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의 ‘자가해체 8’.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의 ‘자가해체 8’.
멕시코의 설치미술가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47)는 도시의 후미진 곳에 널려있는 슬레이트 지붕, 낡은 액자, 비닐장판 조각, 벽돌, 스티로폼, 이불 등 버려진 사물을 모아 이전과는 다른 모습과 의미를 탐색하는 작가다. 오는 7월26일까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을 여는 그는 “서울 시내 주택재개발 지역의 하찮은 사물을 모아 재구성하는 것은 단순한 미감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예술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된 그는 알렉산더 칼더재단과 스미스소니언미술관, 베를린DAAD 등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잇달아 참여하며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2년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미 제작된 물건과 주변에서 발견한 사물을 활용해 즉흥적이고 불완전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자가구축(autoconstruccion)’이란 새 장르를 개척했다. 자가구축은 철근, 비닐봉지 등 도시 주변에 버려진 사물이 재탄생되는 특정 상황을 보여주는 건축적 조각이다. 건축적 조각의 형태는 작가와 큐레이터, 예술가, 비평가, 일반인과의 협업을 통해 유기적으로 완성된다.

작가는 “언뜻 보면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을 소규모로 한데 모아놓거나 폐품을 연결한 것으로 보이지만 쓸모없어진 것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작품은 작가의 성장 과정과 연관이 있다. 멕시코시티 남쪽 화산암 지역에서 성장한 작가는 불모지를 개척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주변 재료로 집을 짓고 이웃과의 연대를 통해 마을을 만든 경험이 있다. 그는 멕시코시티에서 발견된 폐품들이 서울에도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멕시코시티나 서울이란 도시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난 1년간 미술관 전시가 끝난 후 남겨지는 폐기물들을 버리지 않고 모으는 한편 서울의 재개발 지역을 순회하며 폐품과 폐자재를 수집했죠. 서울에 보름간 머물면서 한국의 젊은 작가 및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완성한 겁니다.”

작가는 도심에 버려진 사물을 재구성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익숙한 물건이 전시공간에 들어가자 험악하고 하찮은 공간들이 서서히 깨어나면서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하찮은 존재가 또 다른 존재로 변화하기 위해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전시 부제를 ‘신병(神病)’으로 붙였다.

이번 전시에는 서울 도심재개발의 역사와 과정을 추적하는 사전 연구를 수행한 뒤 미술관과 주변 공간에서 발견한 오브제를 활용한 작품 30여점을 내놓았다. 작가는 오는 10월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1월 영국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과 체결한 장기 파트너십에 따라 터바인홀의 ‘현대 커미션’에 초대받았다. (02)733-8945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