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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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기 아까운 차가훈씨

차가훈 씨는 슬하에 딸 하나 씨와 아들 두나 씨를 두고 있습니다. 아내와는 몇 년 전에 사별했습니다. 차가훈 씨는 자신이 죽은 뒤에 아들 두나 씨가 상속받은 재산을 모두 탕진할 것이 걱정입니다. 아들이 귀한 차가훈 씨 집에서 두나 씨는 정말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차가훈 씨 부부의 아들 사랑은 남들이 보기에 지나칠 정도였지요. 그러던 중 두나 씨가 아버지의 눈 밖에 난 것은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현재 차가훈 씨의 재산은 임대수입이 나오는 4억원 짜리 상가와 거주하고 있는 6억원 상당의 아파트, 이렇게 총 10억원 정도입니다. 상속이 이루어지면 두나 씨는 자신의 상속분을 곧바로 도박으로 탕진할 게 분명합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상황이라, 차가훈 씨는 아들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아들이 밉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이 걱정되기도 합니다. 차라리 딸인 하나 씨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면, 똑 부러지는 딸이 재산을 잘 관리하면서 아들에게 생계유지에 필요한 지원 정도는 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차가훈 씨는 아들 두나 씨를 상속에서 제외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유류분 반환청구의 문제가 남아있네요. 유류분 반환의 문제 없이 딸에게만 상속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하나 씨의 자녀, 그러니까 외손자에게 4억원 짜리 상가를 증여했습니다. 차가훈 씨는 아들을 상속에서 배제하겠다는 자신의 속마음을 아들 두나 씨는 물론 딸 하나 씨에게도 일절 알리지 않았습니다.

차가훈 씨의 보유재산 중 4억원 짜리 상가를 외손자에게 증여하고, 남아있는 재산은 거주 중인 6억원 짜리 아파트뿐입니다. 별도의 현금성 자산이 없는 상황이라 차가훈 씨는 아파트를 매각하여 생활비와 병원비로 모두 사용했네요. 위 증여 후 5년이 지나 차가훈 씨는 사망했습니다. 사망 당시 남아있던 소액의 현금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상속재산이 없었습니다.
"10억 재산, 도박하는 아들 말고 외손자에게 주고 싶습니다" [정인국의 상속대전]

딸에게만 단독으로 상속할 경우의 유류분 반환청구

우리 민법에서는 「유류분」이라는 이름 하에 상속인들에게 법정상속분의 일정 부분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피상속인의 처분의 자유를 무제한 허용한다면, 상속에서 배제된 상속인은 생활기반이 무너져 생존을 위협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류분 권리자는 피상속인의 직계비속·배우자·직계존속·형제자매입니다. 피상속인의 직계비속과 배우자의 유류분은 법정상속분의 1/2이고, 피상속인의 직계존속과 형제자매의 유류분은 법정상속분의 1/3입니다.

이 사례에서 직계비속인 하나 씨와 두나 씨의 상속분은 각각 1/2이고, 유류분은 법정상속분의 1/2이 됩니다. 따라서 두나 씨는 상속재산의 1/4만큼은 유류분으로 보장받게 되지요.
민법

제1112조(유류분의 권리자와 유류분) 상속인의 유류분은 다음 각호에 의한다.
1.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은 그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2.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그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3.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은 그 법정상속분의 3분의 1
4.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그 법정상속분의 3분의 1

상속개시 1년 이전에 제3자에게 증여를 하면, 유류분 반환청구를 피할 수도 있다

공동상속인이 아닌 제3자에 대한 증여는 원칙적으로 상속개시 1년 내에 행한 것에 한해 유류분 반환청구가 가능합니다. 다만 증여 당시에 당사자 쌍방이 유류분권리자에 손해를 가할 것을 인식하고 증여한 경우라면, 상속개시 1년 이전에 한 것에 대해서도 유류분 반환청구가 허용됩니다.

사례에서 외손자에 대한 증여는 제3자에 대한 증여입니다. 딸 하나 씨가 생존해있기 때문에 하나 씨가 상속인이고, 외손자는 상속권이 없는 제3자이지요. 차가훈 씨는 사망일로부터 1년 이전에 증여했고, 증여 당시에 증여재산인 상가의 가액(4억원)을 초과하는 다른 상속재산인 아파트(6억원)가 남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들 두나 씨를 상속에서 배제하겠다는 자신의 의중을 두나 씨는 물론 하나 씨에게도 일절 밝히지 않았습니다. 아직 어린 외손자는 더더욱 이런 사정을 알 수가 없구요.

따라서 당사자 '쌍방이' 유류분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 증여한 때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두나 씨의 유류분 반환청구는 부인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차가훈 씨는 하나 씨의 자녀인 외손자에게만 증여함으로써, 사실상 하나 씨에게만 상속재산을 물려준 셈이 됩니다.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10다50809, 판결]

공동상속인이 아닌 제3자에 대한 증여는 원칙적으로 상속개시 전의 1년간에 행한 것에 한하여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있고, 다만 당사자 쌍방이 증여 당시에 유류분권리자에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 증여를 한 때에는 상속개시 1년 전에 한 것에 대하여도 유류분반환청구가 허용된다. 증여 당시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유류분으로 갖는 직계비속들이 공동상속인으로서 유류분권리자가 되리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 제3자에 대한 증여가 유류분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 행해진 것이라고 보기 위해서는, 당사자 쌍방이 증여 당시 증여재산의 가액이 증여하고 남은 재산의 가액을 초과한다는 점을 알았던 사정뿐만 아니라, 장래 상속개시일에 이르기까지 피상속인의 재산이 증가하지 않으리라는 점까지 예견하고 증여를 행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하고, 이러한 당사자 쌍방의 가해의 인식은 증여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물론 다른 사실관계가 드러난다면 두나 씨의 유류분 반환청구가 인정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두나 씨를 상속에서 배제하기로 차가훈 씨와 딸 하나 씨가 미리 계획했다는 증거가 나타나는 경우 등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정인국 한서법률사무소 변호사/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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