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회담 일본 외교문서 6만장 정리한 목록집 5권 발간
동북아역사재단은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 과정에서 일본이 생산한 외교문서 약 6만 장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해설한 5권짜리 자료집 '한일회담 일본외교문서 상세목록집'을 발간했다고 11일 밝혔다.

한일회담은 1951년 10월 20일 시작해 1965년 6월 22일 마무리됐으며, 주제는 기본관계·청구권·어업·문화재 등 다양했다.

2008년 한국 외교문서를 정리한 '한일회담 외교문서 해제집'을 펴낸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해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첫 대일 배상 요구인 '대일배상요구조서'를 소개한 책을 내놓은 데 이어 한일회담 일본 외교문서 목록집을 출간했다.

목록집 1권은 예비회담부터 제3차 회담까지 다뤘고, 2권에는 제4차 회담 예비교섭과 북송·억류자 상호 석방 관련 문서 목록을 담았다.

3권은 제4∼5차 회담과 정치회담, 4권은 제6차 회담, 5권은 마지막인 제7차 회담 문서 목록을 각각 수록했다.

문서별로 명칭, 파일 번호, 작성 시점, 작성처, 비밀 등급, 문서 종류, 주제어와 간단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조윤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문서 전부를 공개한 한국 정부와 달리 일본 정부는 국익과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문서 전체를 공개하지 않았다"며 독도 관련 문서, 대장성과 외무성 청구권 금액 산정 부분 비교표 등이 공개 자료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공개된 문서에도 조선인 징용자의 개인 청구권에 관한 일본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고 조 위원은 강조했다.

그는 "한일회담에서 한국 정부가 군인·군속(군무원)을 제외한 징용 노무자는 66만7천684명이고 이들의 청구권 금액은 2억3천700만 엔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견해의 근거는 일본이 패전 직후 미국 측에 전달한 자료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자국민의 청구권은 소멸시키지 않으면서 한국인의 개인 청구권은 소멸해야 한다는 이중적 태도를 취했다"며 "한일회담 기록에는 일본의 모순된 논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조 위원은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은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한 과제"라며 "목록집이 일본 외교문서를 토대로 한 한일회담 연구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