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새 수도라 불리는 베를린은 역동적인 모습과 함께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공존하는 도시다.
유럽의 새 수도라 불리는 베를린은 역동적인 모습과 함께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공존하는 도시다.
정전협정 체결 65주년, 연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목표라고 떠들썩합니다. 독일 수도인 베를린은 우리에게 관심 가는 여행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도시이기도 한 베를린은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 우리에게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여행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도 그곳으로 떠났습니다.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국가인 독일과 독일의 수도 베를린, 그리고 독일 제2의 도시 함부르크까지 돌아봅니다.

베를린=조은영 여행작가 movemagazine01@gmail.com 사진=무브매거진, 셔터스톡 제공

자전거로 돌기 좋은 개별 여행자의 천국

'분단의 흔적'만 남은 베를린… '혼행의 기쁨' 주는 도시가 되다
베를린은 서유럽의 동쪽 경계 부분에 있다. 해마다 많은 여행객이 유럽을 방문하지만 서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 여행객들의 유럽 여행 루트나 패키지 여행에선 베를린이 빠지기 쉬웠다. 그래서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프랑크푸르트나 뮌헨보다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베를린의 크기는 서울의 1.5배다. 독일의 도시 중 가장 크지만 인구는 400만 명도 되지 않아 쾌적하다. 슈프레 강이 중심부를 관통하고 서쪽으로는 스판다우 강이 슈프레와 만난다. 도시 내에 많은 호수와 정원이 있다. 2500여 개의 공공녹지와 공원이 있고 면적의 25%를 숲과 공원이 차지한다. ‘유럽의 새 수도’라 불리며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도시의 한편엔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공존한다. 도시는 사람들을 넉넉히 보듬어줄 자연이 있고 평평한 평지로 구성돼 자전거 타기에 참 좋다. 그래서인지 베를리너들은 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는 이가 많다. 세계의 자전거 공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도 베를린에 앞다퉈 진출했다. 이는 여행자들도 원한다면 아주 손쉽게 아무데서나 길에 있는 자전거를 주워 타고 원하는 목적지에 자전거를 버려도(?) 된다는 이야기다.
베를린 도심을 관통하는 슈프레 강변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베를린 시민들.
베를린 도심을 관통하는 슈프레 강변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베를린 시민들.
시간만 있다면 운동화 끈을 잡아매고, 슬슬 걷기에도 참 좋은 도시다. 물가도 저렴하고 전철, 버스, 트램 등 대중교통도 촘촘히 발달해 있으니, 베를린은 바야흐로 개별 여행자들의 천국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44년간 동과 서로 나뉘어 있던 도시, 베를린의 분단 시대를 기억하며 하루는 동독 코스, 또 하루는 서독 코스를 잡아 천천히 거닐어보자. 일반버스 100번을 타면 앞으로 2회에 걸쳐 언급하는 주요 코스를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즐겨타는 베를린 시민들.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즐겨타는 베를린 시민들.
쇼핑거리, 예술가의 본거지 알렉산더 플라츠

동베를린 시절 지은 가장 높은 건물인 TV타워.
동베를린 시절 지은 가장 높은 건물인 TV타워.
서베를린의 중심가가 ‘쿠담’이라면 ‘알렉산더 플라츠’는 동베를린의 중심지다. 쿠담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통일 후 쿠담보다 더 중요한 도시의 중심지로 급부상한 알렉산더 플라츠는 동베를린 투어를 시작하기에 알맞은 장소다.

이곳은 만남의 장소이자, 쇼핑거리이며 예술가들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이 부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368m의 높이를 자랑하는 TV타워다. 서베를린에 있는 전승기념탑보다 더 높게 세워 동베를린의 위용을 보여주려 1969년에 지은 TV타워는 당시엔 동베를린의 자랑이자 상징이었고 지금은 베를린 시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랜드마크가 됐다. 현재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기도 한 이곳의 204m 높이엔 전망대가 있으며 바로 위층엔 30분마다 한 바퀴씩 도는 회전 레스토랑도 있다. 여행객이라면 근처에 있는 만국시계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TV타워 바로 옆에는 붉은색 벽돌이 인상적인 마리엔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정확한 건축 시기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1292년 역사서에 등장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본래는 로마 가톨릭 성당이었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가 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상당 부분 파괴됐다가 동독 정부가 1950년대에 재건한 것이다. 이곳에서 교회 앞의 마르틴 루터 상보다 더 볼 만한 것은 중세 예술작품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꼽히는 ‘죽음의 무도(Totentanz)’ 프레스코 벽화다. 이 교회는 붉은 시청사의 모티브가 됐다고도 알려져 있다.

박물관의 섬으로 이름 높은 슈프레 섬

알렉산더 플라츠에서 10분 정도 걷다 보면 화려하고 웅장한 베를린 돔을 만날 수 있다. 베를린 돔은 1747년에 지어진 교회 건물로 ‘베를린 대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전쟁 때 폭격을 받아 많은 부분이 소실돼 단순하게 바뀌었음에도 검게 그을린 듯한 벽면과 푸른 빛의 돔 지붕의 조화는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숨막히게 아름답다.

안으로 들어가보자. 높이 114m, 폭 73m의 거대한 천장 돔이 인상적이다. 프로이센 왕과 독일제국 황제를 배출한 명문가인 호엔촐레(Hohenzolle) 가문의 관들도 놓여 있다. 독일 최대 파이프 오르간을 구경하고 돔 위에서 바라보는 도시 전경을 즐기는 것도 놓치지 말자! 성당 바로 앞에 있는 정원 루스트가르텐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 사실 베를린 돔이 있는 곳은 슈프레 강의 작은 섬, 슈프레 섬이다. 슈프레 섬에는 구박물관, 신박물관, 구국립박물관, 보데미술관, 페르가몬박물관 등 5개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박물관이 모여 있는데, 이를 가리켜 박물관 섬(Museum Island)이라 칭한다. 이들은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뿐만 아니라 각각 소장한 작품들의 예술적, 역사적 가치도 굉장해 199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하루를 온전히 내어 베를린 돔과 관심 가는 박물관 투어만 제대로 한다 해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다.

TV타워 옆에 있는 마리엔 교회와 더불어 베를린에서 가장 유서 깊은 교회로 꼽히는 성 니콜라이 교회는 베를린의 핫 플레이스인 미테의 니콜라이 지구에 있다. 성 니콜라스 교회는 1220~1230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대성당과 1876년 증축한 후기 고딕 양식 구조가 잘 어우러진 건축물이다. 두 개의 탑은 전쟁 때 파괴됐으나 동독 시절 복원한 것이다. 현재는 박물관, 콘서트홀 등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데 내부 관람을 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매월 첫째 수요일은 무료 입장이 가능하니 참고하면 좋다.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시청사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인 니콜라이 지구의 건물들, 레스토랑, 카페 등에선 역사의 흔적이 느껴지는데, 옛 독어로 쓰인 간판도 간간이 보여 향수를 자아낸다. 슈프레 강, 라트하우스 거리, 슈판다우어 거리, 뮐렌담 등과 인접한 니콜라이 지구에서 우린 베를린 옛 모습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사실 이 지역은 1937년 베를린 7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재건축 계획을 시행하면서 많은 건물이 철거됐고,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폭격과 시가전으로 폐허가 된 적도 있다. 그러나 전쟁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역사적 건축물들을 재건해 왔고, 오래된 건물들은 이후 들어선 새 주택,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현재의 모습이 됐다.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베를린 시청사.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베를린 시청사.
니콜라이 지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붉은 시청사는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1861년부터 1869년까지 헤르만 프리드리히 베서만이 건축한 이 건물은 동서독 시대엔 동베를린의 시청사였고, 통일 독일 이후 베를린 시청사로 제자리를 찾았다. 가운데 높이 솟은 시계탑은 프랑스의 라온 대성당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내부의 작은 갤러리가 시민에게 개방되며, 시청에서 행사가 열리는 날을 제외하면 평일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높은 천장과 대리석으로 꾸며진 건물 내부엔 레드카펫까지 깔려 있어 마치 화려한 궁전 안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독일 통일 후 변화 보여주는 포츠다머 플라츠

포츠다머 플라츠는 1990년 독일 통일 후 도시의 천지개벽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현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1920년대에만 해도 유럽의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분단 이후 옛 동베를린 지역에 위치하는 바람에 약 50년간 방치돼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바로 지나가던 장소였던 만큼 장벽이 무너진 후 일대에 51만㎡ 규모의 거대한 공터가 생겼고, 오랫동안 비워둔 탓으로 잡초만 무성했던 이 땅을 두고 3년간의 긴 토론이 이어졌다.

세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개발 공모를 실시했고, 복합도시, 역사성을 살리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이미지를 형상화하자는 골자로 대대적인 도시재생이 시작됐다. 렌조 피아노를 비롯해 리처드 로저스, 헬무트 얀, 한스 콜호프 등 내노라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과거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를 가운데 놓고 두 개의 거대한 건물이 들어섰다. 이들이 포츠다머 플라츠의 중심에 위치한 높이 100m가 넘는 크라이슬러타운과 소니센터다. 과거를 너머 미래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베를린의 층고 제한인 35m보다 3배 가까운 높이를 허가해줬다. 유럽 최대의 건축 현장이 된 포츠다머 플라츠는 건축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꼭 방문해야 할 성지로 알려져 있다. 소니센터의 중간 광장에 들어서면 후지산 모양을 형상화한 천막이 하늘을 덮고 있다. 이곳에선 매년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이외에도 다임러 크라이슬러 빌딩, 도이치반 빌딩, 복합영화관, 최고급 쇼핑몰과 식당가, 호화 아파트와 사무실 등이 들어서 베를린 최고의 번화가로 꼽힌다. 소니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눈에 익은 노란색 건물이 보인다. 바로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장이다. 홈페이지의 콘서트 일정 캘린더에서 공연을 예매할 수 있고, 매주 화요일에 열리는 40분짜리 런치콘서트는 예약만 하면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 있다.

베를린=조은영 여행작가 movemagazine0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