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향 동판화 작품 23점
운보 바보산수등 8점 전시

하지만 운보는 망설였다. 우향은 전북 군산 대지주의 딸로 일본 유학까지 한 신여성, 운보는 가난한 데다 청각장애까지 있는 청년이었다. 그런 운보에게 우향은 “그림을 배우고 싶은데 편지를 해도 되느냐”며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군산에서 매주 굴비 선물을 보내고 남산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3년 후 우향은 “함께 살자. 대신 그림만 그리게 해 달라”고 졸라 결혼에 골인했다. ‘부부 화가’의 탄생이었다.
금슬이 도타웠던 두 사람은 1947년 첫 부부전 이후 12차례나 함께 전시회를 열었다. 하와이 호놀룰루, 워싱턴DC 등 해외 부부전도 열었다. 두 사람은 창작의 길을 함께 걸은 동지이자 동반자였다.

그가 남긴 판화들은 한국적인 정서가 깔린 가운데 현대적 조형미가 돋보인다. 현대의 미디어아트를 연상케 하는 1972년작 ‘빛의 향연’ 연작, 우리 전통부채 모양에 소용돌이치는 듯한 푸른색 선을 펼쳐 놓은 1970~1973년작 ‘현상’, 추상적 무늬들이 이어지는 ‘회상’(1970~1973), ‘계절의 인상’ 연작(1971년), 고대 문양을 떠올리게 하는 ‘고담’ ‘새벽’ 등 다채로운 동판화들을 만날 수 있다.
손성례 청작화랑 대표는 “전시작은 대부분 미국 시카고에 있는 유족들 소장품으로, 처음 공개되는 작품도 있어서 우향의 판화 세계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운보의 작품을 보면 애틋한 부부애가 느껴진다. ‘청록산수’를 그렸던 운보는 우향이 떠나자 ‘바보산수’를 그렸다. 특히 석류나무 위에서 다람쥐 한 쌍이 노니는 모습을 그린 1969년작 ‘석류와 다람쥐’는 운보가 우향에게 선물했던 그림이다. 유족이 소장해오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전시는 12월 5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