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을 지식 취급하면 배고픈 자가 밥 놓고 토론하는 셈…실천해야"
"성철스님, 대립·투쟁은 '꿈속의 꿈'이라 강조…남 위해 기도해야"
열반 30주기 맞는 고승 사상 주목…강경구 동의대 교수 인터뷰
[인터뷰] "성철스님 괴짜 행동에는 주위 사람 부처로 섬기라는 가르침"
"나와 너는 한 몸으로 본래 없는 것이거늘, 사람들은 쓸데없이 나와 너의 분별을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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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性徹·1912∼1993)스님의 사상을 연구해 온 강경구 동의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분열과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요즘에 "남을 나처럼 소중히 여기는 한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면서 성철스님의 1989년 신년 법어를 소개했다.

성철스님은 1981년 1월부터 1993년 11월 4일 열반 때까지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으로서 많은 메시지를 전했는데 거기에는 "대립과 투쟁은 꿈속의 꿈임을 강조하는 가르침이 들어 있다"고 강 교수는 풀이했다.

그는 성철스님 입적 30주기를 앞두고 연합뉴스와 한 전화 및 서면 인터뷰에서 단순히 지식으로서 법문을 접하는 것은 "배고픈 사람들이 밥에 대해 토론하는 일과 같다"며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성철스님 괴짜 행동에는 주위 사람 부처로 섬기라는 가르침"
1959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한 강 교수는 부산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영남대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성철스님의 대표적인 저서 중 하나인 '선문정로'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1천16쪽 분량의 '정독 선문정로'(장경각)와 '두 선사와 함께 읽은 신심명', '평설 육조단경' 등의 불교 관련 책을 여럿 출간했다.

최근에는 '정독 선문정로 강좌'로 성철스님의 사상을 전파하고 있다.

다음은 강 교수와의 문답 요지.
-- 성철스님이 한국의 대표적인 고승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 우선 초인적 수행이다.

8년의 장좌불와(눕지 않고 좌선함)와 10년의 동구불출(암자의 문을 나서지 않음)을 통한 자기 점검은 불교의 수행과 깨달음에 대한 신화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다음은 확고한 깨달음이다.

성철스님은 일상생활은 물론 잠자는 중에도 화두 참구(參究·참선하며 진리를 탐구함)에 한결같은 삼매(三昧·잡념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가 있어야 하고 그것조차 뚫고 지날 때 깨달음의 차원이 열린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것을 깨달음의 표준으로 제시했다.

성철스님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는 한국 불교의 수행·교육·포교·의식주의 모든 측면에서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현재의 조계종은 봉암사 결사의 초석 위에 세워졌다.

성철스님이 시대를 대표하는 고승으로 평가받게 된 것은 그 제자들, 특히 원택스님의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인터뷰] "성철스님 괴짜 행동에는 주위 사람 부처로 섬기라는 가르침"
- 성철스님이 대중에게 남긴 가르침의 핵심은.
▲ 첫째는 물질을 넘어서는 정신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은 예외 없이 티끌로 돌아가지만, 정신은 불생불멸이라는 것이다.

불생불멸의 본래 정신이 우리의 영원한 자산이므로 그 계발에 힘써야 하며 우리 각자는 모두 절대적 존엄성을 갖춘 부처라는 점에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갖춘 본래 부처는 태양과 같다.

그런데 시비선악의 분별로부터 시작되는 번뇌 망상이라는 구름이 그것을 가리고 있으니, 구름을 걷어내고 본래 청정하고 완전한 인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불교를 믿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속이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머물지 않는 마음을 실천하되 가능하면 화두를 가슴에 품은 사람으로 삶의 모든 현장을 상대하자는 것이다.

셋째는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에 의지하여 성립하는 존재이다.

남을 위한 기도를 할 때 자기를 위한 기도가 성취되는 것이다.

-- 성철스님이 한국 불교사에 남긴 가장 중요한 업적을 꼽는다면.
▲ 가장 중요한 업적은 '백일법문'에서 이론을 정립하고 '선문정로'에서 그 실천의 길을 제시한 '중도법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불교는 대승 우월주의에 서서 근본불교를 성문연각의 가르침, 혹은 소승의 가르침으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현재에는 근본불교의 '근본성'을 강조하면서 대승불교를 비판하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성철스님은 근본불교의 가르침이나 대승의 전체 교설이 한결같이 중도를 설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르지 않다고 봤다.

대승과 소승의 구분을 뛰어넘는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중요한 업적을 세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터뷰] "성철스님 괴짜 행동에는 주위 사람 부처로 섬기라는 가르침"
-- 이른바 '묻지마 살인'이나 계층·세대·젠더 갈등이 고조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전쟁이 확산한다.

성철스님 가르침 중 되새길 만한 것은.
▲ 성철스님의 모든 신년 법어에는 시비와 분별과 대립과 투쟁은 꿈속의 꿈임을 강조하는 가르침이 들어있다.

분별의 꿈에서 깨어 광명 그 자체인 모든 존재의 참모습을 바로 보고 '나만 잘났다'는 칼날 위의 춤을 멈추라는 간곡한 당부로 일관하고 있다.

1989년의 신년 법어를 예로 들 수 있다.

「나와 너는 한 몸으로 본래 없는 것이거늘, 사람들은 쓸데없이 나와 너의 분별을 일으킵니다.

나만을 소중히 여기고 남을 해치면 싸움의 지옥이 벌어지고, 나와 남이 한 몸임을 깨달아서 남을 나처럼 소중히 한다면, 곳곳마다 연꽃이 가득 핀 극락세계가 열립니다.

극락과 천당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남을 나처럼 소중히 여기는 한마음에 있습니다.


성철스님은 남을 위한 기도를 강조했다.

우리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부처이므로 그 부처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기도는 남을 위한 기도라야 한다.

그것이 본래 부처이고 본래 극락인 이 세계, 이 중생을 일시에 밝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은 3천배도 남을 위한 3천배라야 진정한 기도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 성철스님은 극한 수행이나 자신을 만나러 온 사람들에게 3천배를 요구한 것으로 유명했다.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 일반인이 성철스님처럼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불교를 수행하는 사람이든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든 추구하는 바를 위해 전력을 기울일 필요는 있다.

성공, 행복, 사랑, 그 어떤 것을 추구해도 가만히 있는 이에게 저절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과 지극한 정성을 들일 때 성취가 뒤따르게 된다.

우리 또한 8년씩, 10년씩 간절히 마음 쓰는 일을 갖고 있어야 한다.

성철스님은 사람들에게 '절돈 3천원'을 내라며 3천배를 요구했다.

절에 오는 목적과 보람이 부처님을 만나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성철스님은 진리에 들어가는 다양한 문을 제시하는 법문을 베풀었는데 3천배는 출발점에 해당한다.

3천배를 한 뒤 참선하는 사람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도 성철선의 실천이다.

[인터뷰] "성철스님 괴짜 행동에는 주위 사람 부처로 섬기라는 가르침"
-- 성철스님의 일화에서는 '괴짜'의 풍모가 느껴지기도 하고 퉁명스럽지만, 따뜻한 마음도 엿보인다.

딸과 부인까지 출가하는 등 안타깝거나 비정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다.

학자로서 인간 성철을 어떻게 보는지. (※원래 기혼자였던 성철스님은 부인이 둘째 딸을 임신한 상태에서 출가했다.

둘째 딸은 아버지 성철스님의 영향으로 10대 후반에 출가했고 불필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성철스님의 부인은 남편과 딸이 모두 출가하고 시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출가했다)
▲ 감정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불교 고승은 '괴짜 끼'를 가지고 있다.

성철스님은 붉은 과육이 남은 수박껍질이 버려진 것을 보고 그것을 모두 가져다가 신도들에게 알뜰히 먹도록 한 적이 있다.

시주를 자랑하는 신도에게 직접 그 시주사실을 광고한 현판을 떼어 아궁이에 넣도록 한 일이 있고, 모친이 정성 들여 준비한 공양물을 절 아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도록 한 일도 있다.

거기에는 불법(佛法)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자아를 내려놓고 주위 사람들을 부처님처럼 섬기라는 공통된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인터뷰] "성철스님 괴짜 행동에는 주위 사람 부처로 섬기라는 가르침"
안타깝고 비정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모든 출가한 성직자에게 적용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속인(俗人)인 이유는 그만큼 모질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성철스님은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한다"는 말뚝을 가슴에 박아놓고 살고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진리를 실천하는 삶을 "궁궐에 사는 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것은 유한하고 상대적인 삶에서 영원하고 절대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신 있게 그 딸인 불필스님의 출가수행을 권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궁궐에 살고 있다면 가까운 사람들을 초청하여 함께 그 영화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도덕적인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에게는 인간적 진실성이 넘쳤다.

불필스님의 수행을 격려하기 위해 법문을 노트에 써서 선물했고, 모친을 등에 업고 금강산 유람을 시킨 일도 있다.

도인으로서 성철스님은 그 자체로 인간이기도 하다.

성질도 급하고, 화도 내고, 수행 자질이 뛰어난 출가자들을 편애하기도 했다.

성철스님에게 그것은 찾아온 인연을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대접한 사건이었고 진리를 실천하는 현장이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성철스님 괴짜 행동에는 주위 사람 부처로 섬기라는 가르침"
-- 성철스님의 30주기를 맞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진실한 가르침의 말씀은 직접 실천할 때라야 진정한 가치가 구현된다.

만약 우리가 그저 지식으로 부처님과 조사님, 그리고 성철스님의 법문을 접한다면 그것은 배고픈 사람들이 밥에 대해 토론하는 일과 같다.

3천배가 어렵다면 108배로 실천할 수도 있고, 아비라 기도(성철 스님이 전파한 불교 기도법)가 어렵다면 능엄주를 독송할 수도 있다.

장좌불와, 동구불출의 참선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근본을 묻는 화두를 품고 질문하는 실천에 들어갈 수도 있다.

실천이야말로 넘치는 정보 속에 길을 잃지 않고 진정한 나로 귀환하는 삶을 살도록 해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퇴직하면 20년이 될지 30년이 될지 모르지만 긴 시간이 남는다.

사회생활을 핑계로 돌보지 않던 정신적 삶에 헌신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영혼을 돌보고 진리의 운행에 스스로를 맡기는 자세로 삶에 임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분투하던 시기에 생긴 싸움 기운을 빼야 한다.

젊은 세대의 분투를 미소로 격려하면서도 스스로를 내려놓고 더욱더 부드럽게 수용하는 삶을 살 필요가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