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26일 10:34 자본 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위상 달라진 롯데그룹…한달간 계열사 5곳 회사채 ‘완판’ 행진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조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재무 불안정성 등으로 기관투자가의 ‘기피 대상’으로 꼽힌 롯데그룹이 회사채 시장에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호텔롯데는 이날 2년물 600억원 3년물 400억원 등 총 1000억원어치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수요예측 결과 2년물에 5300억원 3년물에 4550억원 등, 총 9850억원의 매수 주문이 접수됐다. 목표 물량의 10배에 육박한 투자수요가 몰리는 등 흥행에 성공하면서 발행 규모를 10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늘렸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활발하게 회사채 시장을 찾고 있다. 호텔롯데를 포함해 지난 한 달간 롯데그룹 계열사 가운데 회사채 수요예측을 연 곳은 롯데칠성음료, 롯데글로벌로지스, 롯데하이마트, 롯데쇼핑 등 총 5곳이다. 5개 계열사 회사채 수요예측에 총 3조8440억원 매수 주문이 몰리는 등 ‘완판’ 행진이 이어졌다.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자 부담도 낮췄다. 5개 계열사 모두 개별 민평금리(민간채권평가사들이 매긴 금리의 평균)보다 낮은 금리에 조달하는 ‘언더 발행’을 달성했다. 매수 주문이 쏠리면서 채권 발행에 따른 이자 부담이 감소했다는 뜻이다.

롯데그룹은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롯데건설에 대한 지원 부담으로 인해 대부분 계열사가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었다. 좀처럼 투자자를 구하지 못하면서 계열사들이 잇따라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최근 들어 ‘아픈 손가락’으로 꼽힌 롯데건설의 유동성에 다소 숨통이 트인 게 회사채 시장 투자심리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롯데건설은 시중은행과 증권사를 통해 총 2조3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매입 펀드 조성을 확정했다. 롯데건설의 미착공 PF 사업장을 지원하기 위한 취지다.

기관투자가도 롯데그룹 계열사의 회사채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간 신용도 불안에 시달린 롯데그룹 계열사의 개별민평 금리가 동일 등급 기업보다 높은 수준에 책정돼 있어서다.

롯데그룹의 조달 자신감은 회사채 주관사단 규모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호텔롯데는 이번 회사채 발행을 위해 KB증권, 키움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4곳을 주관 및 인수 증권사로 선정했다. 3개월 전인 지난 1월 호텔롯데 회사채 발행 당시 총 11곳의 증권사가 주관 및 인수에 참여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 넘게 줄어들었다. 소위 주관 업무를 담당하는 증권사들이 동시에 투자자로 참여하는 ‘캡티브 물량’ 없이도 ‘완판’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롯데그룹의 재무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라는 게 자금시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주력 계열사로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해오던 롯데케미칼의 실적 반등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롯데케미칼의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은 3332억원으로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한 대형 증권사 회사채 발행 담당자는 “금리 변동성이 큰 데다 중동 지정학적 위기까지 겹친 상황에서 연이어 계열사 회사채가 ‘완판’되는 등 투자심리 개선세가 뚜렷한 건 사실”이라며 “다면 건설·석유화학 등 불황에 시달리는 계열사들의 실적·재무지표가 개선될 수 있을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