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로 최근 佛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앞으론 밝은 얘기 써보고 싶어…차기작, 생명에 관한 소설 될 것"
메디치상 한강 "워낙 힘들게 써서 완성 못 할 뻔했죠"
"제가 소설을 써오면서 제일 기뻤던 순간이 2021년 4월 말 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완성한 순간이에요.

워낙 오래 걸리고 힘들게 썼거든요.

"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상의 외국문학 부문을 수상한 작가 한강은 14일 출판사 문학동네가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리에서 최근 귀국한 한강은 이날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 소설을 쓰면서 어떻게 하면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는 할 겨를이 없었다"고 돌아봤다.

"쓰는 중간에 완성 못 할 것 같은 고비도 많았고, 편집자에게 못 쓰겠다고, '죄송하지만, 완성 못 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기도 했어요.

완성하기까지 7년이 걸렸는데, 제겐 상 받은 순간이 기쁜 게 아니라 소설 완성한 순간이 가장 기뻤습니다.

"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강이 2016년 '채식주의자'로 영국 최고권위 문학상인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뒤 5년 만인 2021년 펴낸 장편소설로, 제주 4·3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 친구 인선의 제주도 집에 가서 어머니 정심의 기억에 의존한 아픈 과거사를 되짚어간다는 내용이다.

프랑스에서는 최경란·피에르 비지우의 번역으로 올해 8월 말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한강은 이 작품의 핵심 인물인 정심에 대해 "슬프고 무력하고 조그마한 인물인 줄 알았는데, 끝까지 애도를 멈추지 않고 작별하지 않고 싸운 사람이었다"면서 "그런 마음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메디치상 한강 "워낙 힘들게 써서 완성 못 할 뻔했죠"
"소설 쓰면서 정심의 마음이 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아침에도 정심의 마음으로 눈뜨려 하고, 잠들 때까지 '정심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되뇌며 그 뜨거움과 끈질김에 대해 계속 생각했습니다.

"
작가는 메디치상의 시상식이 매우 자유롭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던 게 무척 신선했다고 했다.

그는 "제겐 최근작이고 지금까지도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소설이기에 소식을 들었을 때 더 기뻤다"며 "상패도, 심사평도 없었고, 함께 사진 찍고 샴페인 마시는 게 전부였는데 제가 참석했던 그 어떤 시상식과도 다른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좋았다"고 말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2014년작 장편 '소년이 온다'와 이번 4·3의 비극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까지, 한국 현대사의 깊은 어둠과 상처를 소설로 형상화해온 작가는 앞으로는 '밝은 얘기'를 써보고 싶다고 했다.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소설은) 이렇게 두 권을 작업했는데, 이제는 더는 안 하고 싶어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눈이 계속 내리고 너무 춥고, 이제 저는 봄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
구상 중인 차기작에 대해서 작가는 "생명에 관한 소설"이라고 했다.

"뜻대로 될 진 모르겠는데, 생명에 대한 생각을 요새 많이 해요.

원하든 원치 않든 받아 든 선물인 이 일회적 생명을 언젠가는 반납해야 하잖아요?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진척시켜서 봄으로 가는 다음 소설을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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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상 한강 "워낙 힘들게 써서 완성 못 할 뻔했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