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꽃 피우려면 외로운 순간 있어야"
제천국제음악영화제(10~16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 ‘크레센도’는 ‘임윤찬 다큐멘터리’로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영화는 한마디로 ‘프로듀스 101’의 클래식 콩쿠르 버전이다. 지난해 밴클라이번 콩쿠르 참가자 30인이 주인공이다. 임윤찬을 포함해 안나(러시아), 일리야(러시아), 울라지슬라우(벨라루스) 등이 등장한다.

헤더 윌크 감독은 서로 다른 연주자가 같은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장면을 이어달리기처럼 편집하는 데 능하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 실황은 그렇게 영화 후반부의 꼭짓점을 만든다. 클라이번의 1958년 모스크바 연주가 흑백과 컬러,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어 2022년의 임윤찬, 일리야, 클레이턴(미국)의 연주와 음표와 마디를 격정적으로 주고받는다.

임윤찬은 다큐멘터리에서 “음악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혼자 고립돼 고민하고 외로운 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청춘은 푸르다. 탈락 후 햇살 가득한 풀장에서 마가리타를 즐기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영화에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임윤찬은 말한다. “계속 이 음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저 음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아름다움)을 이 현실 세계에서 꺼내기 위해서는 그런 어려운 일도 음악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줍지만 단호한 임윤찬의 말은 국가나 명예를 호명하기 전에 아름다움의 가치와 그에 따르는 의무를 소환한다. 그런 면에서 아쉬운 것은 영화가 좀 더 주제 의식을 명확하고 유쾌하게 표현해내지 못한 부분이다. 콩쿠르 주최 측, 심사위원, 평론가 인터뷰까지 두루 담았지만 콩쿠르 진행 과정, 참가자 개인 인터뷰 등 여러 장면과 섞이면서 비슷비슷한 메시지의 동어반복적 나열에 그친다.

참가자들이 자신이 연주할 피아노를 고르는 절차, 토너먼트 과정, 추첨 등 콩쿠르의 이면을 생생하게 지켜보는 재미는 마치 비밀스러운 콘클라베(교황 선출 절차)에 동행한 듯 흥미롭다. 잔재미가 가득하지만 ‘종합선물세트’의 한계는 있다. 연출이 좀 더 재밌었어도, 좀 더 파격적이었어도 좋았겠다.

제천=임희윤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