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혁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피쳐사진8
이장혁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피쳐사진8
(part3에서 이어옴) 이장혁은 클럽 재머스에서 열린 아무밴드의 첫 공연에서 창작곡 ‘도마뱀’을 불렀다. 또한 재머스에서 제작한 컴필레이션 앨범 ‘ROCK 닭의 울음소리’에 자작곡 ‘판토마임’을 발표했다. 이후 카피음악이 아닌 창작곡을 고집하는 밴드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각종 록페스티벌과 인디 편집 앨범에 참여하면서 이장혁은 조금씩 싱어송라이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7년 레이블 ‘인디’는 ‘인디밴드 10팀을 선발해 음반을 제작한다’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던 인디 밴드들이 대거 참여해 3일 동안 경합을 벌였다. 아무밴드는 ‘판토마임’과 ‘화산’ 2곡을 불러 톱8에 선발되었다.
이장혁 상도동 성대시장 피쳐사진14
이장혁 상도동 성대시장 피쳐사진14
첫 정규앨범 준비에 들어간 아무밴드는 마포경찰서 근처에 월세 30만원을 들여 지하 연습실을 구했다. 낮에 일하고 밤에는 연습을 하던 그해 겨울에 외환위기가 터졌다. 공사장 일감이 급감하는 위기를 맞았지만 이장혁은 정규앨범 제작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불태웠다. 1998년 펑크와 포크 록 질감이 공존하는 아무밴드의 첫 앨범 ‘이.판.을.사’가 세상에 나왔다. 여러 음악 장르가 혼재해 앨범의 통일성이 떨어졌지만 인디 역사에 남을 명곡 ‘사막의 왕’이 탄생했다. 재킷에 여배우 우마 셔먼의 사진은 독특했다. “영화 북회귀선을 보고나서 우마 셔먼을 무지 좋아해 재킷에 넣었습니다.”(이장혁)
이장혁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피쳐사진7
이장혁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피쳐사진7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아무밴드지만 정작 이장혁은 덤덤한 반응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특별히 좋았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땐 밴드 사운드를 잘 몰랐습니다. 이펙트를 다루는 것이나 일렉트릭 기타도 잘 몰랐기에 통기타를 연주하는 정도였다고나 할까. 베이스를 쳤던 후배 이상훈에게 음악적으로 많이 배우긴 했지만 음악에 즉흥적 요소가 많아 많은 연습이 필요했는데 탄탄하게 받쳐 줘야할 드럼이 3~4번이나 교체되어 밴드 운영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습니다.”(이장혁)

아무밴드
아무밴드
아무밴드

2000년 아무밴드 해산 이후 이장혁은 오랜 공백기를 가졌다. “사실 아무밴드를 그만두고 이름 없는 밴드를 하나 했었는데 공연 한 번하고 접었습니다.”(이장혁) 2002년 클럽 빵 김영등대표의 연락을 받고 솔로가수로 거듭났다. 빵의 편집앨범 ‘Lawn Star’를 통해 ‘꿈을 꿔’를 발표한 이장혁은 이메일로 인터뷰한 평론가 박준흠의 소개로 경기도 일산에 녹음실을 둔 레이블 12몽키스와 인연을 맺었다. 2003년 당시, 서울 답십리의 작은 협회신문의 프리랜서 편집 일을 했던 이장혁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인디음악 지원 사업에 선택되었다. 솔로앨범 준비에 돌입했다. “당시 스트레스로 간염에 걸려 고생했습니다. 몸이 약해지면서 갑자기 음색이 확 변했고 예전엔 쨍쨍했는데 센 소리가 전혀 나오질 않아 오래 노래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난곡 연습실에서 나오지 않는 소리는 버리면서 녹음했죠. 1집 첫 곡 ‘누수’도 거친 목소리를 예상하고 만든 노래인데 전혀 다른 맛으로 갔습니다. 당시 목소리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소리를 내는 훈련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이장혁)
이장혁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피쳐사진14
이장혁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피쳐사진14
이장혁의 음악색채는 기본적으로 어둡고 절망적인 정서가 지배한다. 영등포역과 주변 쪽방촌은 원초적 정서의 뿌리다. 이장혁과 그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 놀랍게도 옛날 그대로였다. 그곳의 어둡고 칙칙한 풍경과 공기는 이장혁이 느꼈을 절망감의 실체를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었다. 살을 베이는 것 같은 아픔이 담긴 이장혁 음악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날, 영등포 쪽방촌을 방문한 이장혁은 갑자기 줄담배를 피웠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그 절망 앞에서 재현되는 답답함을 그렇게라도 이겨내기 위함이었으리라.
이장혁 상도동 성대시장 피쳐사진15
이장혁 상도동 성대시장 피쳐사진15
2004년 7월, 그 같은 절망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낸 솔로 1집을 발표했다. 1집은 밴드 해체 이후, 오랫동안 은둔했던 그의 새로운 출발점이자 인디 씬의 방향성을 제시한 명반이다. 다양한 악기들을 도입하며 다채로운 사운드를 들려준 1집은 고통으로 점철된 그의 내면이 음악으로 승화되어 대중과 소통하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비록 저예산 녹음이었지만 뛰어난 구성과 세련미는 그가 이 앨범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를 증명한다. 녹음기간에 건강이 나빠져 약해진 보컬은 오히려 그만의 독보적인 감성으로 무장해 청자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인상적인 커버 그림은 고양이의 얼굴을 한 쓸쓸한 사람의 이미지다.
이장혁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피쳐사진9
이장혁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피쳐사진9
1집 수록곡 대부분은 긴 휴식기간에 만들어졌다. 거의 모든 곡들은 5분을 훌쩍 넘긴다. 답답하고 치명적인 사랑의 정서를 놀라운 음악실험으로 표현한 ‘칼’은 15분이 넘는 대곡이다. 버려진 인간의 소외와 단절을 애절한 보컬을 통해 극대화 시킨 ‘스무살’은 정점이다. “아무밴드 때는 앨범의 통일성을 놓쳤기에 그 부분에 집중해 악기 사운드를 조화시켜 전체적인 색깔을 맞추려 노력했습니다.”(이장혁) 가야금과 중국 악기 얼후가 등장하는 ‘동면’과 일렉트릭 피아노와 해먼드 오르간 사운드가 엉롱한 ‘자폐’도 인상적인 트랙이다. “처음 ‘동면’은 가야금을 생각하고 만들었고 첼로를 쓰려했는데 원하는 것을 연주해줄 연주자를 찾지 못해 중국에서 얼후를 배워온 제 동생에게 부탁했습니다. ‘자폐’에 들어간 해먼드 오르간은 원래 좋아하는 악기였고, 아는 누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이장혁)
이장혁 상도동 성대시장 피쳐사진11
이장혁 상도동 성대시장 피쳐사진11
솔로 뮤지션으로 거듭난 이장혁은 컴퓨터 작업을 시작하며 자신만의 요령을 익혔다. “밴드는 멤버 각자가 맡은 것에만 충실하면 되니까 쉬운데 혼자 하는 작업은 악기들의 특징과 색깔을 다 알아야 하기에 더 어렵습니다.”(이장혁) 이장혁의 솔로 앨범은 제법 반응을 이끌어냈다. “제 솔로 앨범을 기다렸던 사람들은 아무밴드 때의 음악을 기대했던 것 같은데 솔로앨범은 완전히 다른 색깔이었죠. 사운드에서 차이가 많았습니다. 편곡이 다소 과한 부분이 있었지만, 색깔과 통일성을 그나마 잘 반영했다고 생각합니다.”(이장혁) 명곡 ‘스무살’을 탄생시킨 이장혁의 솔로 1집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도 선정되었다. 또다시 4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이장혁은 상처로 얼룩진 자신의 청춘 이야기를 포크 질감으로 담은 시리도록 절망스런 정서를 담은 2집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고히 했다.(part5로 계속)
이장혁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피쳐사진16
이장혁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피쳐사진16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이정실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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