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아티스트 그룹 김인숙·벤야민 라베의 설치작품 ‘님에게 드리는 편지’를 감상하고 있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아티스트 그룹 김인숙·벤야민 라베의 설치작품 ‘님에게 드리는 편지’를 감상하고 있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오타쿠(御宅)는 어떤 분야에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 말이다. 국내 네티즌들은 ‘오타쿠’를 ‘오덕후’로 바꿔 부르다 최근에는 ‘덕후’로 줄여 사용한다.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관련된 것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행위로 ‘덕질’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학위 없는 전문가’라 불리기도 하는 ‘오타쿠’들이 취미와 일상의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문화소비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오타쿠 정신’이 소비문화의 성장동력을 이끄는 추세를 반영한 다채로운 전시회가 봄 화단을 수놓고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비롯해 바비인형, 아트토이, 유명인의 라이프 스타일, 셀피 문화 등에 심취한 사람들의 기질적 특징을 다채롭게 조명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술관으로 들어온 ‘덕후 프로젝트’

바비인형·애니메이션…'오타쿠 문화', 미술관 속으로
서울 중계동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이 기획한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는 덕후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바탕으로 꾸민 이색 전시회다. 박미나를 비롯해 김성재, 장지우 등 젊은 작가 10여명의 영상, 회화, 설치 작품을 통해 덕후의 사회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작품과 제작과정을 직접 살필 수 있는 ‘픽사 특별전’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탄생 3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에는 영화를 위해 제작된 스케치, 그림, 스토리보드, 컬러 스크립트, 캐릭터 모형 조각 등 500여점이 나와 있다. 애니메이션과 캐릭터를 모으는 사람들이 늘면서 전시 개막 전에 관람권 6만장이 팔려나가 화제가 됐다.

덕후 문화의 소비 지향적 측면이 부각된 전시회도 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달 28일 시작해 한 달간 잠실점 에비뉴엘아트홀에서 펼치는 ‘바비, 더 아이콘’이다. 세계 5대 바비 컬렉터로 꼽히는 개인 소장자의 리미티드 컬렉션을 한국 최초로 선보여 볼거리를 제공한다.

가나아트센터와 아트벤처스는 3~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국내 최대 아트토이 잔치 ‘아트토이컬쳐’를 펼친다. 쿨레인, 스티키몬스터랩, 슈퍼픽션, 초코사이다, 키타이 등 전 세계 180팀 230여명이 참가해 다채로운 아트인형을 전시·판매한다.

○셀피문화·유명인 사진도 조명

‘셀피(selfie)-나를 찍는 사람들’ 등 문화를 조명하는 전시회도 놓칠 수 없다. 사비나미술관은 지난달 26일 ‘셀피’전을 열고 강은구, 아말리아 울만 등 국내외 8명의 작품 10여점을 걸었다. 사비나는 새로운 ‘셀피 덕후’ 문화를 시각예술로 탐색한다. 유명인의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전시회도 눈길을 끈다.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이 지난달 27일 개막한 사진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토드 셀비의 사진전이다. 전시회 주제는 ‘즐거운 나의 집’. 세계적 패션 아이콘인 카를 라거펠트를 비롯해 프랑스 구두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루부탱, 발망의 최연소 디자이너 올리비에 루스테잉 등 유명인의 사적인 공간을 친근하게 담아낸 사진, 영상 등 400점을 선보인다.

취미와 일상의 경계를 넘어 덕후문화의 대중화를 위한 경매행사도 열린다. 서울옥션은 지난달 25일 100억원대 규모의 오디오 경매 행사를 벌인 데 이어 오는 23일에는 디자인 가구, 주얼리, 피규어&토이, 자전거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경매를 할 예정이다.

○지나친 몰입 경계 지적도

전문가들은 그동안 주변인으로만 치부돼 왔던 덕후들의 습성이 어떻게 ‘창조적 소비’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지 관련 전시를 통해 엿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드론, 피규어(캐릭터 모형), 게임 등의 덕후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며 “덕질 자체를 진솔하게 표현하거나 오타쿠 특유의 소비적인 감성을 전달하는 전시회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위안을 찾기 위해 한 분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사회적 네트워크가 끊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덕후 소비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한 분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