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로버트 훅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이작 뉴턴과 더불어 영국이 자랑하는 17세기 후반 과학자 로버트 훅에게 흔히 붙는 수식어다. 그는 물리학과 화학, 지질학, 천문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에 업적을 남겼다.

훅은 1635년 영국 남부 와이트 섬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병약했지만 머리가 비상하고 손재주가 좋았다. 옥스퍼드대에서 천문학과 화학을 전공한 뒤 당대 유명 과학자였던 로버트 보일의 조수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1666년 런던 대화재 직후에는 도시 재건을 위한 측량·설계 책임을 맡았다.

1665년 복합현미경으로 벼룩과 눈의 결정 등 미시세계를 관찰하고 기록한 ‘마이크로그라피아’를 출간했다. 특히 세포의 존재를 처음 찾아내 라틴어로 ‘작은 방’이라는 뜻의 ‘셀(cel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678년엔 영국왕립학회 회장이 됐다.

훅은 1703년 67세를 일기로 런던에서 별세했다. 라이벌이었던 뉴턴은 그해 왕립학회 회장이 된 뒤 훅의 초상화와 논문들을 학회에서 없앴다. 지금도 뉴턴의 후광에 가려 대중에겐 덜 알려졌다. ‘2등의 비극’이다.

■ 로버트 훅

1635년 7월18일 출생
1665년 ‘마이크로그라피아’ 출간
1678년 영국왕립학회 회장
1703년 3월3일 별세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