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水路…매혹적인 수상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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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이솔 여행작가의 이탈리아 북부여행 (2) 낭만의 섬, 베네치아
이솔 여행작가의 이탈리아 북부여행 (2) 낭만의 섬, 베네치아
열차는 미끄러지듯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에 정차했다. 도시를 들고나는 사람들이 교차하며 북적거리는 역을 빠져 나오니 꿈처럼 경이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세상에 이렇게 매혹적인 도시가 또 있을까.’ 중세의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듯 늘어서 있고 그 앞을 작은 배들이 떠다닌다. 눈앞에 펼쳐진 독특한 풍경을 마주한 순간, 가슴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이탈리아 최강 공국이던 베네치아
낭만적인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다. 가옥 사이로 곤돌라가 떠다니고 화려한 가면축제가 열리는 베네치아는 118개의 작은 섬과 177개의 운하를 400여 개 다리가 연결한다. 작품 속에 나올 법한 풍경 덕분에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베네치아를 찾아온다.
베네치아가 처음부터 낭만의 역사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567년 이민족에게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생존을 위해 만(灣) 기슭에 도시를 세웠다. 12개 섬에 마을을 일구고, 해상무역의 중심으로 번영해 나갔다. 10세기 말에는 지중해 지역과 무역하며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피난온 사람들이 바다에 말뚝을 박아 세운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성장했다. 14세기까지 이탈리아 최강의 공작이 지배하는 나라인 공국이었다.
베네치아는 S자형 대운하가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크고 작은 운하가 교차하고, 각양각색의 다리가 놓여 있다. ‘물의 도시’라 자동차는 다닐 수 없다. 수상 버스나 수상 택시, 곤돌라 같은 배로 다닌다. 골목에 촘촘히 들어선 건물과 웅장한 성당 및 궁전이 자리한 광장이 있는 도시는 13세기에 이미 완성됐다.
1786년,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여행하며 쓴 <이탈리아 기행>에서 “뱀처럼 구불거리는 대운하는 세계의 어떤 도로에도 손색이 없고, 세계의 어떤 광장도 산 마르코 광장 앞의 공간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괴테가 베네치아를 묘사한 글과 당시 화가들이 풍경을 담은 그림은 지금의 모습과 비교해도 거의 다를 게 없다.
베네치아의 심장 리알토 다리
산타루치아 역 앞에서 수상 버스인 바포레토를 타고 리알토 다리에 내렸다. 베네치아 본섬을 가로지르는 대운하에서 폭이 가장 좁은 곳에 놓인 리알토 다리는 원래 나무로 만들었다가 16세기 말, 군선이 드나들기 편하도록 흰 대리석의 아치 모양으로 재건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운하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다리와 그 주변에는 언제나 여행자들이 넘쳐난다.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에 놓인 수많은 다리 중에서 가장 활기 있다. 베네치아에 처음 도시가 세워졌을 때 리알토 섬이 심장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리알토는 상권의 중심지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리알토 다리 주변에는 다양한 상점과 운하를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리알토 다리에서 내려와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미로처럼 이어진 베네치아 골목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길을 잃는다. 크게 헤매지 않으려면 노란색 이정표에 표시된 화살표를 잘 따라가야 한다. 좁은 골목을 걷다 보니 베네치아의 상징인 가면으로 장식한 상점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13세기 초, 베네치아 총독이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오면서 이슬람 여인들을 포로로 끌고 왔는데, 이슬람 여인이 입은 온몸을 감싸고 눈만 보이게 하는 전통의상에서 영감을 얻어 가면을 만들었다. 베네치아 가면은 르네상스 시대에 가면극이 유행하면서 화려하고 다양해졌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매년 2월 사순절(예수가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했던 기간)에 가면무도회가 열리면 수많은 사람이 매혹적인 가면을 쓰고 화려한 축제를 즐긴다. 상점 안에서 가면 몇 개를 골라 번갈아 대보니 가면 뒤로 감춰진 얼굴은 귀족이 되기도, 오페라 가수가 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 산 마르코 광장
볼거리 가득한 좁은 골목을 빠져 나오면 가슴이 확 트이는 광장이 펼쳐진다. 나폴레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격찬한 산 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 여행의 핵심이다. 옛날에 채소밭이던 곳을 1723년 건축가 안드레아 티랄리가 물고기 지느러미 문양으로 바닥을 설계했다. 광장에는 유서 깊은 카페도 늘어서 있다. 1720년 개업하고 바이런, 괴테, 바그너, 나폴레옹 등이 단골손님으로 찾던 카페 플로리안은 고풍스럽다. 처음 그 자리에 있는 카페에서 우아한 찻잔에 내온 커피를 마시며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있노라니 마치 18세기로 거슬러 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특이하게도 커피값에 음악을 듣는 비용이 덤으로 얹어 나왔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광장 노천에는 피아노, 아코디언, 바이올린, 첼로의 앙상블이 흐르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광장의 랜드마크처럼 화려하게 세워진 산 마르코 성당은 예수의 열두 제자인 12사도 중에서 산 마르코(성 마가)의 유해를 모셔놓았다. 광장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날개 달린 사자는 산 마르코를 상징하며 도시의 수호신이다. 둥근 지붕 모양이 아름다운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절묘하게 섞이면서 동서양의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드러낸다. 성당 정면에서 힘차게 달리는 네 마리 청동 말 조각은 BC 4~2세기께 만들어졌다. 13세기에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왔다. 나폴레옹이 프랑스로 가져가 개선문 위에 장식했다가 베네치아로 다시 돌아왔다. 외부에 장식한 것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성당 안에 있다.
아름다운 모자이크와 섬세한 조각으로 빛나는 성당 안에 들어서면 저절로 탄성이 새어 나온다. 구약성서의 내용을 모자이크로 장식한 돔 천장은 웅장하다.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제단화인 팔라도르는 비잔틴 예술의 걸작으로 산 마르코 성당의 보물이다.
베네치아의 낭만을 대표하는 명물 곤돌라
바다를 향해 걷다 보면 베네치아의 위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두칼레 궁전과 외부로 연결된 작은 다리가 있다. 탄식의 다리는 궁전에서 지하 감옥으로 바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궁전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감옥으로 향하던 죄수들이 다리를 건너며 다시는 햇빛을 볼 수 없음을 탄식했다고 해 ‘탄식의 다리’라고 부른다. 이 감옥에서 유일하게 탈출한 사람이 유명한 바람둥이 카사노바다. 그가 탈출한 방법이 다양하게 전해지는데, 그에게 마음을 품었던 여인들이 간수를 매수해 탈출하게 했다고 한다. 숨은 이야기 때문일까. 작은 다리 위가 수많은 사람으로 넘쳐난다. 좁은 수로를 내려다보면 다리 아래로 뱃사공이 노를 젓는 곤돌라가 유유히 흘러간다.
알록달록한 색채의 향연 부라노섬
베네치아 본섬에서 바포레토를 타면 다른 색깔을 지닌 섬으로 갈 수 있다. 수상 버스는 유리공예 전시장 같은 무라노, 세계 3대 국제영화제인 베네치아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 알록달록한 색채의 향연이 펼쳐지는 부라노를 연결한다. 유명한 세 섬 중에서 본섬에서 가장 먼 부라노로 가는 바포레토에 몸을 실었다. 40분을 달려 부라노 선착장에 다가가니 마치 팔레트에 물감을 짜놓은 듯 형형색색 아름다운 색감을 뽐내는 마을이 물 위에 떠 있다. 원래 조용한 어촌이던 부라노는 집 외벽을 화려한 색으로 칠하면서 베네치아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섬이 됐다.
부라노 섬에 안개가 짙게 내리면 고기를 잡으러 나간 어부가 집을 잘 찾을 수 있도록 알록달록한 색을 칠했다고 한다. 외벽의 색은 마음대로 칠하는 것이 아니라 구역에 지정된 색을 골라 칠한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운하를 따라 늘어선 집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집집마다 개성이 넘친다. 색이 다르듯 창문의 모양과 장식도 다르다. 꽃으로 장식한 창문, 예쁜 레이스를 드리운 창문들이 아기자기함을 더한다.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엽서가 된다. 집마다 차 대신 보트 한 대씩을 가지고 있어 집 앞 운하에는 마치 골목에 자동차를 주차한 것처럼 작은 배가 세워져 있다. 남자들이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가면 부라노의 여인들은 한 땀 한 땀 레이스를 떴다. 베네치아 본섬과 부속섬은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풍경을 담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베네치아가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여행메모
베네치아 본섬에서 부라노로 가려면 산타루치아 역 앞에 있는 페로비아(Ferrovia) 선착장에서 바포레토 4.1, 5.1번을 타고 폰다멘테 노베(Fondamente Nove)에서 내려 12번 바포레토로 갈아탄다. 부라노 선착장까지 40여 분 걸린다. 부라노의 먹거리로 오징어 먹물 리소토와 먹물 파스타(사진)가 유명하다.
베네치아=글·사진 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
이탈리아 최강 공국이던 베네치아
낭만적인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다. 가옥 사이로 곤돌라가 떠다니고 화려한 가면축제가 열리는 베네치아는 118개의 작은 섬과 177개의 운하를 400여 개 다리가 연결한다. 작품 속에 나올 법한 풍경 덕분에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베네치아를 찾아온다.
베네치아가 처음부터 낭만의 역사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567년 이민족에게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생존을 위해 만(灣) 기슭에 도시를 세웠다. 12개 섬에 마을을 일구고, 해상무역의 중심으로 번영해 나갔다. 10세기 말에는 지중해 지역과 무역하며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피난온 사람들이 바다에 말뚝을 박아 세운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성장했다. 14세기까지 이탈리아 최강의 공작이 지배하는 나라인 공국이었다.
베네치아는 S자형 대운하가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크고 작은 운하가 교차하고, 각양각색의 다리가 놓여 있다. ‘물의 도시’라 자동차는 다닐 수 없다. 수상 버스나 수상 택시, 곤돌라 같은 배로 다닌다. 골목에 촘촘히 들어선 건물과 웅장한 성당 및 궁전이 자리한 광장이 있는 도시는 13세기에 이미 완성됐다.
1786년,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여행하며 쓴 <이탈리아 기행>에서 “뱀처럼 구불거리는 대운하는 세계의 어떤 도로에도 손색이 없고, 세계의 어떤 광장도 산 마르코 광장 앞의 공간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괴테가 베네치아를 묘사한 글과 당시 화가들이 풍경을 담은 그림은 지금의 모습과 비교해도 거의 다를 게 없다.
베네치아의 심장 리알토 다리
산타루치아 역 앞에서 수상 버스인 바포레토를 타고 리알토 다리에 내렸다. 베네치아 본섬을 가로지르는 대운하에서 폭이 가장 좁은 곳에 놓인 리알토 다리는 원래 나무로 만들었다가 16세기 말, 군선이 드나들기 편하도록 흰 대리석의 아치 모양으로 재건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운하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다리와 그 주변에는 언제나 여행자들이 넘쳐난다.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에 놓인 수많은 다리 중에서 가장 활기 있다. 베네치아에 처음 도시가 세워졌을 때 리알토 섬이 심장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리알토는 상권의 중심지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리알토 다리 주변에는 다양한 상점과 운하를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리알토 다리에서 내려와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미로처럼 이어진 베네치아 골목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길을 잃는다. 크게 헤매지 않으려면 노란색 이정표에 표시된 화살표를 잘 따라가야 한다. 좁은 골목을 걷다 보니 베네치아의 상징인 가면으로 장식한 상점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13세기 초, 베네치아 총독이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오면서 이슬람 여인들을 포로로 끌고 왔는데, 이슬람 여인이 입은 온몸을 감싸고 눈만 보이게 하는 전통의상에서 영감을 얻어 가면을 만들었다. 베네치아 가면은 르네상스 시대에 가면극이 유행하면서 화려하고 다양해졌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매년 2월 사순절(예수가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했던 기간)에 가면무도회가 열리면 수많은 사람이 매혹적인 가면을 쓰고 화려한 축제를 즐긴다. 상점 안에서 가면 몇 개를 골라 번갈아 대보니 가면 뒤로 감춰진 얼굴은 귀족이 되기도, 오페라 가수가 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 산 마르코 광장
볼거리 가득한 좁은 골목을 빠져 나오면 가슴이 확 트이는 광장이 펼쳐진다. 나폴레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격찬한 산 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 여행의 핵심이다. 옛날에 채소밭이던 곳을 1723년 건축가 안드레아 티랄리가 물고기 지느러미 문양으로 바닥을 설계했다. 광장에는 유서 깊은 카페도 늘어서 있다. 1720년 개업하고 바이런, 괴테, 바그너, 나폴레옹 등이 단골손님으로 찾던 카페 플로리안은 고풍스럽다. 처음 그 자리에 있는 카페에서 우아한 찻잔에 내온 커피를 마시며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있노라니 마치 18세기로 거슬러 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특이하게도 커피값에 음악을 듣는 비용이 덤으로 얹어 나왔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광장 노천에는 피아노, 아코디언, 바이올린, 첼로의 앙상블이 흐르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광장의 랜드마크처럼 화려하게 세워진 산 마르코 성당은 예수의 열두 제자인 12사도 중에서 산 마르코(성 마가)의 유해를 모셔놓았다. 광장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날개 달린 사자는 산 마르코를 상징하며 도시의 수호신이다. 둥근 지붕 모양이 아름다운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절묘하게 섞이면서 동서양의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드러낸다. 성당 정면에서 힘차게 달리는 네 마리 청동 말 조각은 BC 4~2세기께 만들어졌다. 13세기에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왔다. 나폴레옹이 프랑스로 가져가 개선문 위에 장식했다가 베네치아로 다시 돌아왔다. 외부에 장식한 것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성당 안에 있다.
아름다운 모자이크와 섬세한 조각으로 빛나는 성당 안에 들어서면 저절로 탄성이 새어 나온다. 구약성서의 내용을 모자이크로 장식한 돔 천장은 웅장하다.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제단화인 팔라도르는 비잔틴 예술의 걸작으로 산 마르코 성당의 보물이다.
베네치아의 낭만을 대표하는 명물 곤돌라
바다를 향해 걷다 보면 베네치아의 위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두칼레 궁전과 외부로 연결된 작은 다리가 있다. 탄식의 다리는 궁전에서 지하 감옥으로 바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궁전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감옥으로 향하던 죄수들이 다리를 건너며 다시는 햇빛을 볼 수 없음을 탄식했다고 해 ‘탄식의 다리’라고 부른다. 이 감옥에서 유일하게 탈출한 사람이 유명한 바람둥이 카사노바다. 그가 탈출한 방법이 다양하게 전해지는데, 그에게 마음을 품었던 여인들이 간수를 매수해 탈출하게 했다고 한다. 숨은 이야기 때문일까. 작은 다리 위가 수많은 사람으로 넘쳐난다. 좁은 수로를 내려다보면 다리 아래로 뱃사공이 노를 젓는 곤돌라가 유유히 흘러간다.
알록달록한 색채의 향연 부라노섬
베네치아 본섬에서 바포레토를 타면 다른 색깔을 지닌 섬으로 갈 수 있다. 수상 버스는 유리공예 전시장 같은 무라노, 세계 3대 국제영화제인 베네치아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 알록달록한 색채의 향연이 펼쳐지는 부라노를 연결한다. 유명한 세 섬 중에서 본섬에서 가장 먼 부라노로 가는 바포레토에 몸을 실었다. 40분을 달려 부라노 선착장에 다가가니 마치 팔레트에 물감을 짜놓은 듯 형형색색 아름다운 색감을 뽐내는 마을이 물 위에 떠 있다. 원래 조용한 어촌이던 부라노는 집 외벽을 화려한 색으로 칠하면서 베네치아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섬이 됐다.
부라노 섬에 안개가 짙게 내리면 고기를 잡으러 나간 어부가 집을 잘 찾을 수 있도록 알록달록한 색을 칠했다고 한다. 외벽의 색은 마음대로 칠하는 것이 아니라 구역에 지정된 색을 골라 칠한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운하를 따라 늘어선 집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집집마다 개성이 넘친다. 색이 다르듯 창문의 모양과 장식도 다르다. 꽃으로 장식한 창문, 예쁜 레이스를 드리운 창문들이 아기자기함을 더한다.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엽서가 된다. 집마다 차 대신 보트 한 대씩을 가지고 있어 집 앞 운하에는 마치 골목에 자동차를 주차한 것처럼 작은 배가 세워져 있다. 남자들이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가면 부라노의 여인들은 한 땀 한 땀 레이스를 떴다. 베네치아 본섬과 부속섬은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풍경을 담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베네치아가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여행메모
베네치아 본섬에서 부라노로 가려면 산타루치아 역 앞에 있는 페로비아(Ferrovia) 선착장에서 바포레토 4.1, 5.1번을 타고 폰다멘테 노베(Fondamente Nove)에서 내려 12번 바포레토로 갈아탄다. 부라노 선착장까지 40여 분 걸린다. 부라노의 먹거리로 오징어 먹물 리소토와 먹물 파스타(사진)가 유명하다.
베네치아=글·사진 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