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립미술관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Ⅲ-김종학'
장엄하게 꽃 피운 김종학 60년 화업
"죽을 때까지 해야지. 내 소원이 그리다 죽는 것입니다.

"
여든을 넘긴 노작가가 힘줘 말했다.

다른 어떤 말보다 또렷하게 들렸다.

60여년 그림을 그렸지만, 붓을 놓기는커녕 더 기운차게 뻗으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작가다웠다.

'설악의 화가'로 불리는 김종학(83) 화백은 전시가 있든 없든 요즘도 매일 작업실로 출근해 쉼 없이 붓을 잡는다.

2015년 설악산에서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 작가는 대형 작품에 몰두했다.

꽃, 숲, 겨울 산 등 대표적인 주제를 과거 어느 작업보다 큰 캔버스에 담았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에서 공개한 신작 꽃 그림은 세로 10m, 가로 6m에 달한다.

천장 높이에 걸린 형형색색 꽃 그림은 바닥에 떨어지고도 남아 길게 펼쳐진다.

하늘로 꽃길이 열린 듯 장엄한 광경을 연출한다.

김종학은 색채 조화와 기운생동(氣韻生動)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작업한다.

화려한 색의 조화와 분출하는 자연의 에너지가 60년 화업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에 그는 대혼란이라는 뜻의 'Pandemonium'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6일부터 일반 관람객에 공개되는 부산시립미술관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Ⅲ-김종학' 전의 하이라이트라 할만하다.

짙은 어둠이 깔린 밤바다, 수평선에 고기잡이배 불빛이 보이는 또 다른 신작 '바다'는 바다가 보이는 부산 작업실에서 완성한 대작이다.

드넓은 바다가 뿜어내는 대자연의 기운이 가로 8m 캔버스 위에 넘실댄다.

장엄하게 꽃 피운 김종학 60년 화업
부산시립미술관이 올해 첫 기획전으로 마련한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Ⅲ-김종학'은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이후 약 9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김종학 회고전이다.

전시는 회화와 드로잉, 작가가 수집한 목가구 등 210여점을 통해 아름다운 색채로 자연 정취를 표현한 김종학의 예술세계를 아우른다.

화려한 꽃과 설악산 풍경으로 유명하지만, 그는 추상적인 실험미술을 거쳐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일궜다.

1960년대에는 박서보, 윤명로, 김창열 등과 교류하며 앵포르멜(비정형) 작품을 그렸다.

1968년 일본 도쿄에 진출해 모노하(物派) 작가인 세키네 노부오, 이우환 등을 만났다.

1970년대 중반까지 전위적 설치미술을 선보였다.

1977년 미국행은 큰 전환점이 된다.

뉴욕에서 그는 구상미술을 작업의 새로운 방향으로 삼았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추상미술에서 탈피하고자 뉴욕에서 정물화, 풍경화, 먹그림, 단색화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손자인 루시안 프로이트와 프랜시스 베이컨 등의 작품을 좋아했다"라며 "특정 사조에 치우친 문화에 회의를 느꼈는데 뉴욕에서 미술의 다양성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김종학은 1979년 설악산에 들어가면서 자연을 한국적 정서를 담은 화려한 색채로 표현한 독자적 양식을 구축한다.

지금은 널리 사랑받는 거장이지만, 그의 구상미술이 곧바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작가는 "설악에 들어간 이후 한국 화단이 어떻게 보든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라며 "추상이 뒷받침된 새로운 구상미술을 하려 했는데, 10년쯤 지나니 알아주더라"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꽃과 설악 그림 외에 최초 공개되는 초기작과 최신작을 비롯해 작가의 전 시기 작업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뉴욕 빌딩 숲을 먹으로 그린 풍경화와 전위적 추상회화 작품 등이 지난 작품 여정을 보여준다.

1970년 일본 무라마츠 화랑 개인전에 출품한 설치 작품도 재현했다.

두 나무상자를 흰 천으로 싸고 중간 부분을 빨래 짜듯 꼰 작품이다.

한 작가 작품만으로 부산시립미술관 3층 전관이 가득 찼다.

대가의 60년 화업은 한국 현대회화사 흐름을 보여주는 듯 다채롭고 방대하다.

동양과 서양, 추상과 구상, 전통과 실험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전시는 6월 21일까지.
장엄하게 꽃 피운 김종학 60년 화업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