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솔 여행작가의 이탈리아 북부여행 (2) 낭만의 섬, 베네치아
이탈리아 최강 공국이던 베네치아
베네치아가 처음부터 낭만의 역사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567년 이민족에게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생존을 위해 만(灣) 기슭에 도시를 세웠다. 12개 섬에 마을을 일구고, 해상무역의 중심으로 번영해 나갔다. 10세기 말에는 지중해 지역과 무역하며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피난온 사람들이 바다에 말뚝을 박아 세운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성장했다. 14세기까지 이탈리아 최강의 공작이 지배하는 나라인 공국이었다.
베네치아는 S자형 대운하가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크고 작은 운하가 교차하고, 각양각색의 다리가 놓여 있다. ‘물의 도시’라 자동차는 다닐 수 없다. 수상 버스나 수상 택시, 곤돌라 같은 배로 다닌다. 골목에 촘촘히 들어선 건물과 웅장한 성당 및 궁전이 자리한 광장이 있는 도시는 13세기에 이미 완성됐다.
1786년,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여행하며 쓴 <이탈리아 기행>에서 “뱀처럼 구불거리는 대운하는 세계의 어떤 도로에도 손색이 없고, 세계의 어떤 광장도 산 마르코 광장 앞의 공간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괴테가 베네치아를 묘사한 글과 당시 화가들이 풍경을 담은 그림은 지금의 모습과 비교해도 거의 다를 게 없다.
베네치아의 심장 리알토 다리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에 놓인 수많은 다리 중에서 가장 활기 있다. 베네치아에 처음 도시가 세워졌을 때 리알토 섬이 심장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리알토는 상권의 중심지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리알토 다리 주변에는 다양한 상점과 운하를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리알토 다리에서 내려와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미로처럼 이어진 베네치아 골목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길을 잃는다. 크게 헤매지 않으려면 노란색 이정표에 표시된 화살표를 잘 따라가야 한다. 좁은 골목을 걷다 보니 베네치아의 상징인 가면으로 장식한 상점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13세기 초, 베네치아 총독이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오면서 이슬람 여인들을 포로로 끌고 왔는데, 이슬람 여인이 입은 온몸을 감싸고 눈만 보이게 하는 전통의상에서 영감을 얻어 가면을 만들었다. 베네치아 가면은 르네상스 시대에 가면극이 유행하면서 화려하고 다양해졌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매년 2월 사순절(예수가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했던 기간)에 가면무도회가 열리면 수많은 사람이 매혹적인 가면을 쓰고 화려한 축제를 즐긴다. 상점 안에서 가면 몇 개를 골라 번갈아 대보니 가면 뒤로 감춰진 얼굴은 귀족이 되기도, 오페라 가수가 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 산 마르코 광장
볼거리 가득한 좁은 골목을 빠져 나오면 가슴이 확 트이는 광장이 펼쳐진다. 나폴레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격찬한 산 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 여행의 핵심이다. 옛날에 채소밭이던 곳을 1723년 건축가 안드레아 티랄리가 물고기 지느러미 문양으로 바닥을 설계했다. 광장에는 유서 깊은 카페도 늘어서 있다. 1720년 개업하고 바이런, 괴테, 바그너, 나폴레옹 등이 단골손님으로 찾던 카페 플로리안은 고풍스럽다. 처음 그 자리에 있는 카페에서 우아한 찻잔에 내온 커피를 마시며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있노라니 마치 18세기로 거슬러 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특이하게도 커피값에 음악을 듣는 비용이 덤으로 얹어 나왔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광장 노천에는 피아노, 아코디언, 바이올린, 첼로의 앙상블이 흐르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아름다운 모자이크와 섬세한 조각으로 빛나는 성당 안에 들어서면 저절로 탄성이 새어 나온다. 구약성서의 내용을 모자이크로 장식한 돔 천장은 웅장하다.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제단화인 팔라도르는 비잔틴 예술의 걸작으로 산 마르코 성당의 보물이다.
베네치아의 낭만을 대표하는 명물 곤돌라
알록달록한 색채의 향연 부라노섬
베네치아 본섬에서 바포레토를 타면 다른 색깔을 지닌 섬으로 갈 수 있다. 수상 버스는 유리공예 전시장 같은 무라노, 세계 3대 국제영화제인 베네치아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 알록달록한 색채의 향연이 펼쳐지는 부라노를 연결한다. 유명한 세 섬 중에서 본섬에서 가장 먼 부라노로 가는 바포레토에 몸을 실었다. 40분을 달려 부라노 선착장에 다가가니 마치 팔레트에 물감을 짜놓은 듯 형형색색 아름다운 색감을 뽐내는 마을이 물 위에 떠 있다. 원래 조용한 어촌이던 부라노는 집 외벽을 화려한 색으로 칠하면서 베네치아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섬이 됐다.
부라노 섬에 안개가 짙게 내리면 고기를 잡으러 나간 어부가 집을 잘 찾을 수 있도록 알록달록한 색을 칠했다고 한다. 외벽의 색은 마음대로 칠하는 것이 아니라 구역에 지정된 색을 골라 칠한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운하를 따라 늘어선 집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집집마다 개성이 넘친다. 색이 다르듯 창문의 모양과 장식도 다르다. 꽃으로 장식한 창문, 예쁜 레이스를 드리운 창문들이 아기자기함을 더한다.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엽서가 된다.
여행메모
베네치아=글·사진 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