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례 변화 과정 겪은 뒤 도로로…옛 부재 활용해 10월까지 복원 계획
"광화문 앞 공간 활용 흔적 확인, 추가 조사 중"…해태 위치 조정 검토

일제가 훼손하기 전 규모나 전반적인 구조를 알 수 있어 향후 복원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월대를 복원·정비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발굴 성과와 향후 복원 계획을 25일 공개했다.
월대는 궁궐의 중심 건물인 정전(正殿) 등 주요 건물에 설치한 넓은 대(臺)를 뜻한다.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 등에 있었는데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基壇·건축물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뒤 터보다 한층 높게 쌓은 단)을 쌓은 건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고종(재위 1863∼1907)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기록인 '영건일기'(營建日記)에는 1866년 3월 3일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았다'는 내용이 있으나,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해체돼 사라졌다.

현재 광화문 앞을 촬영한 옛 사진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은 1890년대 찍은 것이다.
이후 1900년대 초반 사진이 일부 남아있지만, 월대의 정확한 규모나 구조는 알려지지 않았다.
훼손되기 전 광화문 월대는 길이 48.7m, 폭 29.7m 규모로 육조 거리를 향해 뻗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05년 발간된 '경복궁 광화문 원위치 복원 및 주변 정비 기본계획' 보고서에서 월대의 길이와 폭을 각각 52m, 29.5m로 추정한 것과 비교하면 수치를 명확히 한 셈이다.
임금이 지나가는 길인 어도(御道)의 옛 모습도 가늠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확인된 어도와 어도 계단 흔적 등을 고려하면 월대 남쪽에서 광화문 중앙문 사이에는 약 7m 폭의 어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복궁이 갖는 역사성을 회복하는데 있어 좋은 자료"라고 말했다.
광화문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편에 있는 동편은 절반 정도가 보존된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재청은 "복원을 위한 실물 자료를 확보했다는 게 가장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로 월대를 만든 방법과 변화 과정을 확인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월대는 길이가 120∼270㎝에 이르는 잘 다듬어진 장대석을 이용해 2단의 기단을 쌓고, 내부에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든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어도와 연결되는 중앙에는 계단의 좌·우측을 장식하거나 마감하기 위해 놓는 소맷돌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어도 계단지(터)는 일제강점기 전차 선로에 의해 일부 훼손됐으나, 소맷돌을 받쳤던 돌인 지대석이 확인돼 월대 원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축조 당시인 1단계에서는 남쪽에 세 부분으로 나뉜 계단이 있었으나, 이후 2단계에서는 가운데 부분의 어도 계단이 경사로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전차 선로가 들어서면서 월대 모습은 본래 모습을 점차 잃어갔다.
3단계 변화 과정에서 계단은 동·서 외곽으로 빠졌고 경사로 부분이 넓어졌다.
전차 선로가 복선(겹줄)으로 들어섰던 마지막 단계에서는 월대를 이루던 난간석이 철거되고 도로로 바뀐 것으로 파악된다.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측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추가적인 내용도 들여다보고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광화문 월대 하부(아랫부분) 일부를 조사 중"이라며 "광화문 앞쪽을 활용한 흔적을 일부 확인했다.
이 시설이 어떤 시설이었고 어떤 성격인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대 복원 공사는 올해 10월까지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옛 모습을 찾은 월대는 이르면 올해 가을 궁중문화축전에서 볼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문화재청은 해태상의 위치 조정과 관련해서는 "해태의 원래 위치를 추정해보면 현재 도로에 해당한다"며 "현 위치에 있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돼 보행자와 차량 이동 등을 고려해 세부 조정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성조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장은 "광화문의 역사성을 온전히 복원하기 위해서는 월대 복원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월대 복원은) 광화문을 완성해주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