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빗물에 연탄 다 녹아…전기장판으로 버텨"
연탄은행, 화훼마을 지원…"경기침체로 시민 후원 급감"
"물난리 때 집에 있던 연탄이 다 죽이 돼버렸죠. 연탄이 뭉그러지면서 옷장이고 이부자리고 온통 까매졌어요.

"
서울 송파구 장지동 화훼마을 주민 김모(70) 씨는 이번 겨울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거웠다.

집 한쪽에 쌓아놓았던 연탄들이 8월 폭우 당시 빗물에 모두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어린 손자와 함께 사는 그에게 연탄은 겨울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었다.

김씨는 "손자가 있어 남들보다 연탄을 두세 달 더 오래 태운다"며 "물에 녹아 떡이 된 연탄들을 보자니 참담했다"고 돌아봤다.

다른 주민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훼마을 주민 상당수는 김씨처럼 8월 집중호우 당시 집에 보관해오던 연탄 대부분을 잃었다.

주민 대부분이 저소득층이라 연탄을 다시 사기도 쉽지 않았다.

36년간 화훼마을에 산 우순자(77) 씨는 "연탄이 물에 다 녹아 그간 전기장판을 틀고 버텨왔다"며 "수해로 아들도 집을 떠나 그 빈자리 때문에 더 추운 기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낙심하던 주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이었다.

27일 오전 10시께 연탄 배달을 위해 연탄은행 자원봉사자 30여 명이 화훼마을을 찾으면서 마을에는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연탄은행 관계자는 봉사자들에게 "연탄 한 개의 무게는 3.65㎏으로 사람의 체온과 같다.

서로 붙는 성질이 있는 점도 사람과 참 닮은 부분"이라고 말하며 장갑과 토시를 나눠줬다.

봉사자들은 각자 20∼40㎏의 연탄을 지게에 짊어지고 주민들의 연탄 창고로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봉사자들의 분주한 모습을 바라보던 주민 이명식(75) 씨는 "집 장판 밑으로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피었다"며 "연탄이 있어야 집이 따뜻해지면서 물기가 있어도 덜 습하다.

(봉사자들을) 고생시키는 것 같아 참 마음이 그렇다"고 미안해했다.

봉사자들이 낀 흰 마스크는 연탄 가루로 인해 점차 회색이 돼갔다.

모자에 소형 전구를 달고 일하던 봉사자 이철호(48) 씨는 "가끔 방에 불이 안 켜지거나 길이 어두우면 연탄이 잘 보이지 않아서 전구를 장만했다"며 "잘 보여야 잘 쌓을 수 있지 않겠나"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연탄은행에서 8년가량 봉사했다는 그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화훼마을 주민들과 얘기도 많이 하고 오뎅탕도 직접 끓여주셔서 나눠 먹곤 했다"며 "그 이후로 주민들과 교류가 많이 위축돼 아쉽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봉사자 현장호(29) 씨는 "돈으로 후원하면 봉사한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며 "이렇게 몸을 움직여 직접 연탄을 나르다 보면 내가 후원한 것들이 주민들에게 향하는 게 보여서 좋다"고 했다.

이날 연탄은행은 화훼마을 15가구에 150장씩 총 2천250장의 연탄을 전달했다.

연탄은행에 따르면 치솟는 물가와 불경기 영향으로 올해 시민들이 후원한 연탄 물량은 작년보다 크게 줄었다.

9월 한 달간 연탄은행이 후원받은 연탄은 총 2만5천 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만 장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동절기로 접어드는 10월 후원 물량은 중순까지 약 3만 장으로 작년(7만 장)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봉사자 수도 작년 9월엔 55명이었으나 올해 9월엔 한 명도 없었다.

위현진 연탄은행 간사는 "이 정도 후원 수준이라면 당장 11월부터 연탄 수급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며 "더 많은 관심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