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용량 작아 홍수에 취약…"시간당 30㎜ 폭우 6시간 쏟아지면 월류"
주민들 "삶의 터전 옮길까 생각"…두 번 월류에 '시한폭탄' 지적도

[※ 편집자 주 = 1957년 건설된 괴산댐은 국내 기술진에 의해 최초로 설계·시공된 수력발전용 댐입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유일하게 두 차례나 월류(越流·물이 댐을 넘쳐흐르는 것)한 댐이라는 불명예도 안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여름철 '극한호우'가 반복되면 제3, 제4의 월류를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댐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큽니다.

그런데도 환경부나 지자체, 댐 관리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대책 마련에 소극적입니다.

위기 직후에는 다목적댐 전환, 관리주체 변경, 리모델링 등 여러 대책이 분출했다가도 복잡한 이해관계로 논의는 흐지부지되고, 그마저도 장마철이 끝나면 사그라듭니다.

소 읽고 난 뒤 외양간을 고쳐봐야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의 몫입니다.

연합뉴스는 괴산댐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기사 2편을 송고합니다.

]

1951년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전력 기반을 복구해 안정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소형 발전소를 짓기로 결정했다.

전국 9개 지역을 돌며 적합지를 물색하다 기초지질이 양호하고 흘러 내려가는 물의 양이 많아 발전에 적합한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일대를 최종 건설지로 점찍었다.

이 지역에는 보은군 내속리면의 속리산 방면에서 발원해 충주에서 남한강과 합류하는 달천강이 흐른다.

정부는 이듬해인 1952년 11월 첫 삽을 떴고, 착공 5년 만인 1957년 2월 높이 28m, 길이 171m의 콘크리트 중력댐(괴산수력발전소·일명 괴산댐)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총저수량 1천533만㎥의 저수지(괴산호)도 조성됐다.

발전소는 댐 준공 2개월 뒤 본격 가동됐다.

전기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대에 연간 10.8GWh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은 일종의 개가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국내 전력 인프라가 개선돼 괴산댐의 위상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다.

작년 기준 발전량(7.6GWh)은 지역 사용량(612GWh)의 1%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발전용 댐이라는 역사적 가치마저 훼손된 것은 아니다.

맹승진 충북대 지역건설공학과 교수는 "해방 이후 조사에서부터 계획, 설계, 시공까지 우리나라 기술자들의 손으로 처음 시공된 발전용 댐이라는 점에서 토목 구조물로서는 상징성이 크다"고 말했다.

[괴산댐 어찌할꼬] ① 국내 첫 발전용댐 자부심이 '공포의 대상'으로
하지만 지역의 자부심이었던 괴산댐은 시간이 갈수록 '공포의 대상'으로 변하고 있다.

장마철 폭우가 내릴 때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언제 또 물이 넘칠까' 전전긍긍한다.

지난 7월 15일 오전 6시 30분 집중호우로 댐이 월류하면서 하류인 괴산과 충주 주민 7천500여명이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와 대피해야 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는 주민들이 많다.

괴산군 감물면 이담리 계담마을의 최흥락 이장은 "맘 편하게 다른 곳으로 이사 갔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인근 원이담마을 안진수 이장도 "아예 댐이 없었으면 고생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장마철 괴산댐의 물이 넘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0년 7월 태풍과 호우로 물이 넘쳐흘러 발전소 시설 일부가 파손됐다.

첫 번째 월류였다.

2017년 폭우 때도 댐 턱밑까지 물이 차올라 주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김주성 괴산군의원은 지난달 군의회에서 "순수 국내 기술진이 만든 최초의 발전용 댐을 보유하고 있다는 지역의 자부심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그것도 두 번씩이나 물이 넘쳐버린 댐이라는 불명예로 퇴색해 버렸다"고 푸념했다.

댐 또는 저수지 월류가 해당 지역사회에 주는 공포감은 상당하다.

1961년 흙댐인 효기 저수지(전북 남원)가 월류로 붕괴하면서 15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고, 1996년에는 연천댐(경기 연천)이 홍수로 무너져 많은 주민이 침수 피해를 봤다
괴산을 지역구로 둔 박덕흠(국민의힘) 의원이 괴산댐을 가리켜 "폭우만 오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말한 이유다.

댐 관리·운영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은 괴산댐이 월류로 인해 무너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비가 많이 내리면 월류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룬다.

권현한 세종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월류가 일어나더라도 댐 붕괴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적 안전성을 가진 형태의 댐(콘크리트 중력댐)인 것은 맞는다"면서도"그렇다고 월류가 '괜찮다'는 식의 접근은 학계에선 상당히 받아들이기 불편한 일"이라고 했다.

[괴산댐 어찌할꼬] ① 국내 첫 발전용댐 자부심이 '공포의 대상'으로
권설아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 재난안전혁신센터장은 "우리가 체험하지 못했던 이상기후 현상이 잦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연구자료를 기준으로 위험을 예측, 재단해서는 안 된다"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에는 최악의 재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시간 누적 강수량이 50㎜ 이상이면서 3시간 누적 강수량이 90㎜ 이상일 때를 의미하는 '극한호우'는 최근 10년(2013년∼2022년)간 전국적으로 연평균 8.5%씩 늘었다.

극한호우는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것과 같아 차량 통행이나 정상적인 보행을 포기해야 하는 폭우를 말한다.

3년 전 환경부는 현재 100년 빈도로 설계된 댐과 하천제방의 치수 안전도가 2050년 무렵에는 최대 3.7년까지 급격히 낮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현재는 100년에 1번꼴로 범람하도록 설계된 댐과 하천제방 등이 미래에는 4년에 1번꼴로 범람할 수 있다는 의미다.

괴산댐의 유역면적(비가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범위의 면적)은 671㎢이다.

그런데 저수용량은 1천533만t에 불과해 시간당 30㎜ 이상의 폭우가 6시간만 쏟아져도 월류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기후변화로 인해 요즘 이 정도의 폭우는 드물지 않은 일이 됐다.

소양강댐과 비교할 때 유역면적은 4분의 1 정도이지만, 저수용량은 193분의 1 정도로 큰 차이가 난다.

유입되는 물의 양에 비해서 물그릇(댐)의 크기가 현저히 작다는 얘기다.

배명순 충북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습 국지성 호우가 많은 상황에서 소양강댐의 경우는 댐이 워낙 크다 보니 물이 천천히 차는데 저수량이 적은 괴산댐은 구조적으로 월류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면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괴산댐 어찌할꼬] ① 국내 첫 발전용댐 자부심이 '공포의 대상'으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