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과 황금빛 해변이 어우러진 더반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도시 중 하나다.
빌딩 숲과 황금빛 해변이 어우러진 더반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도시 중 하나다.
가장 완벽한 도시의 풍경을 보여주는 곳, 그곳은 아마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일 것이다. 도시 앞으로는 길고 긴 황금빛 해변이 펼쳐지고 인도양의 푸른 바다가 넘실거린다. 더반의 해변은 세계 3대 서핑 포인트로 꼽힌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도 해변 바로 앞까지 3m 이상 파도가 넘실댄다. 사람들은 하루 일과를 바다에서 서핑보드를 타는 것으로 시작해 저녁 무렵 노을 속에서 와인을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느긋한 휴식과 황홀한 자연을 느끼고 싶다면 더반은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줄 것이다.
비행기 지연과 폭우로 험난했던 여정

여행은 언제나 우리의 계획을 비웃고 기대를 배반한다. 희망을 절망으로 바꿔버리기도 하고 절망을 감탄으로 바꿔주기도 한다.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 인생이듯, 여행 역시 일단 가봐야 안다. 가지 않으면 절대로 알지 못한다. 일본의 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했듯, 내 몸을 그 장소에 두지 않으면 절대로 깨달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알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얼마 전 떠난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여행도 그랬다.

더반으로 가는 여정은 만만치 않다. 인천에서 홍콩까지 4시간,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13시간을 가야 한다. 그리고 요하네스버그에서 국내선을 타고 1시간20분을 더 가면 더반에 도착한다. 하지만 여정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인천에서 비행기가 지연 출발하면서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행 비행기를 놓치고 만 것이다. 항공사 측에서 마련해준 연결편은 에티오피아항공. 예정에 없던 아디스아바바라는 낯선 도시까지 11시간을 날아가 그곳에서 더반까지 다시 6시간을 더 가야 했다. 이틀 전 인터넷 체크인을 통해 잡아두었던 복도 쪽 좌석은 비좁은 가운데 좌석으로 바뀌어있었다.

더반 킹 샤카 공항에 도착해서도 설상가상이었다. 흐린 날마저 보기 힘들다는 더반에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다던 가이드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공항에서 정처없이 기다리기를 2시간. 헐레벌떡 뛰어온 가이드는 도착 날짜를 착각했다며 사과부터 했다. 그렇게 하루가 꼬박 넘게 걸려 도착한 더반. 겨우겨우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시티투어를 해야 했다. 정확히 1시간10분 동안 도요타 랜드크루즈를 타고 시내를 돌아보았다. 비가 내려 차에서 내릴 수조차 없었다. 마지막 일정인 월드컵경기장 앞에 서기까지 작은 공예품 시장 하나를 본 것이 전부였다.

더반은 우리에게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도시이자 2010 남아공월드컵 한국팀의 경기가 열린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정식 명칭이 ‘모세스 마비다 스타디움(Moses Mabhida Stadium)’인 월드컵경기장은 더반을 찾는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가는 곳이다. 경기장 이름은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무장투쟁을 이끈 모세스 마비다의 이름에서 따왔다. 2010년 6월22일 이곳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은 나이지리아와의 3차전 경기를 치렀고 2-2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56년 만에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룩했다. 경기장 위로 케이블카인 ‘스카이 카(Sky Car)’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일종의 전망대인데 높이가 약 100m에 달한다. 올라가면 더반 시내와 푸른 인도양을 한눈에 내려다보는데 번지점프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비가 온 데다 스카이 카는 수리 중이라 타볼 수조차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골든마일 해변에서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
이른 아침부터 골든마일 해변에서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
세계 3대 서핑 비치 골든마일 해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동안 다행히도 비가 그쳤다. 비가 그치자 도시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우울한 색으로 가득했던 도시는 총천연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바다는 황금빛으로 찬란했고 야자수는 기분 좋게 잎사귀를 흔들어댔다. 골든마일 해변은 조깅하는 사람들과 스케이트보드를 탄 청년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전혀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마법을 부린 것만 같았다.

더반의 골든마일은 인도양을 따라 무려 6㎞나 이어지는 해변이다. 골든마일이라는 이름은 해변의 모래사장이 햇빛을 받을 때면 마치 금가루를 뿌린 듯 황금빛으로 빛난다고 해서 이름붙었다.
세계 10대 워터파크로 손꼽히는 우샤카 마린 월드.
세계 10대 워터파크로 손꼽히는 우샤카 마린 월드.
골든마일 해변은 세계 3대 서핑 비치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해뜨기 전부터 서퍼들이 몰려와 열심히 파도를 탄다. 바다는 그들에게 3m가 넘는 멋진 파도를 선사해주었다. 서핑보드 위에 걸터앉아 서퍼들은 수도승처럼 경건하고 엄숙하게 파도를 기다렸다. 더반에서 며칠만 머물다 보면 이 도시를 진정으로 즐기고 사랑하는 이들이 서퍼라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뜨기 전 바다로 나간 그들은 바다 위에서 아침 안부인사를 나눈다. 해가 뜨면 바다에서 나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은 후 출근하고 퇴근하기가 무섭게 다시 서핑보드를 챙겨 바다로 달려간다. 집과 일터와 바다를 오가는 심플한 삶.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일이란 적게 할수록 좋은 것이며 인생을 즐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뛰어난 풍광, 안전하고 평화로운 도시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3000원을 내고서 자전거를 빌렸다.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신나게 달리는 것이 더반의 멋진 날씨 속에 불시착한 어리둥절한 여행자가 해변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초보적인 방법인 것이다. 로열마일 남쪽 끝에는 모요(moyo)라는 카페가 있는데 수상 방갈로처럼 이곳에서 바라보는 더반은 하나의 완벽한 세계다. 짙푸른 인도양과 황금빛 해변, 세련된 빌딩으로 가득한 도시가 다정하게 어울려 있다. 해변에는 백발의 노부부들이 손을 잡고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가고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에게 바다를 가르치는 아빠도 있다.

점심은 해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햄버거와 피자를 먹었다. 로열마일 해변가에는 서퍼들을 위한 바와 레스토랑이 많다. 이곳에서 직접 만든 맥주는 향기롭고 맛있었다. 웨이터는 맥주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자, 인도양의 파도를 마셔버리는 거야”하며 눈을 찡긋했다. 맥주와 함께 햄버거를 먹으며 우리는 행복했다. “이처럼 완벽한 날씨와 풍경 속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누군가가 말했고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오늘 나쁘다고 내일까지 나쁘란 법은 없어.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더 좋을 거야.” 이렇게 말하며 일행은 맥주잔을 힘껏 부딪쳤다.

사실 남아공에 간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조심해”였다. 치안이 불안해 소매치기와 강도를 당하기가 일쑤라고 했다. 인터넷에는 더반과 요하네스버그에서의 악몽 같은 경험담이 떠돌고 있었다. 실제로 호텔 직원은 짧은 거리라도 택시를 타는 것이 좋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깜빡 방심했다가는 길거리 청년들에게 휴대폰과 카메라는 물론 신발까지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장에도 가고 길거리 음식을 맛보고 싶은 여행자에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더반의 한 청년.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더반의 한 청년.
그런데 직접 경험해 본 더반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아침 저녁으로 카메라를 들고 해변을 서성였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진을 찍어달라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활짝 웃으며 먼저 포즈를 취해주었다. 조심스럽게 그들을 경계하는 내가 미안스럽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여행을 통해 배운 건 가이드북이나 현지인이 가지 말라는 데는 안 가면 된다는 것. 그러면 사고당할 일도 없다. 더반도 마찬가지 항상 여행객들로 북적대는 로열마일 해변은 치안이 서울 못지않다. 경찰이 24시간 순찰하고 있어 혼자서 움직여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
페줄루 사파리 공원에서 전통춤을 추는 줄루족.
페줄루 사파리 공원에서 전통춤을 추는 줄루족.
줄루족의 전통공연을 볼 수 있는 페줄루 사파리

더반은 ‘남아공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도시’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해변을 따라서는 고급 호텔과 리조트들이 늘어서 있다. 더반을 찾는 대부분 여행자는 이곳에 머무르는데 해변 끝에 자리한 우샤카 마린 월드는 꼭 들르는 곳이다. 남아공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관광명소이자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해양 테마공원이다.
우샤카 마린 월드의 돌고래 쇼.
우샤카 마린 월드의 돌고래 쇼.
우샤카 마린 월드에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수족관이 설치돼 있는데, 이 수조에는 열대어부터 돌고래와 바다표범은 물론 수십 종류의 상어까지 다양한 해양생물이 살아간다. 1940년대에 난파된 배를 테마로 꾸며진 수족관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이색적인 워터월드를 경험하게 해준다.

더반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4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페줄루 사파리 공원이다. ‘페’는 남아공 전통어로 최고를, ‘줄루’는 남아공 최대의 부족인 ‘줄루’족을 가리킨다. 더반은 18세기 말에 줄루(Zulu)왕국이 있었던 곳이다. 줄루족은 케냐의 마사이족과 함께 아프리카에서 가장 용맹한 부족으로 꼽히는데 남아공 곳곳에는 줄루족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줄루족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18세기의 샤카다. 흩어져 있던 부족을 통합해 외세에 맞서 싸웠던 그의 흔적은 ‘킹 샤카’ 공항 ‘우 샤카’ 마린 월드 등에 이름을 붙여 그를 기리고 있다.
옛 줄루족의 전통을 고스란히 재현한 페줄루 사파리 공원.
옛 줄루족의 전통을 고스란히 재현한 페줄루 사파리 공원.
페줄루 사파리 공원은 우리의 한국민속촌과 비슷하다. 줄루족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어 그들이 꾸밈없이 사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이 만든 음식도 맛볼 수도 있고 직접 담근 술도 시음해볼 수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제일 신나는 건 전통 공연이다. 아프리카 특유의 신나는 리듬을 타며 다리를 힘껏 차올리는 그들의 춤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몸이 들썩인다.

더반에서 좀 더 이색적인 볼거리를 원한다면 더반 식물원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1849년에 만들어진 유서깊은 식물원으로 열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식물원을 산책하다 보면 이 세계가 아닌 곳을 거니는 듯한 신비로움마저 느낀다. 50여 종이 넘는 새가 서식하고 있어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식물원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얻을 수 없다는 걸 가르쳐준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을 얻었을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도 가르쳐준다. 더반에서의 여행이 그랬다.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여행에서 우리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을 얻었을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그것을 확인시켜 준 곳이 바로 더반이었다.

여행정보

인천~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대개 홍콩을 경유해 요하네스버그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요하네스버그까지 가는 데만 17시간 정도 걸린다. 더반까지 가려면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남아공은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남아공을 여행하기 좋은 계절은 12~1월이다. 한국의 7월은 여름철이지만 남아공은 겨울이다. 평균 기온도 11~22도로 그리 덥지 않다.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기 때문에 긴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랜드(ZAR)가 화폐단위이며 10랜드는 약 870원이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풍토병 위험은 거의 없어서 황열병 등의 예방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 더반은 유명관광지여서 안전하지만 관광지가 아닌 곳을 밤늦게 돌아다니거나 혼자 다니면 위험할 수 있다.

더반=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