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거미 모양 청동 조각으로 유명한 프랑스 태생 미국작가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는 평생 예술적 실험과 도전을 계속해 초현실주의, 모더니즘 등 주류 미술사조를 넘은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일궈냈다.

70여 년에 걸쳐 조각가로 가장 왕성히 활동했지만 그는 조각 외에도 설치, 퍼포먼스, 드로잉, 회화, 판화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16일 개막한 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 '유칼립투스의 향기'는 작가의 후기 평면 작품 중심으로 구성됐다.

전시의 주축인 '내면으로'는 부르주아가 생애 마지막 10여 년간 작업한 종이 작품군으로, 39점의 대형 동판화로 이뤄졌다.

낙엽과 잎사귀, 씨앗 등 식물이나 신체 장기를 연상시키는 이미지, 눈이 수십 개 이상 달린 인물 형상 등이 보인다.

정체가 명확하지 않아 초현실적 풍경으로도 읽히는 작품은 작가의 내면과 외부 세계, 구상과 추상을 넘나든다.

때로는 동양화적 감성이 느껴질 만큼 특정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고유성을 보여준다.

유칼립투스는 작가에게 미술의 치유 기능을 은유하는 재료다.

1920년대 후반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던 시절 약용으로 사용하던 유칼립투스에서 부르주아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떠올린다.

작가는 작업실 정화를 위해 유칼립투스를 태우기도 했다.

유칼립투스는 결국 작가에게 모성과 치유를 의미한다.

부르주아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를 배신하고 자신의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지르면서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를 향한 분노와 어머니에 대한 연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부르주아의 예술적 원동력이 됐다.

그는 작품으로 증오와 분노를 표출했고, 그 과정을 통해 상처를 치유했다.

루이스 부르주아에게는 삶과 예술이 둘이 아니었다.

60세 가까이 무명 시절을 보내다 1970년대 들어서야 주목받은 작가는 1982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여는 등 큰 명성을 얻었고, 1999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았다.

총 54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판화와 함께 조각 작품을 선별해 소개한다.

다음 달 30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