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제작사·창작자, 산업위축·다양성 감소 지적…"현장 목소리 수렴해야"

문화상품 제작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하 문산법) 제정안이 연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추진되는 가운데 웹툰업계에서 법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웹툰업계는 법안의 포괄적인 규제 탓에 '기다리면 무료'(기다무), '매일 열시 무료'(매열무) 등 웹툰의 성공에 주효한 역할을 했던 비즈니스 모델이 사라지고 산업 위축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다리면 무료' 웹툰 사라지나…'문산법' 추진에 업계 우려
26일 웹툰업계에 따르면 문산법은 2020년 유정주 의원이 발의안과 2022년 김승수 의원 발의안을 반영한 위원회 대안 형태로 지난 3월 29일 문화체육관광원회 전체 회의를 통과했다.

올해 만화 '검정고무신' 고(故) 이우영 작가의 별세와 맞물려 탄력을 얻은 이 법안은 연내 통과를 목표로 추진 중이다.

올해 마지막 국회 본회의는 28일로 예정돼 있다.

문화상품제작업자를 보호하겠다는 의도지만, 규제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서 자칫 웹툰산업 자체를 고사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법안에서는 열 가지 불공정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 제작 방향의 변경, 제작인력의 지정·교체 ▲ 문화상품 수령 거부 ▲ 비용 보상 없는 문화상품 수정·보완 또는 재작업 요구 ▲ 기술자료·정보 제공 강요 ▲ 판매촉진비 및 가격할인 비용 전가 ▲ 자기 또는 계열사가 제작한 문화상품 차별 취급 ▲ 문화상품 판매대금 결제 방법, 가격, 조건의 부당 지정 ▲ 통상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의 대가 ▲ 문화상품 사재기 ▲ 지식재산권 양도 강제 등이다.

이 가운데서 웹툰 업계가 공통으로 부작용을 우려하는 항목은 '판매촉진비 및 가격할인 비용 전가'다.

판매촉진 비용 또는 합의하지 않은 가격할인 비용 등을 문화상품제작업자에게 부담시키지 말라는 내용인데, 웹툰업계에서는 이 문구가 이미 업계 표준이 된 '기다무', '매열무' 등 비즈니스 모델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본다.

'기다무' 등은 초반 회차를 무료로 공개해 독자들의 흥미를 끈 뒤 뒷이야기의 유료 결제를 유도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무료 공개 회차는 수익이 나지 않으므로 작가에게도 수익 배분이 이뤄지지 않는다.

'기다리면 무료' 웹툰 사라지나…'문산법' 추진에 업계 우려
플랫폼이 모든 비용을 져야 할 경우 흥행이 보장되지 않은 신인 작가나 비인기 작가 작품에 무료 공개 프로모션을 지원할 이유가 사라진다.

결과적으로는 유명 작가 작품에만 독자가 쏠리고, 작품 다양성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생긴다.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장은 "인지도가 있는 작가의 작품은 꼭 무료가 아니더라도 독자들이 보겠지만, 신인 작가의 경우 그렇지 않다"며 "미리보기 등이 없어지면 이 작품들이 선택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웹툰 제작사에서는 '문화상품을 납품한 후에 해당 문화상품의 수정·보완 또는 재작업을 요구하면서 이에 소용되는 비용을 보상하지 아니하는 행위'라는 금지항목에 난색을 보였다.

웹툰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작업물의 수정 등 피드백과 반영하는 일은 늘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웹툰 PD의 주요 업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규제 법안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포괄적이라는 데 불만이 모인다.

한 플랫폼 관계자는 "(규제 내용이) 굉장히 포괄적이라서 유통업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고 예측도 어렵다"며 "사업하기 너무 어려워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안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창작자들마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웹툰 산업이 위축되고 인기작에만 독자가 몰릴 경우 대다수의 작가가 설 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웹툰 산업에 큰 영향을 주는 법안인 만큼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다.

이와 관련 창작자단체에서도 최근 국회에 이 같은 우려 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만화계 관계자는 "문산법의 내용과 파급 효과에 대해 제대로 들어봤다는 창작자가 많지 않다"며 "웹툰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주는 법안인데도 의견 수렴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