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자 김덕수 교수, 신간 '지도자 본색' 펴내
지도자 9인의 '본색'으로 살펴본 500년 로마사
신구 정권 교대가 임박했다.

리더십에 따라 공동체도 큰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동서고금을 떠나 지도자의 됨됨이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까닭이다.

김덕수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로마사 전문가다.

긴 역사 속 지중해 세계를 누빈 수많은 인물과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로마 지도자들의 발자취를 살피다 보면 현대 우리 지도자들의 모습과 자연스레 겹쳐 보인다.

김 교수의 신간 '지도자 본색'은 지도자의 8가지 본색을 밝힌다.

본색은 지도자가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그래서 국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려주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고 한다.

저자가 지도자 본색을 강조하는 이유는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운동이 실패로 끝나며 국론이 분열된 로마는 100년에 걸친 긴 내전을 치러야 했다.

그사이 수많은 사람이 정당한 이유 없이 살해 또는 추방되거나 재산을 몰수당했다.

책은 기원전 2세기 이후 로마사의 가장 굴곡진 500년을 이끈 지도자 9명의 본색을 밝힌다.

그라쿠스 형제를 시작으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아우구스투스,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이르기까지 그 발자취를 더듬어간다.

로마의 안녕을 위해 출사표를 던진 이들이 당면한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각종 사회 문제는 물론,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정이 들어서는 등 체제 교체의 혼란도 겪고 있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선택과 결단을 요구받았다.

이 과정에서 각자의 본색에 따라 어떤 지도자는 지지자들의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고, 어떤 이는 예상과 달리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지도자 9인의 '본색'으로 살펴본 500년 로마사
저자는 그들의 본색을 '나만 옳다는 고집형', '피를 부르는 청산형', '선을 넘는 자기 심취형', '패배를 낳는 야합형', '포기를 모르는 야심형', ' 태평성대를 이끈 정의형', '정도를 걷는 뚝심형', '함께 다스리는 협치형' 등 8가지 유형으로 제시한다.

이들은 결정적 순간에 드러낸 본색 때문에 추락하기도, 날아오르기도 했다.

'나만 옳다는 고집형'의 대표적 사례는 그라쿠스 형제였다.

개혁의 힘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권력욕을 한껏 드러내며 전횡을 일삼았다.

시민들은 명분을 잃은 개혁에 등을 돌렸고 결국 그라쿠스 형제는 정적들에게 끔찍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유능한 행정가이자 위대한 장군이었던 카이사르는 '선을 넘는 자기 심취형'이었다.

평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으며 승승장구한 그는 더 이상 맞수가 없게 되자 스스로 종신독재관에 오르며 본색을 드러냈다.

원로원을 무시하는 등 권력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힌 그는 결국 암살로 사라져갔다.

반면에 '포기를 모르는 야심형'이었던 아우구스투스는 겸손함 덕분에 아름다운 종말을 맞이했다.

'존엄한 자'라는 뜻의 호칭이 무색하게 출발은 매우 미약했지만, 카이사르와는 정반대의 본색을 보여주며 일인자에 올랐다.

정점에 섰을 때도 통치에 앞서 동의를 구하는 등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팍스 로마나'로 불린 평화 시대를 이끌다가 77세 나이로 평화롭게 최후를 맞이했다.

저자는 '함께 다스리는 협치형'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꼽는다.

황가와 전혀 인연이 없이 황제 자리에 오른 그는 현실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에 가까운 본색으로 나눔의 권력을 아낌없이 실천했다.

두 명의 황제와 두 명의 부황제가 다스리는 '4제 통치'로 로마의 번성을 이끌어낸 것. 스스로 제위에서 물러난 로마사 유일의 황제이기도 했던 그는 양배추 농사를 짓다가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

지도자 9인의 '본색'으로 살펴본 500년 로마사
이들 지도자가 겪은 인생 여정은 현대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당시 로마가 직면했던 사회 현상과 문제는 오늘날과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빈부 격차가 크게 심화하며 중산층인 자영농이 몰락하는 대신에 소수의 대지주가 부를 독점했다.

먹고 살기 힘들어지자 사람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했고, 그 결과 인구가 감소하면서 당장 신병을 모으는 데도 비상이 걸렸다.

이에 이민족을 받아들였지만, 차별로 인한 갈등만 불거졌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지도층은 예부터 기득권 챙기기에 골몰했다.

특히 귀족파와 평민파의 극한 대립으로 로마 사회는 완전히 둘러 쪼개지며 결국 체제 교체라는 극단적 결과로 이어졌다.

과거 로마인이 그랬듯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도자가 누구인지, 그 지도자가 어떤 본색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지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저자는 "지도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본색은 국가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말이나 심지어 행위보다 지도자 본인을 강력히 대변하기 때문이다"라며 "국민에게 위임받은 주권을 바탕으로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정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최고의 방법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지도자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역설한다.

위즈덤하우스. 272쪽. 1만6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