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인의 알콩달콩 이야기로 관객을 웃기면서도 사랑의 의미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한 감독의 신작 '달짝지근해: 7510'(이하 '달짝지근해')도 여기에 딱 들어맞는 영화일 듯싶다.
주인공 치호(유해진 분)는 과자밖에 모르는 제과회사 연구원이다.
햄버거 가게 여자 직원이 인사해도 수줍어하는 그는 딱 봐도 '모태 솔로'다.
회사 상사의 말마따나 그의 하루는 집, 차, 연구소가 전부다.
그런 치호에게 콜센터 직원 일영(김희선)이 호감을 품는다.
대학생 딸과 사는 미혼모인 일영의 눈엔 마흔다섯의 나이에도 철부지처럼 말하는 치호가 귀엽기만 하다.
욕을 해대는 진상 고객에게도 "욕 발음이 정말 뛰어나세요"라고 응수할 만큼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일영은 사랑할 땐 바로 직진이다.
치호와 일영이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여느 연인과 비슷하다.
소파에 누워 통화하다 보면 자정을 훌쩍 넘기고, 영화를 보러 자동차 극장에도 간다.
두 사람만 아는 대화 코드도 만들어간다.
둘의 사랑은 얼마 못 가 반대에 부딪힌다.
착실한 치호와 달리 백수건달인 형 석호(차인표), 치호를 어떻게든 회사에 붙들어두려는 사장 병훈(진선규), 석호의 도박 친구 은숙(한선화)이 치호와 일영을 갈라놓으려고 나서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돌입한다.
뚜렷한 개성을 가진 이들이 어우러지면서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을 이어간다.
특히 유해진은 존재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낸다.
젊은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사랑 고백을 하려고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는 동안 치호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은 그것만으로도 뭔가 웃긴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많은 연인은 상대방이 자기에게 맞춰 변화해주길 바라지만, 어쩌면 그건 사랑과 거리가 멀다.
사랑이란 자기가 먼저 변화하는 것이다.
치호의 모습이 그걸 보여주는 듯하다.
사랑엔 고통도 따른다.
일영을 만난 치호는 과거엔 상상도 못 할 일을 겪는다.
그렇게 사랑은 그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사랑이라고 믿는다면, 한번 자기를 던져볼 만하지 않을까.
치호와 일영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유해진의 코믹 로맨스 주연은 처음이지만,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장르를 넘나드는 연기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화성으로 간 사나이'(2003) 이후 20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김희선은 어떤 어둠도 이겨낼 것 같은 밝음을 가진 일영을 연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유해진은 이 영화의 제작보고회에서 김희선이 일영과 '찰떡' 같이 맞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난 내일이 없는 놈"이라며 막 나갈 듯하면서도 알고 보면 허당인 석호를 연기한 차인표, 제 잘난 맛에 살다가 사랑에 눈뜨는 병훈을 연기한 진선규, 상스러움 속에 매력을 발산하는 은숙을 연기한 한선화는 감초 역할로 웃음을 유발한다.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을 내세우고 이들의 조화를 끌어내며 영화를 완성해나가는 이 감독의 연출력은 이번에도 돋보인다.
그는 전작 '증인'(2019)과 '완득이'(2011)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제목에 붙은 숫자 '7510'은 치호와 일영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밀수', '비공식작전', '더 문',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한국 영화 대작 네 편이 경합을 벌이는 이번 여름 극장가에서 '달짝지근해'는 정우성이 주연과 연출을 맡은 '보호자'와 함께 판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다크호스'로 꼽힌다.
15일 개봉. 118분. 12세 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