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구석구석…그 남자, 홀로 즐기다…부라노 섬에서 그 여자, 인생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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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그 남자 그 여자의 여행 (8) 이탈리아 베네치아 vs 부라노
水水한 섬이지만 알록달록, 왜 이 섬에 가보라고 했는지 알겠어
그 남자 그 여자의 여행 (8) 이탈리아 베네치아 vs 부라노
水水한 섬이지만 알록달록, 왜 이 섬에 가보라고 했는지 알겠어

놀이동산처럼 펼쳐지는 골목길

힘차게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옆에 있던 아내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불안이 엄습해왔다. “저기…” 어젯밤 베네치아 입성을 기념하기 위해 목욕재계를 마친 뒤 채 마르지 않은 빨래를 널어놓았다고 한다. 문제는, 그 빨래를 널어놓은 곳이 어디인지 확신이 안 선다는 사실. 의자 위였는지, 충전하고 있던 노트북 위였는지, 콘센트 코드 근처였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만에 하나 젖은 빨래에 의한 누전이 발생한다면 뜻하지 않던 화재로 여행자의 신세는 순식간에 범법자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가면 쓰고 즐기는 매력적인 축제

다양한 색으로 물든 골목 사이로 불어보는 시원한 바람 속에서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탄생 신화를 떠올리다 보니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산마르코 대성당에 이르렀다. 베네치아의 현란한 아름다움을 가득 담아 벽 위에 새겨넣은 산마르코 대성당은 5개의 원형 지붕과 화려한 장식들로 채색돼 있다.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에 있는 대성당들도 하나같이 건축의 멋을 자랑하지만,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은 느낌이 다르다. 이탈리아의 대성당이 웅장한 신사복을 입은 진중한 남성의 이미지라면 베네치아의 대성당은 아름다운 레이스가 수놓아진 부채를 든 화려한 귀부인의 이미지랄까? 보고 있자면 함부로 말을 건네기도 힘들 만큼의 우아함이 느껴진다. 이런 아름다움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홀로 서 있다는 외로움이 밀려온다. 그때, 거짓말처럼 숙소로 돌아갔던 그녀가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말 없이 베네치아가 주는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은 언제 어디서나 빛을 발한다.

우리 부부가 함께 여행한 대부분의 날은 춤을 추듯 즐겁고 꿈을 꾸듯 행복했으나 문제는 둘 중 한 명에게만 불쑥 찾아오는 여행 매너리즘에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한 명이 여행에 대한 의욕을 싹 잃은 채 새로운 것을 봐도 시들, 그 어떤 맛있는 걸 먹어도 시큰둥해 있으면 다른 한 명 역시 여행에 영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아내인 나보다 훨씬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을 지닌 그가 자주 앓곤 했는데, 마치 향수병 같기도 하고 우울증 같기도 했다. 아무리 옆에서 흥을 돋우려 해봐도 사람의 감정이란 게 그리 쉽겠는가? 그럴 땐 며칠 어쩌면 몇 주일이 지나 스스로 빠져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곳 베네치아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뭘 봐도 뚱한, 호환 마마보다도 무섭다는 여행 매너리즘에 빠진 남편 때문에 내 여행 또한 흥이 안 나긴 마찬가지였다.

원래 우리는 베네치아 본섬과 무라노 섬까지만 둘러보기로 했었는데, 첫째 날 나의 부주의로 인해 함께 여행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에 베네치아에서 하루를 더 할애하기로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부라노 섬. 부라노 섬은 본섬에서 수상 버스를 타고 무라노 섬으로, 무라노 섬에서 또다시 수상 버스를 타고 30여 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섬마을이다.
크레파스로 칠한 듯한 동화 속 나라

항구를 벗어나자 어릴 적 크레파스로 정성스럽게 칠했던 것 같은 알록달록한 집들이 나를 동화 속 나라로 이끌었다. 눈으로 직접 보고 또 봐도 신기한 교통수단인 베네치아의 수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늘어선 그림 같은 집들은 한 채 한 채가 모두 하나의 독립된 스튜디오 같았다. 색색의 외벽뿐만 아니라 대문과 창문 앞 화분과 장식용 인형들까지 각 집의 벽 색과 완벽히 어울리는 세팅이었다. 더구나 이 집들이 관람객을 위해 일부러 만든 게 아니라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부라노 섬만의 이 독특한 풍경이 과거 안개가 자주 껴 배를 타고 나갔던 남자들이 집을 잘 찾아 돌아올 수 있게 외벽을 칠한 데서 유래했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뒤를 돌아보니 그의 눈동자도 어느새 카메라 렌즈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바빠진 남편의 셔터 소리에서 그도 나처럼 부라노 섬에 푹 빠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주변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집중했다는 건 이곳이 단 한순간도 놓치기 싫은 아름다운 곳이라는 얘기다. 이 덕분에 나도 더 이상 그의 기분에 연연하지 않고 부라노 섬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될 수 있었다. 함께 하는 여행에선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기분이 내 여행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내가 좋았던 여행지도 좋지만 그가 웃었던 여행지, 그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여행지는 항상 옳다.
베네치아= 글 정민아 여행작가 jma7179@naver.com / 글·사진 오재철 여행작가 nixboy99@daum.net
여행정보
베네치아는 원어(이탈리아어)로는 베네치아, 영어로는 베니스라 한다. 아시아나는 인천~베네치아를 오가는 직항편을 주 3~4회 운행한다. 11시간50분 정도 걸린다. 90일 내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다.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