길동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잖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같은. 홍길동은 이런 이전 세대와의 갈등,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이미지 등이 맞물려서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또, 홍길동이 가진 특유의 뉘앙스가 있다. 가장 흔한 이름이면서 만나보기 힘든 캐릭터 아닌가. 이런 일련의 이미지들이 재밌다고 느껴졌기에 홍길동을 택했던 것이다.

10. 그럼 왜 홍길동엔 이제훈이었나.
조성희 : 이제훈은 시나리오를 작업하면서 내가 상상하던 홍길동의 이미지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홍길동은 일단 외모에서부터 남성적이고 강한 이미지보다는 약간 덜 성숙된, 철부지 같은 이미지였다. 때로는 예민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찌질해 보이기도 하고 난폭해 보이기도 하는 홍길동의 이미지를 이제훈이 다 갖고 있었다. 연기력이야 두말할 정도로 좋은 배우고. 다행이었던 것은 이제훈이 탐정 홍길동이 가지고 있던 속성들을 완벽히 인지했다는 거다. 남자 배우로서 멋진 역할을 하길 바랬을텐데, 홍길동을 택해주고 애정을 쏟아준 이제훈에게 고맙다. 작업하면서 내내 느꼈다. 이제훈이 홍길동이여서 다행이라고.

10. 본인이 그린 홍길동과 이제훈이 연기한 홍길동이 일치했는가, 달랐는가.
조성희 : 홍길동이란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함께 만들어나갔기 때문에 내가 그린 홍길동과 이제훈이 연기한 홍길동이 다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촬영 때도 내가 알고 있던 홍길동의 명확한 비전이나 하고자하는 부분들을 이제훈에게 일방적으로 부탁하지도 않았다. 이해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의지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훈 역시 치열하게 고민했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영화 ‘탐정 홍길동’ 스틸컷 / 사진제공=CJ 엔터테인먼트
영화 ‘탐정 홍길동’ 스틸컷 / 사진제공=CJ 엔터테인먼트
10. 내레이션, CG 등 후반 작업이 오래 걸렸다고 들었다. 후반 작업은 어떻게 보면 홍길동이란 인물을 다시 바라보는 작업이 됐을 것 같다.
조성희 : 촬영 때는 영화 자체가 캐릭터로 출발했고, 관객들에게 어떻게 이해받을 것인지, 사랑받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후반 작업은 또 다른 고민의 시작이었다.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지, 캐릭터를 어떻게 더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예를 들면 시장에서 장을 봐왔는데, 이것들을 어떻게 요리할까라는 고민이었던 거지. 고민에 대한 결과는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은 것 같다.(웃음)

10.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잡는다’라는 영화의 슬로건처럼 홍길동은 그간 우리가 생각해온 홍길동과는 달랐다. 홍길동을 비튼 이유는 무엇인가.
조성희 : 이미 근사한 정의의 사도는 너무 많다. 색다른 인물을 관객들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은 야심이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비틀게 됐다. 그래서 영화 속 홍길동에 싸움을 못한다든지 신념이 없고 사람에 대한 환멸이 가득하고 잔인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설정들을 부여했다. 홍길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받은 것을 2배로 돌려준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영화 속 홍길동은 우리 대신 악당들을 물리치며 손을 더럽히는 사람이었다. 또, 홍길동 자체가 새로운 인물의 탄생과 출발의 소명을 깨닫고 거듭나는 인물이기 때문에 아이들과도 유치하게 말싸움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간으로 그려졌다.

10. 고정관념이 뚜렷한 인물을 비튼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은 없었나.
조성희 : 반대로 난 홍길동은 생각보다 여백이 많은 인물이라 여겼다. 홍길동은 기존에 영화나 만화로 많이 다뤄졌지만 각각의 작품에서 모두 다른 모습으로 그려졌다. 예를 들어 베트맨이나 스파이더맨 등의 히어로들은 명확한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홍길동은 불분명한 부분이 더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 부분에 대한 부담은 별로 없었다.

10. ‘탐정 홍길동’의 모티브가 따로 있는가.
조성희 : 특별히 한 작품을 놓고 모티브로 둔 것은 따로 없다. 하지만 영화 전반적으로 이국적인 것들이 많이 깔려있다. 코트나 중절모, 악당들의 그림자, 평원, 알프스 산 같은 특이한 모양의 산이라든지. 반면 동이(노정의)와 말순이(김하나)의 가난한 집이나 옷, 농촌생활 등 이런 것들은 한국적인 느낌이 많이 난다. 이국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들이 충돌하는 거지. 이런 충돌에서 오는 재미가 또 있다. 안 어울리는 것들이 어우러지면 굉장히 흥미롭다.

10. 비틀기가 통했는지 ‘한국형 히어로’의 탄생이라고들 한다. 이런 찬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성희 : 걱정했던 것보다는 많은 분들이 호의를 가지고 봐주신 것 같아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하. 개인적으로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긴 하다.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홍길동은 히어로나 영웅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좁은 의미로 근사한 옷을 입고 화려한 액션 등의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말하자면 홍길동은 넓은 의미의 영웅이겠지. 시나리오 작법에 대해 기술한 책 중에 영화 ‘택시 드라이버’(1976)의 택시 기사 트래비스(로버트 드니로)가 안티히어로라고 하더라. 홍길동도 트래비스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개성있는 캐릭터다. 한 번쯤 볼만한 특이한 인물로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한혜리 기자 hyeri@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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