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연출가' 이보 반 호프 방한…"예술 작품과 정치는 분리해서 바라봐야"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연출가’로 불리는 벨기에 출신 연극 연출가 이보 반 호프(59·사진)의 작품을 국내 관객이 만난다. 31일부터 4월2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파운틴헤드’다. 소설가 아인 랜드(1905~1982)의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이 작품은 2014년 네덜란드에서 초연했다. 국내 공연을 앞두고 방한한 반 호프는 30일 “‘파운틴헤드’는 나의 연출작 중에서도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자신했다.

‘파운틴헤드’는 두 젊은 건축가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1920~1930년대 미국이 배경이다. 부와 명예를 위해 현실에 순응하는 건축가 피터 키팅과 오직 자신의 신념과 예술적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려는 이상주의자 하워드 로크가 주인공이다.

“기회주의자와 이상주의자의 모습을 대변하는 두 사람의 예술에 대한 태도는 정말 중요한 주제입니다. 예술가적 이상을 좇아야 하는지 아니면 관객이나 상황에 순응해야 하는지 늘 고민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원작에서는 이상주의자의 손을 들어주지만, 연극에선 양쪽 입장을 모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파운틴헤드’의 무대화는 쉽지 않았다. 이번 서울 무대에선 저작권 확보에 6년이 걸렸고 초연 이후에도 비판에 시달렸다. 원작자의 극단적인 정치 성향 때문이다. ‘파운틴헤드’는 미국 보수단체 티파티의 ‘바이블’로 여겨진다. 호프는 “아인 랜드의 정치사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이 작품에는 더 복합적인 것들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예술과 정치의 영역은 분리해서 바라봐야 한다는 견해도 강조했다. 그는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2001년 나치의 신념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작곡가로 꼽혔던 바그너의 작품을 이스라엘에서 연주하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는데 바렌보임은 나치가 바그너를 이용했을 뿐 그의 음악은 최고라며 연주를 강행했다”며 “바렌보임의 신념을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호프는 고전을 해체해 현대적 기법으로 재해석하는 솜씨가 일품인 연출가다. 2014년 영국의 영 빅 시어터와 함께 만든 연극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이듬해 영국 올리비에상, 2016년 미국 토니상의 작품상과 연출상을 휩쓸며 ‘호프 열풍’을 일으켰다. 이후 세계 극장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2015년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 프랑스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와 ‘안티고네’를 초연했고, 다음달에는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주드 로 주연의 ‘강박관념’을 세계 초연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