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상회’ 박근형.

‘장수상회’ 박근형.

‘장수상회’ 박근형.

내 이름은 성칠, 별 성에 일곱 칠이요. 이 ‘할배’, 참 까칠하다. 툭하면 성깔 내고, 뭐든 자기 마음대로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풋내기 소년 같다. 툭툭 내뱉는 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성칠만의 방법이다. 어릴 때 좋아하는 사람 괜스레 건드리는 것처럼. 영화 ‘장수상회’ 속 성칠은 꼭 박근형 같다. 아니, 박근형을 보고 영화 속 캐릭터를 만든 것 같다.

1940년생, 우리 나이로 올해 76세다. 그간 수많은 작품에서 보여준 그의 카리스마는 익히 알고 있다. 또 여러 젊은 배우들의 입을 통해 그의 엄격함과 호통도 널리 알려졌다. 강한 인상의 외모가 더해지면서 박근형은 까칠하고 무서운, 좋게 표현해서 카리스마 가득한 ‘할배’였다. 하지만 ‘꽃보다 할배’는 그런 박근형을 로맨티스트로 만들었다. 그리고 무서운 얼굴이 아닌 푸근한 웃음을 보였다. ‘꽃보다 할배’ 이전에 ‘장수상회’와 대중이 만났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전해졌을 거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로맨스, 박근형은 ‘충격’을 먹었다. “이런 기회가 오리라고 생각 못 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국내 영화계에서 노년의 사랑을 소재로 한 상업영화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충분히 이해된다. 그래서 그는 독을 품었다. 그 어떤 배우보다 ‘연기 욕심’만큼은 뒤지지 않는다는 그는 50년 전 연극학도 시절을 떠올리며 성칠을 만들어갔다. ‘장수상회’는 박근형을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든 작품이었던 셈이다. 할배에게 듣는 초심,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것만 같다.

Q. 젊은 시절에 연기했던 로맨스와 ‘장수상회’의 황혼 로맨스,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있을 것 같다.
박근형 : 본질에서 보면 그 마음은 같다. 그 표현에 있어 차이가 날 뿐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를 70대에 맡았지만, 과거에도 했기 때문에 표현의 노하우는 있다. 그건 어려운 게 아닌데, 이런 기회가 오리라고 생각 못 했다. 70대에 사랑 이야기를 한다는 게 나한테 엄청난 충격이었다. 시나리오를 받고 놀라기도 했고, ‘이건 해야지, 다른 사람한테 뺏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기 욕심이 보통 사람 이상이라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 많이 했다. 그래서 처음 감독과 미팅할 때 삭발하겠다고 했다. 감독님도 차마 말을 못하고 있다가 ‘정말 할 수 있겠느냐’고 하더라. 그래서 1.5~3cm 길이를 유지했다. 더 자르고 싶었는데 까칠한 노인으로 보이는 데 최적이라고.

Q. 지난 2013년에 드라마 ‘사랑해서 남주나’에서도 황혼 로맨스를 그렸다. 이번 ‘장수상회’가 그것과 또 다른 점은 무엇인가.
박근형 : 드라마하곤 다르다. 연속극은 메시지를 길게 잡아서 가는 거고, 영화는 2시간 안에 결정해야 한다. 표현하는 것만 놓고 보면 영화가 좋다. ‘사랑해서 남주나’는 적극적인 사랑을 못 하고, 미적대면서 바라는 사랑이고, ‘장수상회’에서는 쟁취하는 사랑이다.

Q. ‘장수상회‘를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황혼 로맨스 대부분은 삶의 마지막과 맞닿아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모습이 실제 모습처럼 보여서 더 울컥하는 마음이 있다. 연기하면서 그런 생각은 들지 않나.
박근형 : 가끔 느낀다. 연기할 때 근본을 사람에게 두고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배반하고, 갈망한다. 우리가 꾸며낸 허구를 현실처럼 보이게 하는 거다. 그래서 연기할 때 ‘만약 이 사람이라면’부터 출발한다. 그렇게 연기하다 보면 섬뜩섬뜩하다. 영화 속 그들이 우리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하냐. 억장이 무너지기도 한다. 그런 개인적인 공감이 관객한테 넘어가면 성공하는 거다.

‘장수상회’ 박근형.

‘장수상회’ 박근형.

‘장수상회’ 박근형.

Q. 예능 ‘꽃보다 할배’를 통해 로맨티스트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실제로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
박근형 : 별명이 ‘박씨 아자씨’였다. 아저씨도 아니고 ‘아자씨’. 그만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여자들 심부름도 해주고, 잘 어울려 지냈다. 그런데 강렬한 역을 맡다 보니 엄격하고 까칠해 보이게 됐다. 그러다가 ‘꽃보다 할배’를 하고 났더니 그렇게 좋은 이미지로 다가올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멀리 떨어져 있고, 수술했으니까 걱정돼서 전화했을 뿐인데. 하하. 그래서 다른 사람은 집에 전화 안 하느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Q. 젊은 시절 여자들하고 잘 어울려 지냈던 걸 백일섭 ‘할배’가 ‘바람둥이’라고 표현한 건가. (웃음)
박근형 : 백일섭이 젊었을 때 인기 많았다. 그땐 백일섭이 번 돈으로 술 얻어먹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같이 돌아다녔는데 나보고 바람둥이라고 하면, 저(백일섭)는 뭐냐. 하하.

Q. ‘꽃보다 할배’를 하면서 팬층이 다양해졌을 것 같다. 해외 팬들도 그렇고.
박근형 : (해외 인기까지는) 잘 못 느낀다. 국내에선 ‘꽃보다 할배’ 하고 나선 아이부터 어른까지 전부 알아보더라. 예능의 힘에 정말 놀랐다. 사실 예능을 가까이하기도 무서운 게 배우는 어느 정도 신비로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예능을 하다 보면 바닥이 보일 것 같고, 그래서 가까이 안 하려다 보니 멀어지고. 젊은 사람들이 예능에서 혼신의 힘을 쏟고 있으면 불안하다. 소위 연기하겠다는 배우들이 예능에서 저러면 신비로움이 없을 텐데 싶은 마음이다. 뭐든지 적당한 게 좋다.

Q. 그런 이유로 ‘꽃보다 할배’도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한 건가.
박근형 : 처음 ‘꽃보다 할배’ 제안이 왔을 때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 두 사람이 덤벼들어야지. 그러다가 꼼짝없이 하게 됐는데 그 힘이 위대하더라. 나영석 PD는 더 위하게 보이고. 한 번 나가면 30명 정도 나가는 데 드라마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돌발적인 것을 취재해야 하니까. 그리고 오래 하다 보니 위험한 게 있더라. 처음에는 꾸미지 않은, 속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게 만들어지고 꾸며질까 걱정된다. 다행히 아직은 없는 것 같다.

Q. 영화 속에서 박근형과 백일섭이 부딪히는 장면이 있다. ‘꽃보다 할배’ 때문인지 그 장면이 더없이 재밌더라.
박근형 : 정말 촬영하기 3일 전에 알았다. 백일섭이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고, 재밌게 촬영했다.

Q. 또 박근형과 윤여정은 여러 데이트를 즐긴다. 그럼 실제 아니하고는 평소에 데이트를 자주 하는 편인가.
박근형 : 그래야 하는 데. 하하. 그리스 사진 찍어 와서 보여주면, 나하고 같이 가야지 사진만 보여주면 뭐하냐고. 그래도 선물이라고 사서 주면 그건 좋아한다. 그걸로 때우는 거지. 하하. 그리고 그런 경우를 만들려고 애쓰는 게 영화 보는 정도다. 노래하는 것도 영화니까 한 거지. 또 춤출 때는 발을 밟아서 야단 많이 맞았다. 마지막 날까지도 발을 밟았다. 이 중에 실제 해보고 싶은 거, 글쎄. 하하.

Q. 그런데 윤여정 씨가 모든 방송과 인터뷰에서 ‘장희빈’ 때 그렇게 꾸지람했다고 이야기하고 다녀서 민망하겠다. (웃음)
박근형 : 이해는 간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후배들한테 이야기해줄 때 나만의 방식이라는 전제를 한다. ‘장희빈’을 하는데 예쁘게 생기고, 영특한 아가씨가 호흡이 안 맞아서 이야기했는데, 그걸 가슴에 담고 있었던 모양이다. 50년이 됐는데. 하하. 사실 나는 돌아서면 모른다. 멋진 드라마나 연극 대사 물어보면 전혀 모른다. 그런 이야기도 했느냐고 할 정도다. 자꾸 비워놓고 있다. 또 새로운 걸 해야 하니까. ‘장수상회’도 개봉되고, 인터뷰 지나고 나면 새카맣게 모를 거다.

‘장수상회’ 박근형.

‘장수상회’ 박근형.

‘장수상회’ 박근형.

Q. 지금도 여전히 후배들에게 무서운 분인가.
박근형 : 무섭게는 하지 않고, 가능성이 있는 사람하고 이야기한다. 가능성 있는 사람하고 이야기했을 때 이해를 못 하면 속이 상한다. 그리고 시범을 하진 않고, 정황을 보고 경험한 것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한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Q. 이번 영화에서 엑소 찬열을 만났다. 다른 이들은 연기자지만, 찬열은 아이돌이다. 그리고 엑소는 사실 잘 몰랐을 것 같은데.
박근형 : 아이돌은 전혀 모른다. 하하. 이전에 ‘판다양과 고슴도치’를 하면서 슈퍼주니어 동해를 만나 아이돌에 대해 처음 알았다. 그땐 그 친구가 그렇게 인기 있는 줄도 몰랐다. 젊은 아이인데 유럽도 가고, 동남아도 가고. 그래서 뭐하는 아이냐고 했더니 노래한다고 하더라. 그 녀석이 해외 공연 가면 ‘할배 뭐 하느냐’면서 감기 조심하라고 문자를 보내오곤 한다. 만나면 사진 찍고. 그래서 지금은 공연장에 가면 끝까지 앉아있을 정도는 된다. 한두 번 하니까 익숙해졌는데 노래는 아직 모르겠다. 하하.

Q. 촬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박근형 : 힘들지 않았다. 강제규 감독이 대가라는 걸 알았다. 배우가 연기할 수 있게끔 폭을 넓혀준다거나 놀이마당을 만들어주더라. 큰 영화만 하던 분인데 아주 디테일하고 섬세한 영화를 만들면서 노심초사하는 면도 봤다. 그게 윤여정이란 배우가 상대역을 해주니까 안심되고, 감독님도 믿음이 있었을 거다. 할 수 있는 걸 다 보여주면, 취사선택은 감독님이 하셨다.

Q. 연극학도 시절로 돌아가서 이를 악물고 했다는 말을 했다. 연극학도 시절로 돌아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박근형 : 아주 교과서적인 의미다. 연극학도 시절이었는데, 그때가 신파에서 신극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던 때고, 학생 극이 붐이었다. 또 학생 극에서 동인제 연극제로 넘어가고, 상업극단으로 가던 시절, 연극 변천사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땐 이론도, 실재도 충실해야 했다. 러시아의 연극이론, 동양의 연극이론 등을 공부하면서 63~64년도까지 연극을 했다. 40일 연습하고, 4~5일 공연하고, 1년에 11편씩 한 2년 동안 미쳐 있었다. 이후 그렇게 연기한 게 영화 한 번, TV 한 번이다. 드라마 ‘추적자’에서 연극학도로 돌아간 것처럼 분석하고 역할 창조를 해냈다. 이번 ‘장수상회’ 역시 하나의 희곡 같았다. 역할 창조를 해내는 데 다른 방법이 없더라. 교과서적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르겠으나 연극학교 시절을 너무 잊고 있었다. 그게 근본이었는데. 시나리오 읽었을 때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이해한 다음에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그게 기본적인 연극학도다. 그 방식으로 했다.

Q. 연극학도 돌아가서 연기했다는 말이 ‘초심’으로 해석된다. 50년 동안 연기하다 보면 그 초심이 분명 흔들렸을 때가 많았을 것 같다.
박근형 : 직업을 그만두고 고향에 6개월 내려가 있을 때 자살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당시 엄청나게 독한 감기약이 있는데, 한꺼번에 다량으로 살 수 없는 약이었다. 그걸 30알 정도 먹고, 버스에서 잤다. 근데 버스가 흔들리면서 도중에 토해내고, 위장만 버렸다. 군대에 가서 나아졌다. 하하. 연기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다 못해 비참하게 됐다. 그게 우울증으로 왔으면 큰일이 났을지도 모르는데 극복하게 된 셈이다. 여하튼 그러다가 우연히 주소도 틀린 엽서를 받게 됐는데 한 달 동안 올라와서 연극 한 편하고 내려가라는 거다. 고민 고민하다 연습해서 올렸는데 그 작품으로 동아 연극상을 탔다. 이왕 온 김에 하나 더 해다오 하다 보니 TV로 가게 됐다. 결국, 갈 길이 이거였나 싶다. 지금까지 다른 길에 눈을 팔아본 적 없고, 오로지 배우라는 것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장수상회’ 박근형.

‘장수상회’ 박근형.

‘장수상회’ 박근형.

Q. 지금도 엄청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나.
박근형 : 앞서 저예산 작품을 하느라 체력이 많이 소진됐다. 다행히 이번에는 감독님이 시간적 여유를 늘려주고, 현장이 웃음으로 가득 차 있다 보니 회복됐다. 그러다 3분의 2 정도 찍었을 때, 늦가을 용인에서 촬영할 때였다. 놀이기구 타고 촬영하다 감기가 걸렸다. 병원장면 찍으러 갔을 때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렴기가 있는 거다. 주치의한테 이야기하고 두 달 약 먹고 나았다. 기침을 심하게 했는데 현장에서는 감추려고 애를 썼다. 다 지난 다음에 그때 그 이야기를 했다.

Q. 평소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
박근형 : 집에서 눈 뜨면 30분 스트레칭하고, 자전거도 30분 정도 탄다. 또 필드에는 안 나가지만, 골프 연습을 한다. 골프가 유연성을 유지하는 데 좋다. 반듯하게 서서 작업하는 것도 견디는 데 좋다.

Q. 지금 연세에도 새로움에 도전하고,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또 여러 젊은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면 롤모델 또는 꿈처럼 자리 잡았다. 그런 사명감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형 : 사명감 가지고 있다.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도 운이고, 그러다 보니 사명감이 생겼다. 우리한테는 나이 든 자원이 많은데, 이 자원이 젊은 자원들하고 합쳐져서 새로운 콘텐츠가 개발됐으면 좋겠다. 외화를 보면 가족이 어울리는 소재, 노년을 소재로 한 게 많은데 유독 우리는 없었다. 세계적으로 봐도 우리 배우들이 우수하다. 이들이 모두 어우러져 번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잘 해야겠다는 욕심이 들었고, 연극학도처럼 하게 된 것도 있다.

Q. 50년 이상을 연기했고,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다. 이제는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놔도 될 것 같은데,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형 : 이 계통에 있으면 그런 사명감은 꼭 져야만 하고, 반드시 지게 된다. 그걸 떠나 나이 여든이 넘어 부름이 없을 때 귀향할 생각을 하고 있다. 고향에서 옛날 서당 같은 걸 해볼까 한다. 적성이 맞는 아이들하고 책 읽고, 얘기하고. 그게 확대되면 기성인 들도 가능할 것 같다. 배우가 되겠다고 상경해 악전고투하는 것 말고, 지방에서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화톳불에 모여 이야기하듯, 그런 운동을 하고 싶다. 지금도 고향을 다니면서 모임을 추진하고 있다. 한 4년 정도 됐다. 그러다 나이가 더 많아서 못하게 되면 다음 세대한테 물려주면 되고. 고향이 정읍인데, 정읍에는 망부석도 있고, 별난 설화들도 많다. 그런 걸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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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운 기자 jabongdo@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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