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형당뇨병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해야"
"2형과 달라…관리 못하면 생존 어려워"

[※ 편집자 주= 김미영 1형 당뇨병 환우회 대표 인터뷰는 분량이 많아 두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두 번째 인터뷰 기사는 조만간 송고할 예정입니다.

]
[삶] "5살 아이가 1년에 1천500번 스스로 인슐린 주사하다니"
김미영(46)은 제1형 당뇨병을 가진 중학생의 엄마다.

아이가 4살 때 1형당뇨를 진단받았다.

그때 좌절을 겪었지만, 그는 한국에 연속혈당측정기를 도입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

병원과 국가가 못한 일을 그는 해냈다.

그렇지만 그는 연속혈당측정기를 구입하려는 다른 환우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관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됐다.

관세청과 식약처, 검찰의 조사가 7차례나 진행됐다.

조사 결과, 그는 사적 이익을 챙긴 것이 없기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김미영 대표를 지난 7일과 9일 서울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1형당뇨병은 치료가 쉽지 않고, 치료를 중단하면 위험하고, 치료에 드는 환자의 부담이 적지 않다"면서 "그런데도 이 병이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에서 간호사(보건) 선생님이 1형당뇨 아이들에게 인슐린을 주사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이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 순천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의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김 대표는 모토로라에 이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프로그램 개발자로 근무하다 퇴사한 뒤 2017년부터 1형당뇨병 환우회 대표로 일하고 있다.

[삶] "5살 아이가 1년에 1천500번 스스로 인슐린 주사하다니"
-- 어디에서 태어났나.

▲ 서울에서 3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전라남도 광양군 광양읍으로 이사 간 뒤 그곳에서 자랐다.

-- 부모님은 어떤 분인가.

▲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용사다.

그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인지 정신적으로 불안했다.

술을 마시면 가정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집에 석유류를 공급하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셨다.

나는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주문 전화를 받는 등 가게 일을 도왔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다리에 암이 생겼는데, 그게 악화돼 돌아가셨다.

--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불안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 나는 초등학생 때에도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놀지 못했다.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셨기 때문이다.

책꽂이에 있는 책의 방향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으셨다.

설거지한 그릇이 정돈돼 있지 않는 것도 참지 못하셨다.

술을 인사불성으로 마시는 날도 많았는데, 그런 날은 우리 자매들이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아버지의 훈계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이런 아버지에 맞춰 살아야 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화해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가슴 아프다.

--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생활 형편이 어려워졌나.

▲ 어머니가 가게 일을 접고, 읍내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셨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 보니 나는 고등학교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교를 선택해야 했다.

[삶] "5살 아이가 1년에 1천500번 스스로 인슐린 주사하다니"
-- 초중고등학교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 눈에 띄지 않았지만 성실한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명절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학교에 나와 공부했다.

추석 전날은 학교 문을 닫는데, 선생님이 나를 위해 문을 열어줘야 했다.

친구들은 나의 노트를 복사해야만 시험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전교 1∼2등을 차지하는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수업 시간에 잠자는 경우가 없었기에 노트 정리가 잘돼 있었다.

-- 고등학교 시절 학업성적은 톱 수준이었나.

▲ 친구들이 "너처럼 공부하면 전국 1등을 해야 한다"면서 놀렸다.

공부 방법을 잘 몰라서 그런지 나는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전교 10등 안에는 들었다.

-- 고등학교 때 에피소드가 있다면.
▲ 고등학교 1학년 때 만우절 날이었다.

조회 시간에 학년주임 선생님이 만우절이라고 해서 엉뚱한 짓을 하면 죽는 줄 알라고 했다.

그 당시는 선생님들이 죽인다는 말을 자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2학년 언니들이 찾아와 자율학습 시간에 반을 바꾸자고 했다.

나는 규율을 어기는 것이 겁났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자리를 바꿨는데, 나만 자리를 지켰다.

자율학습 시간에 선생님은 아이들이 반을 바꾼 것을 알아차리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

선생님은 나를 제외한 반 친구들을 모두 복도로 끌어내고는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렸다.

[삶] "5살 아이가 1년에 1천500번 스스로 인슐린 주사하다니"
-- 본인은 고지식한 성격이었나.

▲ 초중고 시절에는 주눅이 들어있었다.

원칙과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지 못했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스타일이었다.

아버지가 가정폭력을 행사했고, 일찍 돌아가신 것이 영향을 준 것 같다.

-- 선생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을 듯하다.

▲ 매우 순종적인 학생이니 선생님들 대부분이 나를 예뻐했다.

가사(후에 정보 과목) 선생님은 나에게 "너의 이름 미영이는 흔하지만 너는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나중에 내가 순천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 시절에 모교로 교생실습을 나갔는데, 그 선생님이 교생실습 하는 나를 유심히 보더니 "내가 딸을 낳으면 미영이라고 짓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그 선생님은 딸을 낳았고, 그 아이는 미영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삶] "5살 아이가 1년에 1천500번 스스로 인슐린 주사하다니"
-- 대학교도 장학금 기준으로 선택했나.

▲ 나는 전형적인 이과생이었다.

영어, 국어보다는 수학, 과학을 좋아했다.

그러니 학과는 정보통신공학과로 정했고, 대학교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선택했다.

국립 순천대학교는 충분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교였고,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나는 학과 차석으로 입학했다.

-- 대학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 대학교 때에도 성실했다.

학과 동기생이나 복학생들이 내 노트를 복사해야 시험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고교 때와 같았다.

시험 기간에 나는 캔 커피를 많이 갖고 있었는데, 동료들이 내 노트를 빌려 가면서 건네준 것이었다.

수업 시간 외에도 나는 실력을 쌓으려 노력했다.

매일 새벽 4시30분쯤 일어나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저녁과 주말에는 아르바이트하느라 시간이 없었기에 새벽에 공부해야 했다.

그 당시 생긴 습관 때문에 지금도 오전 5시 이전에는 일어난다.

-- 대학 시절에 어떤 아르바이트를 했나.

▲ 아이들을 가르쳤다.

평일 저녁에는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방학 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했다.

주말에는 국도 주변의 휴게소에서 일을 했다.

주말 품삯은 평일보다 좋았다.

[삶] "5살 아이가 1년에 1천500번 스스로 인슐린 주사하다니"
-- 본인 삶에서 역경은.
▲ 아이가 1형 당뇨병에 걸린 것이다.

초반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그때 아주 힘들었다.

-- 1형당뇨에 대해 설명한다면.
▲ 1형당뇨는 2형당뇨와 다르다.

2형당뇨병은 유전적인 영향이나 비만, 노화, 스트레스 등 다양한 원인으로 생긴다.

췌장에서 인슐린이 나오지만 적게 나오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질환이다.

1형당뇨는 아예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다.

주로 성인에서 발생하는 2형당뇨와는 달리 1형당뇨는 연령과 상관없이 발생한다.

인슐린을 공급해줘야 생존할 수 있다.

-- 인체 내에서 인슐린의 역할은 무엇인가.

▲ 우리가 탄수화물 등을 먹으면 소화의 과정을 거쳐 위장에서 포도당으로 전환한다.

이 포도당이 세포로 들어가야 에너지가 되는데, 그 문을 열어주는 것이 인슐린이다.

인슐린이 없으면 포도당이 세포로 진입할 수 없기에 핏속의 혈당이 올라가게 된다.

장기간 고혈당 상태가 유지되면 피가 끈적끈적해져서 당뇨망막증, 신부전증, 심혈관질환, 족부 괴사 등의 합병증이 생긴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이라고 해서 손과 발끝이 전기가 오는 것처럼 따끔거리거나 화끈거리는 증세도 있다.

-- 국내 1형당뇨환자는 몇 명인가.

▲ 한국의 전체 당뇨환자는 500만명이다.

이 중 1형은 5만7천명이다.

나머지는 2형 당뇨다.

[삶] "5살 아이가 1년에 1천500번 스스로 인슐린 주사하다니"
-- 아이가 1형당뇨를 진단받기 전에 증세는 없었나.

▲ 언제부터인가 아이가 많이 먹었고, 화장실에 자주 갔다.

그러면서 몸에는 힘이 없다고 했다.

동네 소아청소년과와 한의원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녔는데, 의사들은 "아이가 크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대학병원에서 진단받기 직전에는 아이가 30분마다 소변을 봤다.

화장실까지 가는 짧은 시간도 참지 못하고 방바닥에 실수한 적도 있었다.

그날 걸레로 닦았는데, 다음 날 아침에 그곳에서 끈적끈적한 것이 밟혔다.

나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아이를 대학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대학병원에서는 금방 진단이 나왔나.

▲ 그날이 명절 전날이었다.

나는 회사에 출근했고, 남편이 휴가를 내서 아이를 아주대 응급실로 데려갔다.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불안감에 휩싸였다.

남편한테 자주 전화를 걸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없이 퇴근하고 병원에 들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회사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병원에 찾아갔더니 응급실 의사는 1형당뇨라고 했다.

나는 "우리 친정이나 시댁 식구 중에 당뇨에 걸린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어린아이가 무슨 당뇨냐, 말도 안 된다"고 했더니 의사는 그런 당뇨와는 다르다고 했다.

훨씬 관리하기 힘들고, 계속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 대학교 응급실이 1형당뇨를 단번에 알아차렸다는 것인가.

▲ 남편은 응급실에 도착해서 아이가 많이 먹고, 소변을 자주 본다고 했더니 의사는 당장 피검사를 하자고 했다고 한다.

1형당뇨를 처음부터 의심한 것이다.

동네병원에는 1형당뇨 환자가 오는 일이 거의 없으니 그런 질환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병원 응급실은 고혈당 케톤산증이나 저혈당 쇼크로 1형당뇨병 환자들이 종종 실려 온다.

그곳 의사들한테는 낯설지 않은 질환이다.

[삶] "5살 아이가 1년에 1천500번 스스로 인슐린 주사하다니"
-- 1형당뇨 증세가 있으면 많이 먹게 되나.

▲ 원래 많이 먹지 않았던 아이가 손에 잡히는 대로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빵, 밥 등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

내가 홈쇼핑을 통해 두유 몇팩을 사다 놨는데,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오니 남아있는 게 없었다.

그때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시고 있었는데, 두유를 많이 드셨냐고 물었더니 "네 아들이 다 먹었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아이는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인 상태에서도 한 손에는 바나나, 다른 한손에는 두유를 쥔 채 먹고 있었다고 한다.

먹은 음식의 영양성분이 세포로 들어가지 못하고 소변으로 모두 배출되니 항상 허기진 상태에 있는 것이다.

-- 진단 후에 어린애라서 음식조절이 쉽지 않았을 듯한데.
▲ 처음 1년은 아이가 잘 따라줬다.

거의 과자도 안 사 먹였다.

그래도 과자를 먹고 싶어 하니 집에서 직접 만들어 줬다.

설탕과 버터를 덜 넣은 것이어서 그렇게 맛이 있지는 않다.

아이는 어린이집 간식시간에는 집에서 가져온 것을 꺼내놓고 먹었다.

1년이 지난 후에 아이는 그런 간식을 강하게 거부했다.

자기도 친구들과 같은 간식을 먹겠다는 것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일반 간식을 먹이되 혈당이 올라가면 인슐린 주사를 늘리는 방식으로 적응해 나갔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나.

▲ 먼저 내가 어린이집 식단표를 미리 보고 혈당에 따른 대처표를 만들어 어린이집에 보낸다.

보육 선생님은 이를 보고 음식을 먹기 전에 혈당을 확인하고, 간호사 선생님은 대처표에 따라 인슐린 주사를 해 주신다.

식사 후에는 보육 선생님이 혈당을 체크해 나한테 문자로 보내주면 내가 어떤 인슐린을 어느 정도 투여해야 하는지를 문자로 알려줬다.

[삶] "5살 아이가 1년에 1천500번 스스로 인슐린 주사하다니"
-- 간호사 선생님이 계속 혈당 체크와 인슐린 주사를 해준 것인가.

▲ 아이가 4살 되던 해 1월에 당뇨 진단을 받았는데, 6개월 후에는 스스로 혈당 체크를 했다.

1년 후인 5살 때에는 아이가 직접 인슐린주사를 했다.

아이가 스스로 하기 전까지 혈당 체크는 보육 선생님이, 인슐린 주사는 간호사 선생님이 해주셨다.

-- 어린 나이에 쉽지 않을 듯한데.
▲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3학년은 돼야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는다고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엄마들이 학교에서 대기하는 이유다.

어떤 엄마는 독서왕이 됐다.

운동장에 차를 세워놓고 그 안에서 책을 읽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빠른 나이에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가 인슐린 주사를 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이게 다른 아이들에게 자극이 됐다고 한다.

-- 5살짜리 아이가 직접 인슐린 주사를 하게 된 계기는.
▲ 친구들과 더 많이 놀기 위한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신나게 놀던 중 인슐린 주사 시간이 돼서 간호사 선생님께 갔다 오면 흐름이 끊기니, 자신이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삶] "5살 아이가 1년에 1천500번 스스로 인슐린 주사하다니"
-- 연간 어느 정도 혈당 체크와 인슐린 주사를 한 것인가.

▲ 혈당 체크는 하루에 10회 이상을 한다.

한 달이면 300회, 1년이면 4천회 가까이 된다.

인슐린주사는 하루에 4번 이상이니 연간 1천500회 정도다.

혈당 체크와 인슐린 주사를 합하면 연간 5천회 이상이다.

-- 혈당 체크와 인슐린 주사 부위는.
▲ 혈당 체크는 손가락 끝에서 주로 하지만, 계속 그곳에만 할 수 없어서 발가락에서도 한다.

아이가 흙을 만지면 손가락에 마치 깨알이 박힌 것처럼 되는데, 흙이 혈당 체크한 곳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인슐린 주사는 주로 복부에 하는데, 혈관이 아닌 피하에 한다.

-- 초중고생들은 어디에서 인슐린 주사를 맞나.

▲ 복도, 화장실, 보건실 등이다.

우리 아이는 수업 시간에 손들고 복도에 나가 인슐린 주사를 했다.

그 뒤로는 그냥 앉은 자리에서 했고, 지금은 교실 한구석에서 맞는다.

친구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이들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 지금은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펌프 도입으로 이전보다 수월해졌나.

▲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나는 우여곡절 끝에 연속혈당 측정기를 체코에서 들여왔다.

이를 계기로 다른 환우들도 이 측정기를 많이 사용하게 됐다.

매번 피를 내서 혈당을 체크할 필요가 없으니 부담이 크게 줄었다.

인슐린 조절도 버튼을 누르면 공급되도록 하는 인슐린펌프를 사용하면서 훨씬 수월해졌다.

이런 기기들 덕분에 우리 아이도 비 당뇨인 아이들과 같이 뛰어놀고 운동하고 공부한다.

[삶] "5살 아이가 1년에 1천500번 스스로 인슐린 주사하다니"
-- 1형당뇨 자녀를 둔 부모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

▲ 우울증을 겪는 분들이 많다.

몇개월 만에 살이 많이 빠져 있거나 흰 머리가 확 늘어난 분이 적지 않다.

어떤 아빠는 나한테 전화를 걸어 아이 엄마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다.

어느 순간 엄마가 너무 지친 나머지 아들의 혈당 관리를 중단하고 가출을 한 것이다.

직장에서 돈만 벌었던 그 아빠는 혈당 관리를 할 줄 몰라 참으로 난감해했다.

부모 중에는 암 진단을 받은 분도 있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분도 있다.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도 꽤 있다.

-- 아이의 혈당 관리에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할 수밖에 없을 듯한데.
▲ 어떤 엄마는 아이에게 간식으로 새우깡 3개를 준다.

비 오는 날 밖에서 운동할 수 없으면 아이와 함께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지하 주차장을 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혈당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아이가 1박 2일로 수학여행을 가면, 엄마도 따라간다.

수학여행지가 에버랜드라고 한다면 엄마도 그곳에 숙소를 별도로 정해놓고 시간에 맞춰 인슐린을 주사한다.

어떤 아빠는 점심시간마다 매일 초등학생 딸이 보내주는 카톡 사진을 기다린다.

아이의 점심 식판 사진이다.

그걸 보고 어느 정도 인슐린을 투여해야 하는지를 아이한테 알려준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식당에 혼자 남아 늦게 식사를 하게 된다.

[삶] "5살 아이가 1년에 1천500번 스스로 인슐린 주사하다니"
-- 본인은 우울증 없었나.

▲ 초반에 그런 적이 있었다.

아침에 눈 뜨기가 싫었다.

그냥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부모들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나.

▲ 환우회 회원들을 만나는 게 도움이 된다.

나는 주말이면 만사를 제쳐두고 환우회 사람들을 만났다.

커뮤니티에서 글로만 봤던 환우회 회원을 만나면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눈물을 흘린다.

-- 정부에 바라는 것은.
▲ 1형당뇨병을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1형당뇨병은 완치가 어렵고, 치료를 중단하면 사망 또는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며, 진단과 치료에 드는 사회경제적 부담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 1형당뇨병 관리가 쉽지 않게 된다.

신장, 심장, 혈관, 눈, 신경계통 등 전신에 합병증의 위험이 커지고 신부전, 심혈관질환 등 합병증을 얻게 되면 의료비가 급증하게 된다.

이는 환자뿐 아니라 국가 재정에도 부담을 주게 된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 평생 아프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나이가 들면 보통 3∼4개의 질환을 갖고 산다.

미리 건강에 신경을 쓰고, 예방하고, 의료나 환자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