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근의 트렌디라이프] 인생을 옻칠하다…빈티지 유어 라이프
[편집자 주] 유행(트렌드)은 우리네 시대상입니다.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1994·1997'을 통해 우리는 세월 속에 묻힌 과거의 유행과 조우합니다. 이내 추억에 잠깁니다. 유행은 그렇게 돌고 돕니다. 다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이내 또 사라집니다.

문화로 성장하는 유행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뉴스래빗의 새 기획 '트렌디라이프(Trendy Life)'는 한 철 유행이 아닌 삶 속에 뿌리내린 트렌드와 문화를 '장소', '사람', '시간' 세 주제로 나눠 영상뉴스로 전합니다.

그 첫번째 바래지않는 트렌드 '빈티지(Vintage)' 편의 두번째 이야기 빈티지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1 생옻칠장, 신중현 장인(83)입니다.


↑<나무> 유튜브 음악을 끈 뒤,
아래 영상에서 [트렌디라이프]를 바로 감상해보세요.



"거센 바람 불고 세찬 비가 와도
나무는 항상 거기 서서
매미를 키워내고 새들을 쉬게 하고
자기만한 그늘을 짓지

나무를 닮고 싶다던 너의 옆얼굴을 난 기억해"
<나무> - 이장혁 곡
[이재근의 트렌디라이프] 인생을 옻칠하다…빈티지 유어 라이프
나무에서 채취한 액으로 사라지는 것들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1 생옻칠장 신중현 장인(83).

나무는 사람에게 좋으면 좋았지, 절대 해롭지 않아.”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서울시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에 위치한 장인의 공방. 인터뷰 내내 장인의 손에 붓이 떨어질 줄을 모른다.

옻칠을 하면 나무가 썩지를 않아, 천년을 견딜 있어.”

옻칠에 인생을 건 장인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가난했던 유년 시절, 매형에게 옻칠 기술을 전수받았다. 스승에게 맞아가면서 배우던 시절. 붓은 커녕 걸레질만 수년을 했다. 몸에 옻이 옮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수십년 내성이 쌓야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그렇게 60여년을 한결같이 옻칠만 해왔다.

힘들진 않냐는 질문에 장인은 짧게 답했다.

아는게 이것밖에 없어.
[이재근의 트렌디라이프] 인생을 옻칠하다…빈티지 유어 라이프
책상 위에 놓인 오래된 붓만큼이나 장인이 지나온 세월은 아득해보였다. 삶의 터전을 빼앗긴 6.25전쟁에서도 장인은 붓을 놓지 않았다.

미군도 옻칠 좋은 알아서 권총 라이터에 많이 칠했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장인은 옻칠 말고는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벌이가 넉넉치 않아 4남매를 키우기 힘들 때도 그는 옻칠에만 더욱 매진했다.

젊을 때는 힘들었어, 지금처럼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일거리를 찾아다녔다고.

해인사, 봉암사, 낙산사 유수한 사찰 불상의 옻칠도 장인의 작품이다. 하지만 당시엔 사회적 인정도, 넉넉한 보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장인이 옻칠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
[이재근의 트렌디라이프] 인생을 옻칠하다…빈티지 유어 라이프
배운게 이거니깐, 해야지.”

배운 꾸준히 한다는 것 뿐. 장인의 외길에 요행은 없다.

정신 팔면 안돼, 일에 몰두하면 딴 건 안 보여.”

대단한 기술도, 지식도 아니다.

옻칠은 세월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고, 나무는 옻으로 빛나는 세월이란 옷을 입는다. 세월을 어루만지는 옻칠 장인, 옻칠이 빚어내는 세월의 빈티지. 잘 익은 세월을 간직한 빈티지의 바래지 않는 힘은 장인의 옻칠 인생과 참 닮아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내 인생을 얼마나 묵묵히, 공들여 옻칠하고 있을까?"

감히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도 자신만의 인생에 옻칠하고 있나요?"

빈티지 유어 라이프(Vintage your LIFE) !.!
[이재근의 트렌디라이프] 인생을 옻칠하다…빈티지 유어 라이프
시대의 빈티지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장소', '사람', '시간' 3가지 요소가 모두 함께 잘 익어가야 합니다.

'트렌디라이프'의 첫 주제 빈티지의 사람 편은 신중현 생옻칠장인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만나볼 빈티지 마지막 편은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신중현 장인이 나무에 불어넣은 생명력과 같은 세월을 다뤄봅니다. 기대해주세요. 내일도 뉴스래빗 !.!
[이재근의 트렌디라이프] 인생을 옻칠하다…빈티지 유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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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기자,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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