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껍데기 같기도 하고 여인의 가슴 모양을 닮기도 한 봉긋한 전등갓과 각각의 갓을 연결하는 곤충 다리처럼 가늘고 긴 검정 파이프로 이뤄진 디자인이 매우 그래픽적이다.
세르주 무이(1922~1988)는 어린 나이에 금은 세공 아틀리에에 견습생으로 들어간 뒤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으며 초고속으로 장인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에 파리 장식미술학교의 교수가 됐다. 그가 창작활동을 한 건 1952년부터 1963년까지 10여 년간이다. 자신만의 명확한 디자인 어휘와 문법으로 풀어낸 40여 종의 조명등을 남겼다. 용도에 따라 벽부등, 천장등, 스탠딩 조명, 탁상 조명으로 구분하고 등이 몇 개짜리인지, 팔이 일직선인지 꺾여 있는지, 팔의 각도가 조절되는지 고정인지에 따라 옵션이 있을 뿐 제품군은 무척 단순하다. 스탠딩 램프 1 암(arm), 천장등 3 로테이팅 암, 벽부등 스파이더 5 암 등이 시그니처 제품이다.
세르주 무이의 조명등은 화려하고 복잡한 이탈리안 스타일의 조명이 유행하던 1940~1950년대에 이와 상반된 단순하고 모던한 아름다움을 지닌 조명등으로 각광받으며 큰 성공을 거뒀지만 그는 비즈니스에 관심을 두기보다 교수로 학교에 남길 원했다.
조용히 묻힐 뻔한 세르주 무이의 조명등에 세계 디자인 애호가들이 열광하게 된 건 그가 세상을 뜨고 11년이 흐른 1999년부터다. 부인 진 무이와 그의 새 남편 클로드 델피로는 세르주 무이 아틀리에를 차려 그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세르주 무이 아틀리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작가의 오리지널 디자인에 녹아 있는 정신과 감성을 현재에도 원형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클래식 디자인 그대로를 예전의 제조 방식과 재료로, 16명의 장인이 전 과정 수공으로 제작한다. 조명 한 개를 완성하는 데 6~7주가 소요되며, 연간 2000개 안팎으로만 생산한다.
세르주 무이의 조명등은 1980년대에 세계적인 미술관 퐁피두센터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을 통해 1950년대 프랑스 건축과 디자인을 대표하는 마스터피스로 소개되며 중요한 역사적 디자인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매력적인 조명등이 궁금하다면 세계 최초의 단독 매장인 서울 도산공원점에 가보길 권한다.
구선숙 <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