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수염고래' 듣기·심호흡 딱 7번만…면도는 한다 vs 안한다
배드민턴 박원호의 마음가짐…"상대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죽어"
양말·렌즈는 꼭 왼쪽부터…항저우 AG 대표 선수들 루틴·징크스
스포츠에 신체 능력만큼 중요한 게 강인한 정신력이다.

아무리 노력을 쏟았더라도 실전에서 긴장하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국가대표 수준까지 한 종목을 연마한 선수에게는 초조한 마음을 추스르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

이같이 선수들의 독특한 행동을 '루틴'이라 한다.

몸과 정신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체계적인 관리법인 셈이다.

승리나 좋은 경기력이 간절한 선수들은 때로는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한 '미신'을 믿기도 한다.

이게 징크스다.

대한체육회는 최근 자료집을 통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1천140명 중 166명의 각오·취미 등 정보를 공개했다.

이 가운데 이색적인 루틴·징크스를 15일 모아봤다.

한국 남자 양궁 간판 김우진(청주시청)은 숫자 4를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경기 전에 숫자 4를 직접 쓰는 일이 있다면 피한다고 한다.

'말아 먹는다'는 뉘앙스가 느껴져 국에 밥을 말지도 않는다.

한때 경기 전 빵을 먹었다가 0점을 쏜 기억에 빵도 먹지 않는다.

우즈베키스탄의 국기이자 전통 무술인 쿠라시 대표팀의 이예주도 숫자 4를 보는 일은 어떻게든 피하려 한다.

이예주는 한술 더 떠 경기 직전 딱 7번 심호흡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남자 도로 사이클의 강자 장경구(음성군청)는 경기 하루 전부터는 면도하지 않는다.

양말·렌즈는 꼭 왼쪽부터…항저우 AG 대표 선수들 루틴·징크스
반면 럭비 대표팀의 이진규(현대글로비스)는 꼭 면도한다.

수염을 정리한 날에 경기가 잘 풀렸던 경험이 있어서다.

좌우 순서를 중요시하는 선수들도 있다.

수영 아티스틱 스위밍 듀엣 부문 메달리스트 후보인 이리영(부산수영연맹)은 렌즈를 왼쪽부터 껴야 한다.

프로축구 K리그1 선두를 달리는 울산 현대의 윙어 엄원상도 양말을 꼭 왼쪽부터 신어야 한다.

엄원상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빌 K리그2 서울 이랜드FC의 이재익은 조금 더 섬세하다.

이재익은 "경기장에 들어갈 때 가능하면 라인을 밟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졌다면 다음 경기부터는 라인을 밟고 들어간다"고 밝혔다.

여자 하키 대표팀의 김은지는 경기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밴드 YB(윤도현 밴드)의 '흰수염고래'를 듣는 게 루틴이다.

노래 가사가 '넌 혼자가 아니야. 함께 하는 팀원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라는 게 김은지의 설명이다.

일부 선수는 시간까지 명시할 정도로 구체적인 루틴을 짰다.

태권도 품새에서 금메달을 노리는 강완진(홍천군청)은 "경기 전 딱 30분 동안 반신욕을 한다"며 "또 경기 전날에는 (밤 )12시 반∼1시에 취침해 (아침) 6시∼6시 30분에 일어난다.

그전에는 피곤해도 자지 않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철인 3종의 김지환(전북체육회)은 "경기 1주일 전부터는 손톱을 다듬거나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꼭 경기 1시간 30분 전에 숙소에서 출발한다"고 밝혔다.

복장에 의미를 두는 경우도 있다.

여자 배구 대표팀의 김다인(현대건설)은 그간 경기 때 착용한 운동용 보호대, 속옷 등은 같은 종류로만 쓴다고 한다.

사격 종목 10m 공기소총 부문에 나서는 박하준(KT)도 "결과가 좋았던 경기에 입었던 속옷을 입는 루틴이 있다"고 밝혔다.

양말·렌즈는 꼭 왼쪽부터…항저우 AG 대표 선수들 루틴·징크스
배드민턴 대표팀의 김원호(삼성생명)는 직설적인 대답을 통해 결의를 다지는 '의식'으로서 루틴의 본질을 보여줬다.

"경기 전에는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워밍업을 한다"는 김원호는 "'상대방을 쓰러트리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라고 강하게 마음을 먹는다"고 말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우슈 투로 도술·곤술에서 은메달을 딴 이용현(충남체육회)도 인상적인 답변을 내놨다.

그는 "징크스는 많았지만 다 없어졌다.

루틴은 경기 전날 저녁, 달이나 별을 보면서 외할머니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황선우(수영·강원도청), 우상혁(육상·용인시청) 등 종목에서 세계 정상급 기량을 자랑하는 스타들은 특별한 루틴이나 징크스를 공개하지 않았다.

루틴·징크스가 없다는 황선우와 우상혁은 각각 "경기 전에는 생각을 비운다", "좋은 생각과 '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한다"고 전했다.

배드민턴 여자 단식 세계랭킹 1위 안세영(삼성생명)도 신발 끈이 꼬이지 않도록 정리하는 게 그나마 꼽은 루틴이다.

한국 여자 바둑랭킹 1위 최정(한국기원)도 "(전날 밤) 11시에는 취침하고 명상한다.

경기 시작 전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정석적인 대답을 내놨다.

양말·렌즈는 꼭 왼쪽부터…항저우 AG 대표 선수들 루틴·징크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