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하는 장지원 화백이 자신의 작품 ‘숨겨진 차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2일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하는 장지원 화백이 자신의 작품 ‘숨겨진 차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서양화가 장지원 화백(70)은 중·고교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대표작 ‘지원’의 모델로 잘 알려져 있다. 홍익대 3학년이던 1967년 그는 서울 돈암동 권진규의 작업실에서 1주일에 2회, 2개월여 동안 모델을 했다. 그는 당시 홍익대 강사였던 권진규의 미술에 대한 열정에 감복해 화가로서의 보폭을 더 넓히겠다고 마음먹고 구자승 화백과 결혼한 뒤 캐나다 온타리오 미대에서 공부하며 세계적인 작가의 꿈을 키웠다.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과 한국여류화가회 회장을 지낸 그는 지금도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 작품을 내놓고 있다.

지난 40년간 여류 화단을 이끌며 예술혼을 불태운 장 화백이 2~2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4년 만에 여는 이번 전시회 주제는 ‘숨겨진 차원’. 꽃과 새 나무 등 편안한 소재를 택해 마치 작업 일기를 쓰듯 마음속에 숨겨진 세계를 붓끝으로 잡아낸 근작 20여점을 선보인다.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그의 그림은 밝고 환하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꽃, 새, 나무, 바람개비, 시계, 우산 같은 일상 소재를 활용한 화면은 마치 행복한 삶의 표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듯, 흰색 연보라 분홍 등 밝은 색조로 가득하다. 작가는 “밝고 아름다워 보이는 그림들이지만 사실 밑 작업이 많아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힘들다”며 작업 과정을 설명했다.

“먼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주로 사용하면서 그 위에 한지와 우드록을 붙여서 이미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아크릴 물감을 덮고 그 위에 옅은 수채화 물감과 물에 섞은 파스텔 가루를 부분적으로 덧칠하죠.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친 뒤 한 점의 작품이 탄생합니다.”

꽃을 그려도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의 꽃이 아니라 보고 나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을 표현해내는 것이기 때문에 작업 시간이 길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연을 귀한 보물단지’라고 정의한 그는 “그림은 진지한 삶의 자세를 만들어내는 결정체”라며 “내 작품은 자연이라는 강물에 떠가는 배”라고 비유했다. 무엇을 그릴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그저 감성의 그물망에 걸려드는 수많은 것을 건져 올려 현대인이 놓쳐버린 아름다운 자연의 비밀들을 하나씩 풀어나가 무한대의 세계를 구현하겠다는 얘기다.

심상의 여과 과정을 거쳐 화면에 되살려낸 자연은 하나같이 밝은 색상 너머로 생명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작가는 “동양화는 흰색을 표현할 때 먹을 사용하지 않고 비우는 방법을 쓰지만, 내 그림은 서양화이기에 흰색을 더 두껍게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숨겨진 자연을 찾아내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동시에 전하겠다는 의도다.

충주 장호원 작업실에서 매일 8~10시간을 보낸다는 그는 “캔버스 앞에 앉아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뭔가 평안한 느낌을 주는 작품에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고 했다.

“올해 일흔입니다. 그야말로 황혼기에 접어드는 셈이죠. 이제는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 자세로 그림을 그리려고 해요. 하지만 아직 더 해 보고 싶은 작업이 많습니다. 설치, 사진, 영상 작업 등도 꽤 끌리거든요.”

스스로 황혼기라고 말하지만, 그의 예술혼은 늙는 게 아니라 영글어갈 따름이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