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오션로드의 12사도 바위.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12사도 바위.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 갔을 때였다. 많은 사람이 호주 수도를 시드니로 알고 있지만 행정상 수도는 캔버라다. 시드니와 멜버른이 서로 수도를 맡겠다고 우기자 호주인들은 결국 그 중간 지점에 계획도시인 캔버라를 세웠다.

캔버라 국회 의사당.
캔버라 국회 의사당.
수도 캔버라에는 국회 의사당과 호주 전쟁기념관이 있다. 웅대한 두 건물은 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2월 한낮에 여의도 광장 만한 대로에 모인 사람들이 채 100명이 될까. 식당에서 밥을 먹다 사진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기억을 더듬으며 필사적으로 찾았다. 다행히 전쟁기념관 주차장에서 사진기를 발견했다. 차에서 내리면서 흘린 듯했다. 그런데 사진기는 땅바닥에 떨어진 그 상태로 놓여 있었다. 거의 2시간 동안 단 한 명의 사람도 그 큰 주차장을 지나가지 않은 것이다.

전쟁기념관은 겉으로는 단순하게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호주가 참여한 전 세계 전쟁에 관한 기록과 무기, 비행기가 전시돼 있다. 중국과 남중국해 다툼이 있기는 하지만 거대 열강 틈에 있는 것도 아닌데 호주는 참 다양한 세계 전쟁에 참여했다. 6·25전쟁에 참여한 전시 패널도 있었다. 기념관 안쪽 중앙에는 연못이 있고, 양쪽 회랑을 따라 각국 전쟁터에서 전사한 호주 병사들의 이름이 동판에 적혀 있다. 동판에는 관광객이 추모의 의미로 촘촘하게 꽂아 놓은 빨간 양귀비꽃이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기묘하게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이었다. 마치 죽은 병사들이 하나하나의 꽃으로 되살아나 그곳에서 숨을 쉬고 있는 느낌이었다. 동판에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갈리폴리’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이름도 새겨져 있었다. 1915년 5월 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 갈리폴리에서 영국과 함께 싸우다 거의 전멸한 호주군 병사들의 애환을 담은 영화다.

도시 자체가 유령의 집처럼 텅 빈 것 같은 캔버라를 거쳐 다시 며칠을 밤낮으로 운전해서 마침내 멜버른에 도착했다. 멜버른은 건물도 카페도 모두 독창적이다. 성 패트릭 성당과 피츠로이 정원처럼 빅토리아풍의 경건하고 고전적인 건물도 있고, 아트 센터처럼 모던한 디자인의 건물이 수두룩했다. 뒷골목을 걷다 보면 수없이 빼곡하게 벽을 채우고 있는 그라피티가 역동성을 더하고, 차이나타운의 오래된 거리에는 골동품의 진중함이 풍겨난다.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천연다리 런던 브릿지. 지금은 끊어진 상태다.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천연다리 런던 브릿지. 지금은 끊어진 상태다.
이곳에서 다시 차를 몰아 멜버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향했다. 웅장하기 이를 데 없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사진으로 한번 보고 꽂혀서 무작정 찾아 나선 길. 이제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는 수많은 해변과 절벽이 펼쳐진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병사들이 귀향한 뒤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가는 아슬아슬한 해변도로를 조성하며 생계를 이어 나갔다고 한다. 수많은 병사가 이 절벽에서 다시 죽어갔고 길 초입에는 이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말 그대로 위엄 있고 아름다웠다. 제법 이곳저곳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이 풍광을 눈과 가슴에 담은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바다는 물론 해변가에는 사암으로 이뤄진 기암괴석이 줄줄이 서 있다. 금색, 회색, 노란색, 황토색, 석양의 자주색, 파도의 흰색과 하늘의 푸른색, 모든 색이 밀려 들어왔다. 풍경이 초현실적이라 마치 다가가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야라 강이 흐르는 사우스뱅크 프롬나드 지역.
야라 강이 흐르는 사우스뱅크 프롬나드 지역.
최근에 본 지아장커 감독의 영화 ‘산하고인(山河故人)’에서 이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다시 볼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영화에서 호주는 중국의 과거와 현재에 이어 2025년 미래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엄마와 생이별한 청년은 호주로 이민 와서 자신에게 중국말을 가르쳐 주는 연상의 중년 여인에게 반해 버린다. 청년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관람하는 경비행기 안에서 그녀에게 살짝 키스를 건넨다. 나는 지아장커가 중국의 미래를 왜 호주 그레이트 오션 로드까지 와서 찾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국과 모든 것이 정반대인 이곳은 중국이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담은 가장 이질적인 호접몽의 장소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천천히 바닷가를 산책했다. 파도가 끊임없이 사암들을 부식시키며 돌 위에 자신의 입김을 조각하고 바위의 살들은 그런 파도에 순응하여 조금씩 제 몸을 깎아내고 있었다. 사암은 모래 암석이라 파도에 쉽게 부서진다고 한다. 런던 브리지 2개 중 하나도 폭우에 허물어져 버렸고, 12사도 봉우리도 이제 3개 남았다. 그러나 아직도 곳곳에 작은 동굴이 숨어 있고 그 해변가 사이로 사람들은 유유히 수영하면서 여름을 즐긴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즉흥적으로 선택한 여행이라 생각 없이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다시 비행기를 타거나 자가용으로 돌아가거나. 그러나 그 긴 길을 다시 차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마지막 날 한국에 비해 턱없이 싼 쇠고기 스테이크를 마트에서 사서 구워 먹으며, 아웃백 스테이크란 이런 거라며 마음을 달랬다. 한국 면적의 76배. 외로움이 더 깊어지면 이번에는 가도 가도 사람의 흔적이 끊어져 있는 깊은 사막, 진정한 호주의 오지(아웃백)로 들어가리라 마음먹는다. 그레이트 다운 언더. 호주 여행은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 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