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 원앤제이갤러리 개인전 '녹색연구-서울-공터'
경복궁 바로 옆,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넓은 부지가 있다.

높은 담에 가려져 비밀스러운 분위기까지 나는 송현동 공터는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 바깥 숲 정원이었고, 조선 말기까지 왕족과 고위 관리 사저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식산은행이 사들여 사택 부지로 썼고, 독립 후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 등이 있었다.

이후 국내 기업으로 소유권이 넘어가 최고급 호텔 건립이 추진됐으나 다시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다.

땅값이 5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넓이 3만6천642㎡에 달하는 도심 한복판 금싸라기 땅이지만, 비무장지대처럼 사람 발길이 오랜 세월 닿지 않았다.

약 20년간 방치된 땅에는 잡풀과 나무만 무성하다.

종로구 가회동 원앤제이갤러리에서 열리는 강홍구(64) 개인전 '녹색연구-서울-공터'는 송현동 부지를 비롯해 서울에 남은 공터에 주목한다.

송현동과 용산역세권 부지, 용산 미군 주둔지 등 개발 지연으로 어색한 모습으로 남은 공터 외에 올림픽공원, 서울숲, 선유도공원처럼 매끈하게 옷을 갈아입은 장소도 있다.

창신동 채석장 주변과 밤섬처럼 모진 풍파 속에 힘겹게 살아남은 흔적도 있다.

강홍구는 1990년대부터 디지털 풍경사진에 자본주의 사회 이면을 담아왔다.

2009년부터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도시화와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 모습을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에 초점을 맞춰 '서울-이상한 도시'라는 작업을 구상하던 중 서울 공터에 집중한 전시를 먼저 열게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촬영한 사진을 캔버스 위에 출력한 후 아크릴로 산과 나무에 덧칠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린 '그림 사진'이다.

실제 풍경을 담은 사실적인 사진 위에 작가의 붓질이 더해져 낯선 장면을 만들어낸다.

사진 여러 장을 어긋나게 이어붙여 화면을 분할한 구도는 뒤틀린 상황을 암시하는 듯하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사진도 그림도 아닌, 사진과 그림 경계에 선 이미지로 독특한 느낌과 분위기를 내고자 했다"라며 "여러 장 사진을 어긋나게 붙인 것은 우리가 보는 풍경이 파편들의 집합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녹색을 강조한 이번 작업은 무조건 공터를 보존해야 한다기보다는 경제적 이유만으로 결정하지 말고 그 땅의 역사적 흐름을 봤으면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작가는 도시의 녹색 공간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폭력을 들여다본다.

전시를 접하면 무감각하게 지나치던 공터를 다른 시선으로 마주하게 된다.

5월 31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