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랑논은 어떤 건축물보다 인간이 품을 많이 들여 만든 아름다운 걸작이며 현재도 살아 있는 삶의 현장이다.

우리 농촌에도 다랑논이 있지만 사진으로 접한 외국의 다랑논은 그 웅장함이 남달랐다.
그래서 베트남 북부 무캉차이를 찾았다.
몽족인 홈스테이 주인의 오토바이 뒤에 앉아 경사진 길을 따라 높은 곳에 올라가니 눈에 들어오는 산이 온통 다랑논이다.
이 산도 다랑논, 건너편에 보이는 능선도, 저 멀리 있는 산비탈도 다랑논이다.
지금까지 봐온 어떤 건축물보다 위대하고 감동적인 모습이다.

낮은 봉우리 정상에는 원형 논이 있고 그 아래로 1m 정도 높이를 두고 계단식 논이 이어진다.
다랑논에는 수확기를 맞아 누른 벼가 논두렁 위로 봉긋이 솟아 층을 이루고 있어 계단이 더욱 많아 보인다.
몇군데 논두렁이 무너진 곳도 있지만 대부분 논두렁이 잘 정비된 모습이다.

30여명 정도 돼 보이는 관광객이 보인다.
한쪽에는 몽족 전통 복장에 꽃이 담긴 바구니를 짊어진 할머니들 10여 명이 대기하고 있다.
모델 역할을 위해 대기하고 있단다.
관광객들은 정상의 원형 논 주변에서 기념사진 찍느라 분주했다.
원형 논은 제단처럼 높은 곳에 있어 물길이 닿지 않는다.
벼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는 불편한 곳이다.
그래서 관광용으로 조성한 곳이냐고 물어보니 홈스테이 주인은 원래 조상들이 만든 것이고 지형 때문에 그렇게 만들었다고 답해준다.
물 공급은 과거에는 대나무를 이용했고 지금은 검은 파이프를 통해 하고 있단다.

초승달 모양으로 생긴 낫을 사용하고 있다.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 쑥스러운 몽족 부부는 당황하면서도 웃는 얼굴을 보여준다.
또 다른 뷰포인트인 맘소베 언덕으로 가는 길에 수확한 볏 포대를 옮기는 부부가 보였다.
남자는 지게에 한 자루, 여자는 대나무 바구니에 자루를 지고 옮긴다.
가파른 경사지를 힘겹게 올라 오토바이가 있는 지점까지 옮기고는 거친 숨을 몰아쉰다.
볏 포대를 들어보니 40∼50kg은 되는 듯했다.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급하지만, 오토바이로 집까지 옮길 수 있는 길이다.
오토바이는 좁고 경사진 이곳 환경에 최적의 운송수단이다.
굵은 땀방울이 흐르는 부부는 힘들어하면서도 웃는 얼굴로인사한다.

벼농사는 물을 가득 채워 줘야 벼가 자랄 수 있다.
물을 가두려면 바닥을 평평하게 해야 해 계단식으로 논을 만들었다.
정상에서 흐르는 물은 촘촘하게 이어진 수로를 따라 아래 논까지 닿아 벼를 키워낸다.
이 물줄기는 다랑논의 생명줄이다.

이 지역의 논두렁은 돌을 구하기 어려워 축대를 흙으로만 쌓았다.
그래서 빗물에 취약해 쉽게 무너지기 때문에 수시로 보수를 해줘야 한다.
그만큼 품이 많이 든다.
경사가 급하고 길이 좁아 기계가 들어올 수 없어 모내기 철 쟁기질이나 써레질에 소를 이용하는 것 외에는 모든 작업을 사람 손으로 해야 한다.
다음날은 맘소이 반대편 경사면으로 향했다.
관광객들이 거의 오지 않는 지역이라 전통이 오롯이 유지되는 몽족 마을과 또 다른 다랑논 풍경을 보는 맛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무캉차이 다랑논 면적은 2천200㏊가 넘는다.
이중 라파탄, 체쿠나, 데수핀 지역 약 500㏊가 베트남 국가 중요 유산으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무캉차이 인구의 90%가 몽족인데 해발 800∼1천700m 높이의 산비탈에 거주하며 다랑논을 일구어 살아가고 있다.

마을에 둘러싸인 다랑논에 물소 여러 마리가 추수를 마친 논에서 볏짚을 뜯고 있고 한 논에는 10여명이 모여 타작하고 있다.
이곳 다랑논의 타작은 기계가 아닌 사람 손으로 한다.
경사진 다랑논에 무거운 기계를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가로·세로 1m 크기의 네모 모양인 탈곡통(현지어로 퉁 떱 루어)에 볏단을 내리쳐 벼를 털어낸다.
방문한 집은 입구 창고에 매달아 놓은 옥수수와 다랑논 풍경이 잘 어우러졌다.
2층으로 된 창고 아래에는 물소 외양간이 있다.
거주하는 본채 지붕은 슬레이트로, 벽은 나무판으로 만들었다.
한 공간으로 된 내부는 흙바닥에 침실, 창고, 부엌이 같이 있다.
침대는 2개가 떨어져 있고 부부와 아이 셋이 사용하는 곳이다.
가운데가 창고이고 오른쪽으로 부엌인데 아궁이 없이 바닥에 불을 피워 삼발이를 얹어 음식을 하는 원시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수백 년을 이어온 이 선순환 생활이 가파른 산비탈에 일군 다랑논과 함께 과학적이고 환경 오염 없는 자급자족을 가능케 했다.
자본주의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 시각에는 불편하고 비위생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현대문명의 공격에도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은 아침이면 사라져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다.
왜 그런지 궁금했는데 농가에 가 보니 할 일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몽족 여인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이면 결혼해 많은 노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이웃들과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다.
부엌에서 살아있는 거위의 멱을 따 피를 한 그릇 받아낸다.
그런 다음 거위를 잡아 살과 내장, 뼈를 분리해, 볶음요리, 백숙, 탕, 내장 야채에 피를 섞은 요리 등 다양하게 만들어 낸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기술을 가진 전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캉차이의 다랑논이 이토록 아름다운 건 이것을 일구고 보존하는 몽족의 생활이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교통: 하노이에서 무캉차이는 약 300㎞ 떨어져 있다.
하노이 미딘 버스터미널(My Dinh 2)에서 침대 버스로 8시간 넘게 걸린다.
요금은 30만동(약 17,000원), 식사 때 한번 휴게소에 서고 그 외에는 손님을 태울 때만 선다.
장거리라 버스는 기사 2명, 차장 1명이 한 조로 운행한다.
버스 요금은 차장이 직접 현금으로 받기에 따로 구매할 필요가 없다.
숙소: 무캉차이는 고급 숙소는 별로 없다.
홈스테이가 주류이다.
홈스테이는 음식을 제공한다.
요리를 직접 할 수도 있어 현지 음식이 불편할 때 재료를 준비해서 이용하면 된다.
방문하기 좋은 계절 : 다랑논은 모내기 철인 5∼6월, 수확 철인 9∼10월이 아름답다.
비가 자주 내리므로 우의, 장화, 스패츠, 등산화 등을 준비해 가면 좋다.
젖은 날 오토바이를 타면 흙물이 튀어 옷이 젖는 걸 주의해야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