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등대 가는 길 입구 덕포 해변
소리도 등대 가는 길 입구 덕포 해변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보물 이야기는 늘 흥미진진하다. 최근에는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보물선 소식이 전해져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국내 한 업체가 1905년 금화, 금괴 1000상자를 싣고 울릉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드미트리돈스코이호를 인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인양된다면 보물선에 실린 보물의 가치는 무려 150조원이나 될 것으로 추산된다니 일확천금에 눈먼 업자는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환상까지 부추기기에 충분하다.

동인도회사 선박? 후백제 시대 유물?

전남 여수의 외딴 섬 연도에도 숨겨진 보물 이야기가 두 가지 전해진다. 하나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선박이 숨겨뒀다는 보물 이야기다. 연도에 있는 소리도 등대 부근 솔팽이굴은 보물 동굴로 불린다. 연도의 옛 이름이 소리도였던 까닭에 등대 이름이 소리도 등대다. 1627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선이 일본에서 황금을 싣고 인도네시아 식민지로 가던 중 해적선에 쫓기자 솔팽이굴에 급하게 황금을 숨겨 놓고 도망쳤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선장은 네덜란드에 돌아가서 황금의 위치를 성경책에 지도로 그려뒀다. 그리고 350년의 세월이 흐른 1972년 네덜란드계 미군이 한국 근무를 하게 됐다. 어느 날 그 미군이 카투사였던 연도 출신 손연수 씨에게 지도를 꺼내놓고 황금 이야기를 전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본 손씨는 그 섬이 자신의 고향인 연도라 생각하고 제대 후 동굴을 탐사했으나 찾지는 못했다.
소리도 등대에서 액자처럼 보이는 소룡단 풍경
소리도 등대에서 액자처럼 보이는 소룡단 풍경
또 하나는 후백제 왕 견훤의 사위 박영규가 숨겨뒀다는 보물이다. 고려 건국공신이기도 한 순천의 호족 박영규는 후백제 건설과 발전에 공을 세웠는데 후일에는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기여했다. 그의 두 딸은 왕건의 부인인 동산원부인(東山院夫人)과 정종(定宗)의 비인 문공왕후(文恭王后)가 됐다. 박영규는 서남해 제해권을 장악하고 해상무역을 독점해 부를 축적한 무역상이기도 했다. 당시 연도는 박영규의 해상근거지였다. 그 박영규가 연도의 어떤 동굴에 엄청난 금덩어리를 숨겨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어느 동굴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구체적인 인물정보까지 등장하고 박영규가 해상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했을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여행의 향기] 바닷속 금은보화·해적의 전설 간직한 '솔개섬'
동인도회사의 보물 이야기는 착오 때문에 와전된 것일 가능성도 있다. 손씨가 네덜란드계 미군이 지녔던 보물지도에서 봤다는 섬은 영어로 소지도(SOJIDO)로 표시돼 있었다 한다. 그런데 소지도는 통영의 섬이다. 보물 지도의 섬이 통영 소지도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연도(소리도)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지금 우리가 그 보물의 위치를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보물이 숨겨진 곳은 섬이다. 이 나라 많은 섬들이 보물섬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섬으로의 여행은 보물섬으로 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이야기 풍성한 금오열도의 끝 섬

연도에 보물 이야기만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모험 영화의 단골 소재인 해적의 전설도 있다. 연도에 살던 해적은 시대와 이름까지도 알려져 있다. 1592년께 장서린이란 해적 두목과 부하 수백 명이 연도 필봉산 중턱에 청기와 망루를 지어놓고 해적질을 했다고 한다. 관군에게 체포되며 장서린의 해적 생활은 끝이 났지만 아직도 섬 사람들은 이곳을 “서린이 큰 도둑놈 집터’라 부른다. 연도는 보물섬이자 해적섬이기도 했던 것이다. 섬은 그야말로 이야기 창고다. 연도 노인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 “장서린이가 큰 도둑이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향토 사학자들이 장서린 유적을 발굴해 보기도 했지만 다른 유물은 발견하지 못하고 청기와 조각만 얻었다 한다.

연도는 금오열도의 끝 섬이다. 비렁길로 유명한 금오도의 이웃 섬인데 섬 중앙 시루봉의 모습이 솔개가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한 모습과 흡사해서 본래 소리도라 불리다 한자로 표기하면서 연도가 됐다. 지금도 시루봉은 큰 날갯짓으로 하늘을 제압할 듯 강력한 기운을 내뿜는 솔개 같다. 여객선이 드나드는 연도의 관문 역포는 옛날 제주도로 가는 배들이 들러서 쉬어가던 곳이라 역포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연도는 면적 6.81㎢, 해안선 길이 35.6㎞의 땅에 194가구 323명이 살아가는데 주민 다수는 큰 마을인 연도리에 거주한다. 전성기에는 400여 가구 1800여 명까지 살았던 적도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어업이 융성해 부촌으로 이름난 섬이었다. 그때는 140여 척이나 되는 어선이 있었지만 저인망 어업이 금지되면서 어업이 급속히 쇠퇴해 지금은 9척만 남았다.

일제가 건설한 소리도 등대

소리도 등대는 섬의 남쪽 필봉산(증봉, 231m) 자락에 있다. 어느 섬이나 등대가 있는 곳은 풍광이 가장 수려하다. 눈에 잘 띄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도의 화려한 풍경 또한 등대 부근에 집중돼 있다. 코끼리바위, 물개바위, 하늘담 뱀대가리 등 다양한 모양의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코굴(콧구멍 바위), 솔팽이굴 등 해식 동굴도 많고 동굴에 깃든 이야기도 풍성하다. 소리도 등대는 소룡단과 대룡단 사이 절벽에 있다. 등대 마당에 서면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연도의 옛 이름을 그대로 간직한 소리도 등대
연도의 옛 이름을 그대로 간직한 소리도 등대
서쪽으로는 거문도와 백도가 있지만 남쪽 바다로 쭉 가면 공해다. 등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세속의 온갖 때가 다 씻겨나갈 것만 같다. 등대 앞바다는 우리의 시야와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시킨다.

세계 최초의 등대는 BC280년 지중해 알렉산드리아항(港) 입구의 팔로스 섬에 건설된 팔로스 등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 110m 탑 모양이었는데 나무나 송진을 태워 불을 밝혔다 한다. 소리도 등대는 1910년 10월4일에 처음으로 불을 밝혔는데 아름다운 풍광과는 달리 등대의 시작은 결코 미담이 아니다. 등대는 일제의 한반도와 대륙 침략의 앞길을 밝히는 제국의 등대로 설치됐기 때문이다. 청일전쟁(1894~1895) 시기 일본 참모총장과 체신대신 주도로 1895년 6월부터 4개월에 걸쳐 조선 전 연안의 등대 건설 위치를 조사했고 러일전쟁을 앞두고 일제는 등대 건설을 시작했다. 그렇게 제국주의 침략의 등대로 처음 탄생한 것이 1903년 6월 점등한 인천의 팔미도 등대였다.
 보물의 전설이 깃든 소리도 등대 아래 동굴
보물의 전설이 깃든 소리도 등대 아래 동굴
이후 부도, 영도, 우도, 홍도, 소청도, 거문도, 당사도, 소리도 등대가 잇달아 건설됐다. 1912년까지 등대 37기, 기타 표지 133기 등 207기의 등대가 완성됐다. 이 모든 것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뱃길을 인도하기 위한 제국의 등대였다. 소리도 등대 또한 제국의 등대로 탄생했으나 지금은 여수, 광양 인근을 출입하는 선박들과 서해안에서 부산 쪽으로 운항하는 선박들의 앞길을 밝혀 주는 생명의 등대가 됐다. 등대 건물은 6각형 콘크리트 구조인데 등대 내부에는 나선형의 철재 계단이 설치돼 있다. 등탑은 9.2m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하지만 등대가 해수면 82m 절벽에 있어 먼 바다에서도 잘 보인다. 지금도 밤이면 12초 간격으로 불빛을 발사하는데 불빛은 무려 42㎞ 거리까지 도달한다.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로 고통받아

필봉산 아래 지형은 예부터 용 모양으로 믿어졌다. 그래서 등대 인근 지명에는 용이 들어 있다. 대룡단은 용의 머리이고 소룡단은 용의 꼬리, 등대가 위치한 자리는 용의 몸통에 해당한다. 하지만 나그네의 눈에는 암만 봐도 용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소룡단은 오히려 말 머리 같다. 등대 서쪽 절벽에도 용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오랜 옛날 용 한 쌍이 살았는데 비가 오는 날 승천하다가 벼락을 맞고 말았다. 용이 떨어지면서 바위에 부딪혔다. 이때 바위가 갈라지면서 깎아지른 절벽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덕포 마을에서 소리도 등대로 가는 동백 숲길 또한 고적해서 좋다. 겨울이면 붉게 피어오른 동백꽃들로 숲길은 등을 밝힌 듯 환하고 따스하다.
연도 해녀가 차려낸 황홀한 해녀 밥상
연도 해녀가 차려낸 황홀한 해녀 밥상
연도 주민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1995년 7월23일 소리도 등대 서쪽 1.5㎞ 해상에서 발생한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다. 키프로스 국적 14만4000t급 유조선 시프린스호가 당시 호남정유(현 GS칼텍스)에 원유 130만 배럴을 공급하던 중 태풍 페이 때문에 좌초돼 기관실이 폭발하고 다량의 기름이 유출된 대형 사고였다. 이 사고는 초기 방제 실패에 기상악화가 더해져 남해 바다에 대형 재앙을 불러왔다. 이 사고로 유출된 기름은 전남 고흥과 경남 통영, 거제는 물론 부산 해운대 앞바다까지 오염시켰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연도 어민들이었다. 시프린스호 사고 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는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아픔이 수장된 바다지만 오늘 연도 바다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더없이 푸르다.

우리는 푸른 바다가 아름다워 마음에 담지만 실상 바다는 마음이 없다. 무심히 흐르는 물결, 그 아래로 우리 생애도 그저 무심히 흘러간다.

여행 메모

연도행 여객선은 여수항에서 오전 6시20분과 오후 2시30분 하루 두 차례 정기적으로 운항하며 섬까지는 1시간20분 정도 걸린다.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25인승 버스가 섬의 구석구석을 다닌다. 연도마을 앞 연도 선착장은 수심이 낮아 객선이 기항하지 않기 때문에 섬에 들고나기 위해서는 역포 선착장과 마을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연도 트레킹 코스는 연도리~등대~쌍굴~소룡단~정자~해상굴 쪽 소리길~연도리로 돌아가는 약 7㎞의 바닷길이다.

천천히 걸어도 4시간 정도 걸리며 바다로 이어져 풍경이 좋다. 연도에서 제일 높은 산인 필봉산 정상에는 군 통신 기지가 있어 출입이 금지돼 있다.
[여행의 향기] 바닷속 금은보화·해적의 전설 간직한 '솔개섬'
강제윤 시인은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이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 《섬을 걷다》 《바다의 노스텔지어, 파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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