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자연재해 주장했지만 법원은 사면조성 책임·관리부실 인정
국가가 피해액 90% 배상해야…우면산 산사태 때는 50% 자연재해
많은 비가 내린 다음 날인 휴일 아침이었던 2019년 10월 3일. 군 연병장 아래 시커먼 석탄재가 작은 마을과 공장을 덮쳤다.

이 사고로 일가족 등 4명이 숨지고 마을 주변 공장들은 수십억원의 재산피해가 났지만 책임지려 하는 사람은 없었다.

토지 소유자와 점유자(국방부) 또한 모두 자연재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사고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결국 유족과 피해자들은 국가(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1년 6개월이 지나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3일 부산지법 서부지원 민사1부(임효량 부장판사)는 구평동 비탈면 붕괴사고 희생자 유가족과 피해 기업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 판결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국가가 피해액의 90%를 배상해야 한다고 인정한 이번 판결은 법원이 산사태를 단순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로 봤다는 점에서 법조계에서는 이례적이고 의미 있는 판결로 분석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가해자 과실 자연력이 경합하여 손해가 발생하면 자연력 기여한 부분은 공제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피고의 자연재해 따른 책임 제한을 10%밖에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액의 90%는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인데 정신적 피해에 따른 위자료도 인정했다.

우면산 산사태의 경우 법원이 자연재해에 따른 책임 제한이 50%나 인정됐다.

이에 비추어 보면 구평동 성토사면 붕괴 사고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명백한 인재였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피고(정부)는 재판 과정에서 "사면을 조성하고 40년 동안 아무런 사고가 없었고 성토제를 선택하거나 설치 보존상 아무런 잘못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참사가 '자연재해에 따른 사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현장검증과 전문가 조사 결과 연병장 성토사면 옆에 있는 U자형 배수로가 토사로 막혀 있는 등 붕괴한 사면 주변이 배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성토제(석탄재) 특성과 성토사면에 배수로 설치 관리상의 하자로 인해서 오랜 기간 석탄재가 침식했고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지하수면이 점진적으로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며 설치 보존상 하자가 인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집중호우로 인해 단기간 발생한 사고가 아닌 (사면이 버틸 수 있는)한계에 도달해서 성토사면이 붕괴한 것이 인정된다"며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피고가 적극적으로 조성한 성토사면이 결과적으로 사고 발생의 원인이 됐다.

국가는 국민 재산과 안전을 보호할 헌법적인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사고로 일가족 3명을 잃은 유가족은 "죽음은 금전적 보상으로 해결되지 못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사고의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며 "이번 사고 이후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국방부로부터는 한마디의 사과조차도 듣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