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상기호로 사용되면서 후일 요아힘보다는 브람스의 모토처럼 알려지게 된 이 말은 언뜻 이상하게 들리기도 한다.
흔히 누구나 피하고 싶은 상태로 생각되는 '고독'을 지향점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수께끼 같은 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5가구 중 평균 2가구가 1인 가구인 시대상을 겨냥한 것 같은 제목의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연출 홍성은)에서 문득 고독에 대한 실마리가 보였다.
영화에서 주인공 진아는 뭐든지 혼자 한다.
아파트에 혼자 살고, 혼자 밥을 먹고, 다니는 카드회사 콜센터에서도 거의 대화하지 않는다.
관계 맺기를 거부하고 TV와 스마트폰 수신만으로 일상을 채운다.
'홀로족'이자 '자발적 아싸(아웃사이더)'다.
그는 그게 편했다.
영화의 무대는 콜센터다.
진아는 집과 콜센터 사이를 쳇바퀴 돌 듯 한다.
진아의 직업이 콜센터 상담사라는 건 적지 않게 상징적이다.
콜센터는 자본이 규정하는 일방적 관계와 그에 따른 소위 '갑질'이 용인된 공간이다.

오래전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진아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콜센터에서 '관계'에 대한 모든 희망과 기대를 접고 자기 자신에게로 도피했다.
하지만 진아의 그런 생활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출퇴근길에 말을 걸던 옆집 남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홈캠을 통해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119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교육한 콜센터 수습사원 수진의 무단사직을 겪으면서 그는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받는다.

철저히 혼자이고 싶었지만, 진아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타인과의 작별이 숙제처럼 던져진다.
누군가가 곁에서 떠나갈 때 이별의 대상은 타인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나'였던 것이다.
진아는 수진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한다.
"수진 씨한테 제대로 된 작별 인사가 하고 싶어요…잘 가요…만나서 반가웠어요…못 챙겨줘서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
콜센터에서 갑질 전화에 상처받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려고 하는데 카드 결제가 되느냐"고 묻는 정신병자의 전화에 "나도 데려가 달라"던, 사수인 진아와 함께 점심을 먹고 싶어하던 수진은 그 말을 듣고 엉엉 울어버린다.

산 자에게는 진심이 담긴 인사가, 죽은 자에게는 진정한 애도가 있어야 함을 알게 된다.
진아는 작별을 통해 타인을 인식하고, 타인과 자신과의 '관계'를 인식하게 됐을지 모른다.
영화에서 보여주진 않지만, 아마도 그 이후 진아의 생활은 달라질 것이다.

영화를 본 뒤 '홀로족'들을 바라보며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라는 교훈만을 떠올린다면 심각한 절반의 오독일 듯싶다.
진아는 가정과 직장에서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며 제대로 된 '관계 맺기'에 실패했다.
그렇지만, 진아가 실패로부터 작지만 타인과 제대로 된 작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아마도 그가 경험한 '고독' 때문일 것이다.
그는 철저히 고립됨으로써 오히려 타인의 온기를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그에 반응하는 자신의 내면을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강요되는 고독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고독에 처했을 때 인간은 '진짜 자신'과 대면할 수 있게 된다.
성장할 수 있고 치유될 수 있다.
제대로 된 '관계'의 의미마저 알게 된다.
그리움도 배우게 된다.
관계를 그리워하며 다시 세상에 나간 사람은 아마도 수많은 타자 속에서 절망하고 다시 고독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고독과 관계는 자아 속에서 끊임없이 영역 다툼을 벌이며 변주되는 숙명적인 인간의 두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