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과 한곳에 뿌리내린 사람 대비
알프스 산지서 피어난 두 남자의 우정…영화 '여덟 개의 산'
벨기에 출신의 부부 감독 펠릭스 반 그뢰닝엔과 샤를로트 반더미르히의 신작 '여덟 개의 산'을 보면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이 떠오른다.

끊임없이 방랑하는 사람과 한곳에 정착한 사람을 대비한다는 점에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나 '크눌프'와 같은 헤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대립 구도다.

이탈리아의 알프스 산지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여덟 개의 산'은 열한 살 동갑내기 소년 피에트로(루카 마리넬리)와 브루노(알레산드로 보르기)가 장년에 이르기까지 40년에 걸친 우정을 그린 영화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토리노에서 나고 자란 피에트로는 여름을 맞아 부모와 알프스 산지 마을 '그라나'에 휴양하러 오고, 마을 소년 브루노와 친구가 된다.

둘은 그림 같은 산지에서 뛰놀며 우정을 쌓아간다.

피에트로는 해마다 여름이면 아름다운 알프스 산지에서 브루노와 놀지만, 꿈 같은 어린 시절은 오래가지 않는다.

청년이 된 브루노는 도시로 떠나 노동자가 되고, 피에트로는 학교에 다니며 작가의 꿈을 키운다.

그러던 두 사람이 재회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알프스 산지에 손수 집 한 채를 짓는다.

세상을 떠난 피에트로의 아버지가 생전에 브루노와 한 약속에 따른 것이다.

브루노는 그라나에 뿌리를 내리고 결혼해 가정도 이루지만, 피에트로는 방랑을 계속하며 혼자 살아간다.

네팔의 히말라야 산지도 피에트로에겐 익숙한 곳이 된다.

알프스 산지서 피어난 두 남자의 우정…영화 '여덟 개의 산'
피에트로는 세상의 중심에 가장 높은 수미산이 있고 여덟 개의 산이 이를 둘러싸고 있다는 네팔 신화를 브루노에게 들려주며 "수미산에 오른 사람과 여덟 개의 산을 여행한 사람 중 누가 세상을 더 많이 배울까"라고 묻는다.

어쩌면 이것은 양자택일의 답을 기대하는 질문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을 표현한 말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피에트로와 브루노의 관계가 한 축이라면, 피에트로와 아버지의 관계는 다른 축이다.

아버지를 부정했던 피에트로는 알프스 산지에 집을 지으면서 아버지의 마음에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 두 남자의 이야기란 점에서 이 영화는 히스 레저가 주연한 '브로크백 마운틴'(2006)을 연상케 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두 남자의 사랑을 그렸다면, 이 영화는 우정을 그렸다는 게 차이점일 것이다.

카메라가 비추는 알프스 산지는 장면마다 한 폭의 그림 같다.

빙하로 덮인 산정, 산 중턱에 있는 고요한 호수, 맑은 물이 세차게 흐르는 계곡 등이 그렇다.

'여덟 개의 산'은 이탈리아 작가 파올로 코녜티가 쓴 동명의 장편 소설이 원작이다.

펠릭스 반 그뢰닝엔과 샤를로트 반더미르히 감독은 원작을 충실히 이해하려고 이탈리아어를 배웠다고 한다.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감독상을 받은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제39회 선댄스영화제 스포트라이트 부문에도 공식 초청됐다.

20일 개봉. 147분. 12세 관람가.

알프스 산지서 피어난 두 남자의 우정…영화 '여덟 개의 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