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브루흐는 독실한 프로테스탄트였으니 이 역시 잘못된 것이다. ‘콜 니드라이’에 사용된 선율이 너무도 강렬한 유대풍이었기에 오해가 증폭됐을 뿐이다. 사실 브루흐는 평생 스코틀랜드, 스웨덴, 보헤미아 등 여러 나라 선율을 인용하는 데 익숙한 작곡가였다. 모든 것을 정치적 목적과 논리에 갖다 붙이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유형종 < 음악·무용칼럼니스트 (무지크바움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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